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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은 미국의 '속국', 그럼 중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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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은 미국의 '속국', 그럼 중국은?

[동아시아를 묻다] 미국식 조공 체제?

역사의 환생

말이 소란하다. 수사가 요란하다. 격변, 격랑, 지각 변동이라 한다. 대저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꼴을 가리킨다. 중일 간 (재)역전과 갈등 심화도 한 몫 거든다. 그래서 명청 교체에 빗대기도 하고, 청일 전쟁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다. 1894년의 갑오년과 2014년의 갑오년은 확연히 다르다. 반복이라기보다는 반전에 가깝다. 무엇이 성하고, 무엇이 쇠하는지를 엄밀하게 따지고 정확하게 판별해야 하겠다.

으뜸으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미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의 쇠퇴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패권국의 쇠락과 패권국이 만든 질서의 균열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미국은 여전히 강성하다.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하더라도 뜻대로 세계를 경영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그것이 차이다.

미국의 쇠잔보다도 미국적 세계 질서가 먼저 흔들리고 있다. 양자를 분별하지 못하면 작금을 미중 패권 이행기라고 오독하게 된다. 커다란 인식 착오이다. 이미 꽤나 만연해 있다. 꿍꿍이는 저마다 다르다. 이참에 미국에서 벗어나자는 쪽도 있고, 미국의 품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 상황을 부러 과장하는 편도 있다.

부쩍 귀에 익은 G2(미국-중국)론도 그런 혐의가 없지 않다. 중국 위협론의 재판이자 치밀한 신냉전의 기획일 수 있다. 후속타들도 썩 석연치가 않다. '재균형'이니 '축의 이동'이니, 갈등을 되레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은근슬쩍 인정하는 해석 개헌의 꼼수를 단행했고, 한국은 군사적 주권 회수를 무기한 방기하는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의 자충수를 둔 것이다.

따라서 작금을 패권국의 교체가 아니라, 패권국이 구축했던 세계 질서의 변동기로 접수하는 시국(時局) 인식부터 합의할 필요가 있겠다. 패권이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 자체가 이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하 세계화를 거스르면서 (재)등장하고 있는 지역적 세계들(Regional Worlds)의 약진이 눈에 든다.

중국은 나 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와 이슬람, 남미의 (재)부상과도 연동된 동시적인 현상이다. 즉, 지구촌은 평평해지는 한편으로 입체화되고 있다. '역사의 종언'에 종언을 고하고, 역사적 세계들(Historical Worlds)이 환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살아나고 있는 여러 지역적·역사적 세계 가운데 동아시아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겠다.

다만 그 여럿 중 하나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유달리 각별한 구석이 있다. 비단 북과 남을 포함한 한민족이 살아가는 불변의 터전이라는 점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 체제의 3대 축이다. 아니 세계 체제의 중심이 되었다. 동아시아는 더 이상 주변이 아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 체제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장소이기도 하다. 반면으로 새로운 세계 체제로의 이행기에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이 그만큼 큰 곳이기도 하다. 19세기는 유럽의 동향이 결정적이었다. 20세기는 아메리카의 변화가 핵심적이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의 판가름이 세계 체제의 향방에 관건적이다. 목하 태평양이 술렁이는 까닭이다.

대분단 체제, 샌프란시스코 체제, 미국식 조공 체제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라는 이론이 있다(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 미국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방식으로서 제국 일본의 유산을 재편하고 계승함으로써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전전의 일본과 아시아의 모순이 전후 미일 동맹 체제와 아시아 대륙 사이의 분단과 결합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와 양안의 (소)분단 체제 또한 이 대분단 체제의 하부 단위로 작동한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기왕의 대분단 체제를 한층 강화하려 들고 있다. '죽의 장막'을 '철의 장막'으로 대체하기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덕부터 추키자. 동아시아의 분단을 체제와 이념 대결로 접근하지 않고 있음이 돋보인다. 유럽과는 달리 좌우 갈등이 동아시아 냉전의 요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냉전 체제'가 아니라 '분단 체제'이다. 그리고 그 분단의 핵심을 중국의 해안선을 따라서 형성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의 역학 구도로 포착한다. 지정학 혹은 국제 정치적 길항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별난 관점만은 아니지 싶다. 구미의 일본학계에서 정립해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그 발상이 상당 부분 겹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또한 탈냉전 이후 심화되고 있는 역사 분쟁과 영토 분쟁, 군사 갈등 등 동아시아의 대립 구조에 주목한다. 그리고 미일 동맹과 신중국 간의 대결 구도를 축으로 삼아 전후 동아시아의 모순을 전전 유산과의 관련 속에서 규명한다.

