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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성매매' 한국…여행이니 그 정도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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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성매매' 한국…여행이니 그 정도는 괜찮다?

[프레시안 books : 저자, 책을 말하다] 라틴아메리카 여행 2부작 낸 김남희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 그 이전에 많은 한국인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반세기 가까이 섬에 갇힌 것처럼 고립돼 살아야 했다. 여권은 희귀한 물품이었다. 그랬던 한국인들이 텔레비전 방송으로만 접해야 했던 곳에 발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5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 등으로 부침이 있긴 했지만, 해외여행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이젠 해외여행 1500만 시대로 불린다. 웬만하면 한두 번씩은 해외에 가보고, 인터넷 공간에 각종 여행기가 넘쳐나는 시대가 됐다.

부작용도 적잖다. 해외여행 자유화 후 한동안 '추한 한국인'이란 오명을 자초했다. 물론 자유화 초기에 비하면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문화가 나아졌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 예컨대 '원정 성매매' 같은 악습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지난 국정 감사 때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검거된 한국인은 2012년 274명에서 2013년에는 496명으로 급증했다.

해외여행과 관련해 짚을 문제는 성범죄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건 다음 질문이다. 이전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만나면서 한국인들의 생각의 크기는 얼마나 커졌는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은 얼마나 넓어졌는가. 달리 말하면 한국인들이 자신에게도, 여행지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좋은 여행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수치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베테랑 여행 작가 김남희에게 좋은 여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김남희 작가가 얼마 전 선보인 라틴아메리카 여행 2부작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이 별의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문학동네, 2014년 10월 펴냄)를 매개로 2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여행 작가 김남희. ⓒ프레시안(최형락)


"걸을 힘이 있는 한 배낭족 할머니로 세상을 떠돌다 떠나고 싶다"

프레시안 : 이번 여행지는 라틴아메리카였다. 왜 라틴아메리카였나.

김남희 : 솔직히 말하면 어떤 허영심이 있었다.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2003년에 회사를 그만뒀다. 하고자 한 세계 일주가 지구의 200여 국가를 다 보는 건 아니고 보고 싶었던 나라들에 간다는 것이었지만, 대륙들은 다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 허영심에서 일단 시작했고 언젠가 라틴아메리카 대륙도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 대륙 자체를 밟아본 적이 없었다. 내게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주마간산조차 해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세계 일주를 마무리한다면 당연히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허영심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끌린 건 소설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 대륙은 어떤 곳이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마술적 리얼리즘부터 놀라웠고, 라틴아메리카 소설들은 유럽 작가들의 소설과는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매혹되고, 그 상태에서 갔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좋은 여행이란, 좋은 여행 책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책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직업으로서 여행과 초심을 유지하며 즐기는 여행의 차이 등을 고민하며 작가 스스로 끊임없이 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김남희 : 이 책을 쓰면서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를 1년 넘게 여행했는데, 그리고 이게 열 번째 책이자 어떻게 보면 10년을 여행한 세계 일주의 결산이기도 한 책인데 나는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혹시 동어반복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여행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또 하나의 선입견만 주는 글을 반복적으로 써온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옆에서 내게 좀 더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많이 하게 하는 여행서를 쓰기를 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고민이 많았다. 에콰도르에서 산에 오르다 내려오기도 하는 등 굉장히 외롭고 힘든 여행이었다. 이렇게 쓸쓸하고 힘들고 체력적으로도 지치는 이 여행을 왜 계속하는 걸까, 이것에서 시작해 많은 고민을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아직까지 여행이다. 남들이 들으면 '참 철없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할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한 배낭을 메고 배낭족 할머니로 세상을 떠돌다가 죽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죽음 중 하나는 객사라고 여긴다. 그 시신을 수습해야 할 가족들 문제만 없다면. 사실 싱글 여성으로 살다가 내가 맞을 수 있는 죽음의 방식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객사 아니면 고독사. 누가 그 얘기를 듣더니 '객지에서 고독사하는 거지', 이러더라. (웃음) 어쨌든 그 죽음조차 가장 행복한, 나다운 죽음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다가 가고 싶고 사람들에 대한 내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여행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마지막까지 갈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객사도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쓴다는 것이 힘에 참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들이 '아 이런 여행서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 욕심만큼 성취하는 데 당연히 한계가 있고 부족함을 많이 느껴 괴롭다. 그렇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는 여행하고 그 여행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일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잘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생도 여행하고 글 쓰면서 살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 여행자와 여행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여행 작가로서 정체성이 고민거리일 것 같다.

