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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월급 갈취'에 '개털 깎기' 심부름까지?

[이철희의 이쑤시개] 전·현직 보좌관 특집

보좌진 월급을 갈취해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보좌관에게 애완견 털 깎기 심부름을 시키는 등 국회의원의 알려지지 않은 '갑질'이 천태만상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보좌진의 월급을 기업이 대납하도록 한 뒤 일부 반납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을 돌려받는 형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H 의원은 보좌진에게 '개털 깎기' '아침밥 차리기' 등 횡포를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H 의원은 현재 해당 사실을 보도한 <일요서울>과 민사소송 중이며,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4부)는 지난 10월 8일 ▲보좌진의 개털 깎기 ▲보좌진의 잦은 교체 ▲기분에 따라 벌금이 정해진다 ▲벌금은 의원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JTBC

몇몇 국회의원의 '슈퍼 갑' 행태는 시시때때로 의원회관을 술렁이게 한다. 의원이 아침에 먹을 사과와 저녁에 마실 한약을 챙기는 일이 의정활동 보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신분은 공무원(별정직)이나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고용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그날로 끝이다. 그래서 보좌관은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전·현직 보좌관 세 명은 지난달 31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보좌관의 세계'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이쑤시개> 진행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14대 국회 비서관과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쳤으며, 익명의 출연자(목소리 변조)는 17대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했다. 이날 특별 초대 손님으로 참여한 도정호 보좌관은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쑤시개> 고정 패널인 박용진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이 함께했다.(팟캐스트 바로 듣기)

'영감님'이 한 일을 알고 있다

도정호 보좌관은 국회 의원회관을 "300개의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지역과 비례를 포함한 국회의원 300명이 아파트형 '공장' 같은 의원실을 한 곳씩 차지하고 있으며, '공장'마다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이다.

각각의 '공장'에는 고용주 1명(의원)과 피고용주 9명(보좌진 : 정규직 7명·인턴 직원 2명)이 근무하며, 이들의 관계는 '동지'부터 '갑을'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호칭 또한 별스럽다. 직원은 사장을 '영감님'(정치권 및 법조계에서 상사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하고, 사장은 똑똑한 직원을 '빠꼼이'라고 부른다. "김 의원실 신 비서관이 '빠꼼이'야"처럼….

의원 간 '입법 전쟁'으로 보좌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보좌진은 상황에 따라 '영감님'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차를 운전하며 일정을 보좌하는 수행비서(운전기사)는 '영감님'이 지난 여름 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다. 이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밖에서 하는 일은 운전기사가 알고 집안의 일은 가정부가 알고 있다'고 농담을 한다.

ⓒJTBC

'의원님의 사라진 돈다발'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부터 흥미로웠던 박상은 의원 사건은 차량 현금 도난의 진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밝혀진 경우다. 수행비서 김 모 씨는 박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신고하기 위해 현금 3000만 원과 자료가 든 가방을 차량에서 빼냈으나, 박 의원이 경찰에 '운전기사가 돈을 훔쳤다'고 신고하면서 검은 돈의 덜미가 잡혔다. 검찰은 지난 7월 30일 김 씨에 대해 "불법 영득의 의도가 없었다"며 비리와 관련한 공익 제보로 인정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반면, 검찰은 박 의원의 아들 자택을 압수수색해 나온 현금 6억여 원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보고 박 의원을 구속했다.

새누리당 현영희 전 의원도 운전기사의 금품 비리 폭로로, 의원직을 잃었다. 현 의원은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부산 중·동구)을 받기 위해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에게 5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운전기사 정 모 씨의 신고로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현 의원은 지난해 새누리당에서 제명당했으며 올해 1월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추징금 4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신 정 씨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최대 3억여 원의 포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기사의 신고로 비리 의원의 백태(百態)가 드러났지만, 사실 운전기사 대부분은 의원의 '갑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편이다. 험한 말은 기본이고 집안일은 예사다. 뒷좌석에 앉은 의원이 '운전 제대로 하라'며 운전 중인 수행비서의 앞좌석을 발로 차는 경우도 흔하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풍문에 따르면, 2007년 대선 당시 야당 의원의 운전기사가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여당에 제보했다. 그는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했으며, 증거로 "몸에 치열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시민 단체와 함께 관련 사실을 밝히기로 했으나, 기자회견 당일 운전기사와 연락이 두절돼 무위에 그쳤다.

도정호 보좌관은 "(민주노동당 등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의원의 '갑질'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거 때와 국회 입성 후 상반된 행동을 보이는 의원이 많다"며 씁쓸해했다.

이철희 소장은 "보좌진의 비애는 국회의원의 무례와 연결된다"며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패악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한 2004년 의원과 보좌진이 한 공간에서 같은 책상을 쓰며 월급도 균등하게 나눠 갔던 모습이 당시 신선했다"고 말했다.

보좌관, '그림자' 아닌 '실세'

국회의원 보좌진의 역할은 주로 그해 국정감사에 맞춰져 있다. 의원이 속한 상임위에서 감사해야 할 행정 부처를 대상으로, 자료를 열람·요청·분석해 언론사에 알릴 보도자료 및 국감 질의서 등을 작성한다.

이번 국감은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촉발된 검찰의 '사이버 검열'이 단연 이슈였다. 여당과 야당 쪽 입장이 나뉘었고, 검찰의 감청영장 건수와 감청 범위가 문제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임내현 의원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통상 구속영장 청구 기각률은 23퍼센트(%)이지만 통신감청을 위한 영장 기각률은 최근 5년 평균 4%에 불과하다. 특히 '사이버 망명' 사태와 관련한 질의에서 임내현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나는 카톡을 계속 쓴다"는 답변을 이끌어내 책임자의 문제 인식 수준을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날카로운 질문과 정확한 분석으로 국감에서 주목받은 의원 뒤에는 능력 있는 보좌관이 있게 마련. 보좌관은 의원의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실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개인으로 대표되는 의정활동이지만, 안주인인 보좌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정호 보좌관을 비롯한 임 의원실 보좌진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법사위 피감기관인 대법원·법무부·대검찰청은 의원실이 요청한 자료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다.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때 한 50개 정도를 준비한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한 자료는 피감기관이 눈치 못 채게 하려고 애쓰지만, 그쪽도 안다. 그래서 '준비 중이다'라며 시간을 끌거나, '안보와 관련한 비밀문서'라며 거부한다. 결국 '의원이 찾는다. 자료를 정 못 주겠으면 국장이나 실장이 와서 대면 보고하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자료를 들고 온다."

현직 의원 가운데 20여 명이 보좌관 출신이며, 정권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으로 수직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또 휴민트 및 정보력으로 기업의 고위직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권력 상승의 대표 사례다. 한화와 SK은 지난해 총수 일가가 구속되자 보좌관 특별 채용에 앞장섰으며, CJ는 오래 전부터 보좌관 영입에 공을 들이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보좌관의 위상이 바뀌면서 두세 사람이 팀을 이뤄 의원실을 이동하는 경우도 생겼다. 또 "전문성을 인정받은 보좌관의 경우, 의원이 상임위를 옮기면 '보좌하는 의원을 바꿔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라고 익명의 출연자는 전했다.

이철희 소장도 보좌진의 전문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면서 "대한민국 정치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직종은 보좌관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 사람만 쳐다보게 돼 '갑을 관계'에 익숙해질 수 있다"며 "4~5년 정도만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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