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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요양병원 입원 거부,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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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요양병원 입원 거부, 이대로 괜찮은가?

[안종주의 건강사회] 에이즈 환자·감염인 차별 있는 한 건강사회 아니다

17년 전 오웅진 신부와 나누었던 특별한(?) 에이즈 이야기

1997년 봄에 있었던 이야기다. 보건복지부 기자단은 음성꽃동네를 방문했다. 오웅진 신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건복지부 기자단이 10명 가까이 한꺼번에 방문한 것은 꽃동네가 문을 연 뒤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단 대표 역할을 하고 있었던 필자는 자그마한 성의를 담은 기자단의 돈봉투와 함께 책 한권을 그에게 건넸다. 몇 달 전에 우리나라에서 대중 서적으로는 처음으로 필자가 펴낸 <에이즈 엑스화일>이었다. 그가 에이즈 환자·감염인을 위한 쉼터 건립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전해 듣고 특별히 챙겨서 갔었다. 

그는 책을 받자마자 "간밤에 귀한 손님이 꽃동네에 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게 기자님이었던 모양"이라며 운을 뗀 뒤 자신이 얼마 전 받은 막사이사이상 수상금을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사회에서 홀대를 받아 오갈 데 없는 에이즈 감염인·환자의 쉼터 건립에 사용할 터이니 기자단 대표가 그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필자는 모든 기자가 오늘 온 것은 아니고 곧바로 결정할 수도 없는 성격의 일이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실은 방문 전에 보건복지부 공보관이 꽃동네에 가면 오 신부가 에이즈 쉼터 이야기를 꺼낼지 모르니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담당 부서에서 말하더라고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간의 사정을 미리 들어보니 오 신부가 쉼터를 만들려 하니 정부가 국유지를 내주거나 건립비를 대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에이즈 환자·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매우 심한 상태여서 이를 정부 사업으로 벌이기 곤란하다고 판단해 부정적 의견을 주었다는 것이다.

벌써 17년 전의 이야기다. 그 뒤 오랫동안 보건의료 분야 언론인으로 있으면서 에이즈 예방과 퇴치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홍보잡지와 웹진을 만들거나 자문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줄곧 씨름했던 것이 다름 아닌 에이즈 환자·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찍기를 바로 잡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질병관리본부에 아이디어를 제공해 2006년에는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를 펴내도록 했고, 에이즈 보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바람직한 보도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이 책에 직접 쓰기도 했다.

유엔에이즈와 같은 국제에이즈퇴치기구와 에이즈 인권단체, 에이즈 예방단체, 그리고 질병관리본부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에이즈 환자·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견줘 최근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왔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공포가 정말 심했을 때는 모든 환자와 감염인을 한 곳에 몰아넣고 사회 활동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부 국회의원과 언론들이 앞장 서 공공연하게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은 없지 않은가.

에이즈 환자·감염인의 인권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후진국가

이런 필자의 생각은 크게 보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을 맞아 국내 에이즈 감염 실태와 환자·감염인의 인권과 애로사항을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대한민국은 적어도 에이즈 환자·감염인의 인권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국가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직도 에이즈 환자·감염인의 수술을 거부하는 의료인이 있다는 것은 선진국 대열 운운하는 우리로서는 정말 수치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다반사로 있었다. 심지어는 서울대병원에서도 일부 의사가 에이즈 감염인·환자 수술을 장비나 기구 미비 등을 핑계로 외면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의료기관에서 벌어지는 이런 비윤리적 행태를 여러 차례 언론보도로 직접 꼬집기도 했다. 그로부터 10~20여 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대부분 개선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의 안이한 판단이었다. 

지금도 많은 에이즈 환자·감염인이 사회적 편견뿐만 아니라 의료인의 편견 때문에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60대의 한 남성은 지난 8월, 중이염 수술을 받기 직전 의사로부터 수술을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에이즈 감염인, 즉 에이즈 바이러스(HIV) 보균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에이즈 환자의 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보건복지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뒤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의사와 의료기관이 워낙 소귀에 경 읽기 식 태도를 보여서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에이즈 환자·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에이즈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8600여 명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첫 에이즈 환자가 발생한 때가 1985년이므로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감염된 사람이 청년이었다면, 지금은 중년이 되었고 당시 중년이었다면 노년층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초기에는 에이즈가 치명적인 감염병이었으나 이제는 제때 항바이러스제 복용 등을 잘하며 몸 관리를 하면 고혈압, 당뇨처럼 평생 보균 상태에서 비감염인처럼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 

에이즈 환자·감염인 전담 공공 요양기관 설립 검토할 때

따라서 이들이 노년층이 되면 에이즈가 아니라 다른 만성질환이나 노인성 질환, 그리고 노화로 누군가가 돌보아야 하는 요양 대상자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적지 않은 숫자인 이들이 앞으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아야 할 때 지금과 같은 치료 또는 돌봄 거부가 벌어질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에이즈 바이러스는 인간 면역체계에 적응하면서 순화된 형태로 진화해 인체 치명성이 약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사와 사회는 여전히 잘못 각인된 에이즈 공포와 편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달리 올바른 의식의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건 당국은 이런 비윤리적 현상의 맥을 잘 짚어 더는 에이즈 환자·감염인이 육체적 건강 불안과 편견의 이중고통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17년 전 오웅진 신부가 제안했던 에이즈 환자·감염인 쉼터에 당시 정부가 호응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에이즈의 날을 계기로, 지금이야말로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기관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당시 이런 상황까지 내다본 것은 아닐지라도 그의 발상은 지금 당장 우리 사회가 본격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에이즈 환자와 감염인이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건강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면 국가 차원의 에이즈 환자·감염인 요양기관을 세우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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