ⓒ문학동네
김남희 :
여행 작가로서 정체성이 진짜 고민된다. 여행서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의 한 형태이지 않나. 경험한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여행서를 쓰고,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작가나 내 취향에 맞는 좋은 여행서를 쓰는 사람은 다 외국 작가다. 독서라는 건 자기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독자들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글을 써내는 전업 여행 작가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도 당연히 못 미친다.

그런 상황에서 쓸 때마다 한계를 엄청나게 느낀다. 어느 정도 균열을 내는 여행서를 쓰고 싶은데 내 고민의 수준은 거기에 이르지 못해서다. 그렇지만 난 여행만 하고 블로그에 쓰다가 끝내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쩌다보니까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왔고 그 길을 계속 가고 싶다. 부단히 읽고 쓰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쓰면서 반성을 정말 많이 했다. 지난 10년간 여행하는 데만 몰두했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인풋(input)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민을 풀어갈 때 그 문제에 천착해 더 깊은 생각을 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여행을 해왔고 그렇게 세계를 바라봐왔는데, 글쓰기라는 건 논리적인 과정이 따라야 하고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훈련의 부족 같은 것을 많이 느꼈다. 공부를 더 많이 한 상태에서 여행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가 이번 책을 쓰면서 내린 결론이다. 쓰는 것보다 읽기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함께 생각하고 싶은 물음, 우리는 좋은 여행자인가

프레시안 :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구경꾼이다. 외부인으로서 현지 주민에게 말을 걸거나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참견쟁이'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결과물을 독자에게 전하고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그 결과물이 모이면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 지도가 된다. '참견쟁이' 부분과 관련해, 탐욕에 눈멀어 무기를 들고 몰려왔던 스페인 정복자들과 호기심을 앞세워 카메라 등으로 무장한 채 현지 주민의 일상에 끼어드는 21세기 여행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를 책에서 물었다. 여행 작가로서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김남희 : 맞다. 여행에 대한 글을 쓰지만 사실 내 수입의 거의 대부분은 책의 인세가 아니라 강연에서 나온다. 강연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좋은 여행이란 어떤 여행인가, 우리는 좋은 여행자인가 하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관광정책학을 공부했는데 날 가르친 선생님은 여행이라는 것, 관광이라는 것에 매우 회의적인 분이셨다. 첫 시간에 한 이야기가 여행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문화적 제국주의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100년 먼저 유럽 사람들이 해왔던 여행 자체가 굉장히 비판받을 만한 모습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여행할 때마다, 특히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스스로 모순적인 어떤 것을 많이 느낀다. 예컨대 이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자격이 내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탄광에 갔을 때도 그런 고민을 했다. 이 사람들의 삶을 겨우 두 시간 들여다보기 위해 코카 잎과 음료수를 사들고 카메라를 들고 거기 들어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때 나한테 위로가 된 건, 그 투어를 제안한 게 광부들이었고 광부들은 누구라도 그 깊은 갱도 속으로 찾아와 자기들을 들여다보고 말 걸어주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예전에 버마를 여행할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버마는 코미디 전통이 강한 나라다. 결혼식을 하거나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코미디언을 불러 만담이나 마당극을 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콧수염 3형제도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감옥에도 간다.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라는 영화 도입부에도 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휴 그랜트가 친구들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버마라는 나라에서는 콧수염 형제라는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난 버마를 여행할 때 콧수염 형제를 찾아가 공연을 보고 공연에 대한 기부도 하고 그 이야기를 썼다. 그때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버마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우리를 불러주지 않는 상황이 됐는데, 외국인 여행자들이 찾아오면서 우리 이야기가 바깥으로 알려져 동생도 감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먹고살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버마의 현실을 외부에 알리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들이 찾아오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지구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열 명 중 아홉 명은 얼굴이 찍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평상시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찾아서 듣고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좋은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난 그렇게 타협했다. 비겁하게. 그래,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걸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쓰도록 해보자, 이것이 내 생각이다.