그럼에도 이 이론에서 유독 눈을 찌르는 대목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성립된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을 '속국(属国, Client State)'이라고 (재)규정하는 것이다. 호명부터 퍽 과감한 독법이다. 일본의 주권 또한 '종속적 주권'으로 표현한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제국의 보호와 속국의 충성을 교환하는 '신봉건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비단 일본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냉전기 자유 진영에 속했던 아시아 국가들로 일반화할 수 있다.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결손 국가들이 미국의 우산 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 근대적 주권 국가의 이념형에 미달한 이 '신봉건 관계'가 지속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체제 또한 여지껏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미국식 조공 체제(American Tributary System)'라는 명명까지 등장했다. 미국이야말로 냉전기를 통해 역대 가장 성공적인 조공 체제를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인 동맹국과 비공식적인 파트너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그래서 '조공국'들에게 자국의 시장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고 군사적인 보호를 제공한다.

조공국들은 영토 주권, 사법 주권, 정치 주권의 일부를 양도함으로써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혜택을 입는다. 즉 미국은 상국(Hegemony)임을 승인받고, '민주적 조공국 (democratic tributary)'들은 미국의 가치, 규범, 제도를 수용하는 위계적 교환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미국의 승인(=책봉)을 받지 못한 국가들은 미국적 세계 질서(American World Order)의 편입에 장애를 겪는 반면(소련, 중국, 북조선, 이란 등)에, '민주적 조공국'들은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동참하고,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미국의 뜻을 반영함으로써 미국적 천하(天下)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작동하는 평화로운 질서가 미국식 조공 체제,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것이다.

이론(Theory)과 사론(史論)

그럼에도 미국식 조공 체제는 여전히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의 한쪽만을 설명하는 절반의 이론에 그친다. 기실 샌프란시스코 체제나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같이 미국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그 관점의 유사함만큼이나 인식 결여의 공통점도 눈에 띈다.

공히 '죽의 장막' 너머가 사각지대이다. 여백보다는 공백에 가깝다. 실제로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의 성립은 미국 패권 전략의 소산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1945년이 아니라 1952년(샌프란시스코 체제)이나 1953년(분단 체제 및 대분단 체제)이 중요한 까닭이다.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는 그 시발부터 대륙의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중국 혁명', '신중국' 수립이 관건적이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또한 중국 혁명의 파동이자 파장이었다. 즉 '중국 혁명'은 중국만의 혁명도 아니었으며, 1949년을 전후한 사태만을 의미하지도 않았다. 20세기 초반 아시아 반식민주의 운동의 집약이자, 20세기 후반 아시아 탈식민 운동의 촉매였다.

따라서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를 온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도 20세기의 동아시아를 중국과 연동하여 일이관지하는 역사의 졸가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일어식 표현을 빌면 시좌(視座)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분단 체제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길항 구도의 핵심 기제도 간취할 수 있다.

이론에 앞서 사론(史論)부터 (재)정립해야하는 까닭이다. 그래야 작금이 '흔들리는 동아시아'의 출발인지, 복판인지, 아니면 그 말단인지, 그 원근감도 확보할 수 있다. 모름지기 때를 바로 알아야 마땅한 책도 세우는 법이다.

특히 동아시아 냉전사의 구도를 셋으로 쪼개는 삼분론의 확립이 요긴하다. 미·소가 주도하는 동서 대결의 이면에서 '동방'으로 표상되어 표출되었던 역사 운동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방(東方)'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분단이 동구(東歐)와 서구(西歐)가 각축했던 유럽의 냉전과 상이한 궤적을 그렸던 핵심 요소이자, '글로벌 냉전'이나 '제3세계 냉전'으로도 일반화할 수 없는 역사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념과 체제 대결이라는 냉전적 인식은 물론이요, 패권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대결 구도로만도 갈음할 수 없는 역사 운동의 차이, 사상적 지향의 차이가 또렷하게 포착된다. 즉 지정학만큼이나 지리역사학, 혹은 지리문명학적 관점이 긴요하다.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죽의 장막' 너머에서는 명청 교체 이래 도저했던 '중화 세계의 근대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중화 세계가 해체되기는커녕 세계 체제에 저항하는 형태로 쇄신되고 갱신되고 있었다. 이 역사적 과정을 누락하거나 망실한다면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의 실체와 실상 또한 눈에 들지 않게 된다. 필히 보론과 첨언이 요청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다음 글에서 소상하게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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