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기륭전자(현재 렉스엘에이앤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가운데, 법원에서 처음으로 이들이 기륭전자의 노동자라고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파견·계약직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낸 소송에 대한 것이었다. 기륭전자에서 해고된 뒤 파업 등을 하며 싸워왔던 이들은 지난 2010년 복직 약속을 받아냈지만, 회사가 이들에게 업무도 주지 않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회사 사이에 근로계약이 성립한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라 주목된다. 이들의 파업이 시작된 이후 지난 9년 동안 여러 소송이 제기된 바 있으나, 법원이 이들을 기륭전자의 노동자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복직 합의' 지키지 않고, 사무실까지 이전한 기륭전자, 법원은 "회사의 귀책사유로 근로 제공 못 한 것"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1690만 원씩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 씨 등이 2010년 11월 금속노조를 통해 회사 측과 맺은 합의서 등을 고려하면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합의서'는 최동렬 기륭전자 회장과 박유기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이 서명했다. 이 합의서에서 양 측은 2012년 5월 1일까지 회사가 조합원 10명을 고용하기로 약속했었다. 기륭전자 측은 약속한 시점이 다가오자 1년을 더 유보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1년이 다 지난 지난해 5월에도 이들 10명에 대한 고용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2013년 5월 2일부터 임의로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음에도 이들이 '출근 투쟁'을 계속하자, 기륭전자는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던 사무실을 갑자기 이전해버렸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지난해 5월부터 출근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업무지시를 내리지 않고 지난해 12월 말경 사무실을 이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회사의 귀책사유로 원고들이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므로 지난해 5월부터 밀린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륭전자는 2010년 맺은 합의서가 노동자들과 직접 맺은 것이 아니고 노동자들이 실제 노동을 제공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 측은 판결 직후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지난 2005년 7월 노조를 결성하고 8월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등에 맞서 파업을 벌였었다. 당시 노동부와 검찰이 모두 기륭전자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인정했고 검찰은 기륭전자에게 벌금까지 내렸지만, 사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태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되자, 김소연 당시 기륭전자분회장은 2008년 94일 간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2010년 합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1895일만에 나온 것이었다. 기륭전자 사태는 이 합의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이후 4년 동안 더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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