ⓒ김남희


스트레스 풀러 간 여행, 이 정도는 괜찮다? 위험한 습관

프레시안 : 현지 주민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여행자 기준으로만 보면, 좋은 여행에 대한 고민을 성가신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우리도 사는 게 힘들고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라도 풀까 싶어서 떠난 건데 여행지에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책에서 작가는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 즉 탐욕과 착취,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함께 떠올린다. 그것에 대해서도 '여행하면서 꼭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것 같다.

김남희 : 난 이 문제가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난 개인적으로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다. 대안이 있는 한. 어떤 기업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영역이 있다. 그렇게 살면 사실 되게 피곤하다. 그건 여행도 마찬가지다. 내가 즐겁고자,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좋은 여행자가 되기 위해 이런 것도 고민해야 하고 저런 생각도 해야 하면 여행 자체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난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일주일 혹은 열흘 있다 떠나버리면 자신은 그만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 살며 똑같은 모습의 수많은 여행자를 10년, 20년, 한평생을 지켜봐야 하는 현지 분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조금 피곤할지언정 살짝 더 배려하고 마음을 쓰는 게 진짜 그렇게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일일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세상을 바꾸는 큰 변화는 이 구체적인 사람들 하나하나, 개인의 삶에서 작은 것이 모여 응축될 때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인지 인생을 스스로 더 피곤하게 몰아세우는 면도 있다.

영화도 그렇다. 얼마 전 <카트>가 나왔다. 아직 보러 가지 못했는데 보러 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보러 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인생도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돈을 내고 가서 두 시간 동안 너무나 고단한 현실을 또다시 마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굉장히 힘들 때가 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그래, 세상은 아직 살 만해', 이런 용기를 주는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9000원짜리 표 한 장 사는 것뿐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1만 명, 10만 명 생겨날 때 사회가 조금씩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주의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나와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이라는 책을 같이 쓴 쓰지 신이치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은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택한 삶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누군가가 묻는다. 그때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니, 우리는 너무나 소수이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 사회는 결국 다수에 의해 망가지고 부서져갈 것이라고. 그러나 사회가 망가지고 부서져가는 그 순간에 우리 같은 사람이 꾸준히 지켜온 대안적인 삶의 방식, 소수자의 삶을 보면서 누군가 희망과 아주 사소한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삶을 즐겁게, 지속 가능하게 꾸려가는 것이라고. '이게 대안이고 사회를 바꿔낼 것이다', 이런 걸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이 대안적인 삶을 기쁘고 즐겁게 이어가는 것 자체가 결국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곤한 여행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조심한다. 내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고 누군가에게 '넌 어쩌면 여행을 그런 식으로 하냐. 그건 아니지', 그런 말은 쉽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 페루의 잉카 유적, 마추픽추. ⓒ김남희


원주민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프레시안 : 작가는 칠레에서 1973년 피노체트의 9.11쿠데타를 말하며 네루다와 빅토르 하라를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오월광장의 어머니들부터 떠올린다. 아마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되살리고,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와 쿠바의 오늘에 관심을 둔다. 한국의 여행 책들에서 일반적인 접근법은 아닌 듯하다. 색깔론이 횡행하는 한국에서는 시쳇말로 빨간색 작가로 오해(?)를 받기 쉬운데, 그런 일은 없었나.

