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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아닌 '군익' 추종하는 군인들,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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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아닌 '군익' 추종하는 군인들, 공공의 적!

[군사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비극] <22> 합동참모본부의 실체 (7)

작전권을 행사하기 위해 창설한 합참이 작전권을 행사할 수 없는 합참이 되었다는 건 한국 안보에 있어 최대 아이러니다. 지난 24년간 이 조직은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면서 한국적 전장 환경에 적합한 전략개념이 뭔지, 한국형 전력체계와 싸우는 방법(how to fight)이 뭔지, 장기 기획이 뭔지 답을 내리지 못하고 단지 현존 군사력 유지에 급급한 괴물이 되고 말았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나고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이끈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은 "한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무기 체계는 앞서나 전략·훈련·기획 등에서 뒤져 북한군에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군 무기체계는 4세대인데 전략은 2세대"라며 이는 "미군에 대한 지나친 의존심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합참이 병역면제자들로 꽉 채워진 무능하기 짝이 없는 보수정권과 접목된 결과는 어떠했나? 돌아온 것은 일선의 전투원들과 국민의 피였다. 상시적으로 불안이 고조된 위험국가로 대한민국이 변모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위협을 슬쩍 보여주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며 급조된 대책을 세우는 소동을 겪는 한심한 국가가 되었다.

한반도 정세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의지와 자신감이 결여되니까 합참은 "내가 왜 여기서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멍청한 군사 관료집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합참에 미래의 국가 생존과 번영을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군사기획과 전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위협을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언론과 권력은 대한민국 파멸의 시나리오를 대량생산하고, 그것이 군사조직에게 또 하나의 사업거리가 되는 추악한 탐욕의 구조, 이익의 구조만 확장되고 있지 않은가?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안전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어서 아무리 채워도 충족되지 않는 무한 속성을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군사력을 증강해야 대한민국은 안전한 것인가? 이에 대한 이성적 고려와 적정 군사력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 없이 그저 여론에 휘둘리고 공포에 질려버리는 그런 안보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마치 미국 무기회사의 영업사원 같은 군사평론가들이 미국 무기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그것이 마치 군사적 전문성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한국군의 작전 장교들을 보면 하나의 부대 기동을 놓고 "이것이 돌파냐, 포위냐, 공격이냐"라는 용어로 밤새도록 씨름하고 논쟁하는 작전행정가들의 행태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군대의 본질, 작전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은 해체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위협에 대한 해석을 군 스스로 독점하고 민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기들끼리의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 안주하려는 이들을 어떻게 믿고 안보를 맡길 것인가? 안보의 주주이자 고객인 시민은 배제되어 있는데 말이다. 국가 이익(國益)이 아닌 군대의 이익(軍益)을 추종하는 그들에겐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21세기 문명 공동체에 맞는 민주적이고 공적인 가치로서의 안전보장도 없다. 사유화 된 권력과 그 기반으로서 정치화 된 안보논리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열린 시민 사회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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