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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창비주간논평] 세 가지 수치로 본 미국 중간선거

미국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이던 2006년 11월 중간선거가 미국의 정치지형을 진보적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민주당이 참패한 이번 중간선거의 결과는 미국의 정치지형을 다시 보수적 방향으로 전환시킬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에 이어 8년 만에 연구년을 다시 미국에서 보내고 있어 이 두 중간선거(둘 다 연임 대통령 임기 6년차에 치러진 선거)를 미국에서 관전할 수 있었다. 8년 전에는 뭔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었고, 실제로 선거 이후 북미대화가 다시 재개되는 등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한반도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반면 이번에는 세상이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수적으로 민주당은 2006년 공화당보다 훨씬 큰 패배를 맛보았다. 오바마가 후보로 나섰던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2008년 선거결과와 비교하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70석, 상원에서는 15석이 각각 감소했다. 하원에서 공화당은 대공황 이후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했다. 선거 이전부터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공화당의 우세를 점쳤지만 민주당이 이처럼 무력하게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선거 이후 “잘못된 자들의 승리(Triumph of the Wrong)”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선거가 항상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처럼 잘못된 정당이, 이번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거둔 것과 같은 성과를 얻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뉴욕타임즈> 2014.11.6.). 이는 필자에게도 매우 궁금한 문제다.

오바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과거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던 변수들이 이번 선거국면에서 오바마와 민주당에 결코 부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2013년 1월 7.9%에서 9월 5.9%로 하락했다. 경제성장률도 3/4분기에 3.5%를 기록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최근 6개월의 성장률은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준임). 서민생활과 관계가 깊은 석유가격도 크게 하락했다. 대외정책에서도 미국을 이라크전 수렁에 빠뜨리고 국제적 이미지를 크게 추락시켰던 전임 부시 대통령과 비교하면 성과가 적지 않다.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중동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했다(대테러전쟁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공적도 있음). 또한 기후변화방지에도 적극적 태도를 보이며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이 있더라도 그 불만이 이라크전쟁을 개전해 중동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공화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2006년 중간선거 직후 부시 대통령 스스로 선거 시기 가장 큰 쟁점이었던 이라크전쟁에서의 실수를 사실상 인정하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사임시킨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거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 가지 수치가 그 주요 단서이다. 첫째,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3년 이후 65~70% 정도의 미국인들이 현재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on the wrong track)고 생각하고 있다. 2005년 이전 10년 동안에는 같은 답이 50%를 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오바마 대통령의 실적마저 이렇듯 달라진 판단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는 단기적 정치 사이클을 넘어서는 큰 흐름과 관련이 있는 문제로 보인다. 

우선 미국의 영향력 하락이다. 이것은 오바마의 책임이 아니고 미국이 다시 세계의 경찰노릇을 하는 시대로의 복귀 자체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미국인들이 적응해야 할 변화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자주의를 앞세우며 이러한 흐름에 적응하고자 해왔으나 초강대국 지위에 중독된 미국인들에게는 약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앞으로 미국에서 현명한 정치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짐이다. 다만 이것이 이번 중간선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문제에서 더 많은 점수를 딴다면 극복될 수 있는 문제다.

미국이 처한 실상, 그리고 한국

따라서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수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제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간선거 직전인 10월 CNN 설문조사에 따르면 62%가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답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중산층의 소득추이를 잘 보여주는 중위소득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성장의 과실이 상위소득자들에게 편중되어 분배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에서 벗어난 새로운 성장전략이 만들어지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와 민주당도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구적 차원에서 진보세력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위의 두 가지 수치만으로 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세 번째 수치(투표율)가 의문의 상당부분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 민주당의 참패는 오바마와 민주당을 반대하는 사람의 증가보다는(여론조사는 공화당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오바마의 업무수행 지지율은 물론이고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입장보다도 높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오마바와 민주당에 대한 잠재적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현재 추산으로 36.6%에 머무르고 있는데 최종 집계결과도 2차 세계대전 중에 치러진 1942년 중간선거(38.1%) 이후 가장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한 유권자의 수는 2010년 중간선거의 9100만 명(투표율 42%)과 비교할 때 약 800만 명이 감소했고 약 1억 3천만 명이 투표한 2008년과 2012년 선거와 비교하면 감소폭은 더욱 크다.

2008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는 젊은 세대, 독신여성, 흑인, 라틴계 등이 선거에 적극 참여해 오바마와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대통령선거가 없는 중간선거가 투표율이 낮은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당의 잠재적 지지세력이 특히 투표에 소극적이었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결집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예를 들어 정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위의 계층에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은 자칫 이미 하락하고 있는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민주당 지지율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작은 정부, 감세, 종교적 충실성 등 비교적 명확하고 내부 상충하는 요소도 적은 몇 가지 의제를 내세우는 공화당이나 보수세력에 비해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의 경우 지지세력 내의 다양한 요구를 모아내고 선거에서 영향력이 있는 핵심적 의제를 생산하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미국 정치지형의 앞날은?

위의 논의를 종합해서 중간선거 이후를 전망해보면 오바마와 민주당이 이번 선거패배로 주요 의제(이민개혁법안, 의료보험 등)에 대해 공화당에게 무조건적으로 양보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우선과제는 잠재적 지지세력을 2016년 선거에 다시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바마는 중간선거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의회와 협력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민개혁 등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특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 3분의 2의 목소리를 같이 듣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선거만으로 미국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성급한 판단이다. 오히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과연 1986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재집권 성공은 물론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명으로 인정받은 레이건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이후 다른 대통령처럼 6년차 중간선거의 패배가 재집권 실패는 물론이고 미국의 정치지형을 반대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결과를 맞을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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