김남희 : 누군가 서평에서 '이 사람은 운동권이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큰 오해를 받은 적은 없다.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관심도 별로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우리 사회가 '좌빨', 우익, 극우,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기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도 굉장히 많은 딱지를 붙인다. 쟤는 나랑 같은 고향, 쟤는 고향 동문, 쟤는 고등학교 동기,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기에 몰두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내가 나가는 어떤 모임에 반농담으로 나더러 만날 '좌빨'이라고 공격하는 분이 있다. 그분에게 한 번은 정색하고 이야기했다. "형이 생각하는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고전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완전 우파다. 시장 경제를 선호한다. 내 기준은 '아 우리는 이미 충분한 민주주의를 가졌어'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아 우리 인권 이 정도면 됐지'가 아니라 더 많은 인권을, '아 우리가 정의와 평등은 충분히 일궜지'가 아니라 더 많은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내게는 좌와 우라기보다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면에서 난 죽을 때까지 진보이고 싶다. 그런 면에서 형이 내게 좌냐 우냐를 묻는다면, 그래 난 왼쪽에 서겠다."

난 그 정도일 뿐이다. 가진 것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운동에 몸담거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나 개인의 자유였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내 삶을 꾸려가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개인의 자유 의지가 너무나 많은 면에서 존중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반항을 하며 살아온 정도다. 그런 나한테 좌다, 빨갱이다 같은 딱지를 붙인다면 그건 지나친 영광이 될 것 같다.

프레시안 :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우로스 섬은 원주민들이 관광객을 적극 불러들이는 곳이다. 작가는 그 상업화가 충격적이라며 불편해 한다. 그러면서도 "이 돈을 얻기 위해 그들이 일상을 공개함으로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전기를 끌어오고, 예방 주사를 맞아 평균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그걸 어떻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왜 전통을 지키며 살지 않느냐고 원주민을 비난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이와 달리, 칠레의 이스터 섬에서는 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원주민의 갈등을 전하며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건 그대로 내버려두는 지혜"라고 말한다. 두 이야기는 충돌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남희 : 거기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뭐냐 하면 우로스 섬은 그 섬 주민들이 그런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이스터 섬 역시 주민들이 개발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터 섬 주민들은 관광객 수를 제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칠레 정부가 개발을 원하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삶의 방식은 원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 일관적이다.

내가 굉장히 경계하는 시선이 있다. '(원주민 마을에) 도로를 놓으면 안 되지. 전기가 없는 삶이 얼마나 우리에게 시적인 마음을 돌려주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절대 그걸 포기하지 않지 않나. 우리는 자연 속에 들어가서 단지 며칠 있다가 온다. 그러고서 '아 이 불빛을 봐' 하면서 바로 전기를 켜고 인터넷을 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삶을 다른 사람들한테 강요할 수 있겠나. 단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고 도로가 놓이는 순간 이 사람들이 지켜온 삶의 방식, 우리가 그리워하고 '이런 건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곧 사라질 것임을. 그걸 잃어버린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난 그 사람들한테 뭔가를 거부하라고, 전기를 쓰지 말고 그 삶의 방식을 지키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분들이 선택할 문제다. 그분들이 우리랑 똑같은 욕망을 갖는다고 해서 어떻게 그걸 함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분들에게 그걸 요구하려면 우리도 똑같이 문명의 모든 편리를 포기한 상태에서 숲으로 돌아가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난 그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지켜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에서 부탄을 여행할 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없는 마을에 갔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8시간 정도 걸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옛 문화를 완벽히 보존하면서 거의 자급자족하는 마을이었다. 그때 신이치 선생님에게 "이 사람들이 도로와 전기를 거부하면서 살아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중요한 건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가치를 아는 것이지, 무조건 무언가를 거부하는 데서 모든 일이 시작되는 건 아니라고. 난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원주민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설혹 그것을 잃어간다 해도, 우리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간다 해도 그분들의 선택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해봤더니 이렇더라. 그런 점을 고민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제안하거나 조언하는 정도라고 본다.

▲ 낮잠을 즐기는 갈라파고스의 바다사자들. ⓒ김남희 작가 제공


여행이 흔한 시대, 당신의 여행은 어떠한가요?

프레시안 : 여행하면 성숙해진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에 나오는 이스라엘 여행자들도 그런 사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건 부정하고 자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바득바득 우기면서도,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해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하는 부분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이스라엘 여행자가 그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한국 여행자들은 어떤 모습인가도 생각하게 한다.

김남희 : 슬픈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20년 전 처음 해외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여행하는 사람이 굉장히 적었다. 정말 여행이 간절한 사람들이 어렵게 떠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물론 지금도 평생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음을 알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전에 비해 쉽게, 자주 여행을 가게 됐다. 그러면서 여행이라는 게 예전과는 달라졌다.

난 기본적으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떠나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에너지도 채워오고, 자기가 있던 자리가 얼마나 좁은 세계였는지, 얼마나 꽉 막힌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음도 얻고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것이 여행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새 여행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구매하는 소비 상품이 됐다. 그래서 여행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감동과 떨림을 얻기는 더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 여행 자체가 흔해지고 여행자가 많아지고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도 여행자를 너무나 많이 보면서 마음 어린 교감을 할 기회 자체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런 시대에 살기 때문에 더 여행이라는 것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고민하는 책도, 그런 여행가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자기 세계를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한 번쯤 물어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점점 더 여행을 많이 하면서 살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좋은 여행 학교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김남희 :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여행 강좌를 몇 번 했고, 올 초에는 처음으로 내가 내 이름으로 모집해 여행 학교를 해봤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어떤 여행이 좋은 여행이고 우리가 하는 것은 어떤 여행이며 여행을 왜 하는지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그건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의 여행 학교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직접 떠나는 여행 학교다. 아이들을 자연 속으로 데리고 간다든가, 아이들과 함께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한다든가 하는 여행 학교를 꿈꾼다. 아직까지는 꿈으로 남아 있다.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아직 내게는 못 가본 세상을 더 보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언제쯤 하겠다고 정해둔 건 없다. 조카들이 여섯 살, 세 살인데 그 아이들이 크면 첫 해외여행을 내가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이번에 다녀온 갈라파고스, 둘 중 한 곳에 갈 것이다. 남미를 여행하기 전까지는 탄자니아를 생각했는데, 갈라파고스를 여행하고 나서는 어디를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 아이들과 첫 해외여행을 할 무렵이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몸 상태가 예전 같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배낭족으로 계속 살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여행 형태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는 건가.

김남희 : 바뀌는 부분이 조금 있다. 두 번째 브라질 여행 때에는 배낭족이 되지 못했다. 트렁크족이었다. 허리가 많이 아플 때여서 트렁크를 끌고 갔다. 몸이라는 게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면도 있지만 닳는 면도 있어서 무거운 배낭 때문에 퇴행성 디스크가 왔다. 할 수 있다면 배낭여행은 계속하되, 다만 예전처럼 스스로 가혹하게 몰아가기보다는 조금 더 느리게 여행할 생각이다. 그동안 정말 열악한 여행을 많이 했다. 가장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서 텐트를 지고 석 달 동안 파타고니아를 헤매는 식이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몸의 요구에 맞춰주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다. 휴식도 충분히 주면서 천천히 가는 여행, 한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원래 그런 여행을 좋아하기도 해서 그런 쪽으로 하게 될 것 같다.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를 메고 하는 여행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하고 싶은 장거리 트레일(trail)들이 있다. 그걸 하기는 하겠지만 짐은 훨씬 가볍게 꾸리고, 돈을 벌어서 산장에서도 좀 자면서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또 안다. 산장의 아침과 텐트에서 자다가 맞는 아침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게 주는 감동의 차이 같은 것이 있다. 돈이 없어서 고단한 여행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면이 60퍼센트라면 나머지 40퍼센트는 고단한 여행이 주는 나름의 성취와 뿌듯함과 기쁨 때문이었다. 두 가지가 다 있기 때문에 이 방식대로 해온 것 같다. 그래도 조금 더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 갈 생각은 있다.

프레시안 : 이달 중순에 다시 떠난다고 들었다.

김남희 : 스리랑카에 간다. 작년부터 겨울을 한국에서 안 나려 하고 있다. 너무 춥고 난방비도 많이 나오는데다, 도시에 사는 한 도시가 강제하는 소비 규모와 생활 방식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돈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놀랍게도 여기보다 훨씬 저렴하게,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작년 겨울엔 발리에서 두 달을 보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주택을 통째로 빌려서 지냈는데 집 빌린 돈이랑 생활비를 합쳐 한 달에 70만 원만 쓰고 살았다. 발리는 고급스럽게 여행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저렴하게 여행하려고 하면 또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올겨울엔 스리랑카에서 석 달 정도 지낼 생각이다. 스리랑카도 물가가 저렴하다. 서울보다 생활비는 훨씬 적게 들면서 따뜻한 그곳에서 책도 읽으면서 천천히 겨울을 나고 들어올 생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일상을 여행자의 감수성으로 만나고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프레시안 : 책을 읽으며 용기와 위안을 얻을 이들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40대. 40대는 일반적으로 삶의 무게도 다르게 다가오고, 몸의 변화도 많이 느끼는 때다. 삶에 짓눌려 자신감을 잃는 이들도 심심찮게 본다. 그것을 같이 느낄 40대 작가가 등반 도중 포기하고 내려오는 등 전과 다른 모습에 스스로 당황하면서도, 다시 일어서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다른 연령대의 독자들도 자기 상황에 맞게 작가가 전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리라고 본다.

김남희 : 그렇게 읽었다니 감사하다. 카뮈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면 칭찬해주자, 그러나 그 말을 믿지는 말자고. 정말 명언이다. 내 경우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스스로 위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많은 위안을 얻기도 했다. 내 여행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래 역시 나는 이걸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힘들어도 이게 제일 좋은 일이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그게 50퍼센트라면 나머지 50퍼센트는 다른 사람을 통해 얻는 기쁨,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도 한 번 떠나볼까? 이 여자도 이렇게 헤매면서 다녔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 통해 얻는 기쁨은 나 자신을 위로해 얻는 것보다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쓰는 것의 의미는 진짜 적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동안 사실 '이건 나를 위해 쓰는 거야' 하는 마음이 많았는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이 변했다.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분들이 읽는다는 행위 자체로 이미 내가 쓴다고 하는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아울러 이 책을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많이 느껴서 2주 전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팅 하는 분들을 모아 밥을 사고 선물을 드렸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는데, 그분들이 너무나 고마워하고 감동을 받더라. 그동안은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독자의 존재도 그렇고 책을 만들어주는 분들의 존재도 그렇고. 그런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편집자 등으로 살면서 하기 어려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인터뷰를 정리할 때가 됐다.

김남희 : 강연할 때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행해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조차도 원하는 곳에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워낙 가난한데다 책은 점점 안 팔리는 시대에 접어들어, 굉장히 어렵게 돈을 모으고 애를 써야만 여행을 한 번 떠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도 그런데, 일상을 꾸려가는 다른 분들은 가족, 직장, 돈, 시간 문제 등 훨씬 더 많은 이유로 못 떠나지 않겠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난 늘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일상에서 여행자의 시선과 감수성을 되살리는 훈련을 하자고. 여행을 가면 '평생 언제 다시 와 보겠나', 이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래서 하나라도 더 본다든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든지 일찍 깨어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나. 평상시라면 그냥 지나갔을 것들조차 새로운 눈과 감수성으로 대하지 않나. 여행지의 그 감수성을 일상을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키우는 훈련을 하자는 이야기를 늘 해왔다. 이 삭막한 공간을 여행자의 감수성으로 보는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매일 버스 타고 가던 길을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가보고, 걸어도 가보고, 혼자 걷던 길이라면 좋아하는 친구를 데려가서 함께 걸어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하나를 추가했다. 일상의 공간을 좀 더 살 만한 곳, 스트레스가 덜한 곳, 좀 더 인간적인 온기가 있는 곳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해가면서 우리가 사는 공간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함께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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