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국정원, 외교부는 물론 청와대 당국자들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이유로 함구하고 있어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를 내다보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시안>은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의 이수훈 위원장에게 긴급 인터뷰를 요청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북한 전문가이면서 지난 2005년부터 문정인 전임 위원장에 이어 동북아시대위원회를 맡고 있는 이 위원장은 "나는 2선에 있는 사람"이라며 요청에 선선히 응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지금 현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에 중요한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 위원장의 말에는 한층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2차 정상회담에 대해 "평화 문제도 중요하지만 번영 문제도 더 중요하다"면서 "합쳐서 평화번영정책인데 경제라고 하는 화두가 이번 회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지난 해 4월 '개성·파주권' '금강산·설악산권' '신의주·단둥권' 등 5개 경제권역 개발계획을 담은 '한반도 경제구상'을 작성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는 이 위원장은 "기왕의 경제협력을 심화 확대하는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이 위원장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그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지만 비핵화 문제가 정상회담에 걸림돌이 되서는 안 될 것이다. 1차 방정식이 아닌 고차방적식의 차원으로 풀어야 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중 등 4자 정상회담, 궁극적으로는 평화체제 출범 전망에 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남북정상회담이 4자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냐'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4자 정상회담 이전에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려야 하는데 그것이 9월에 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잘 치르고 9월 초 APEC을 거치면 4자 정상회담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확률이 높다고 보진 않는다"고 내다봤다.
한편 현 정부의 외교기조를 '균형외교'로 규정한 이 위원장은 '한국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수용하고 일본이 헌법개정을 시도해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축과 '북-러-중' 축의 냉전식 대립구도가 부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인정하면서 "그런 우려가 현실화 되지 않게 노력을 하고 있고 동북아지역의 다자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지난 13일 오후 정부종합청사 내 동북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평화 문제도 중요하지만 번영 문제도 더 중요하다"
프레시안 : 1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만났다는 것 자체에도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선 구체적 성과가 도출되어야 할 것 같다. 총론적으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수훈 : 그렇다. 실질적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다. 당장 구체적 기대성과를 열거하기 어렵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선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포용정책을 뛰어넘는 남북 간의 진정한 긴장 완화, 불신과 대립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 이를 통해 남북관계가 진정으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돼야하지 않는가 한다.
프레시안 : 평화체제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어떤 수준까지 진척시킬 수 있을까?
이수훈 : 이번에 어쨌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다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어야 한다. 또 핵문제 해결의 중간 과정이라는 특정 국면에서 하는 정상회담이라서 그런 요구가 많다.
그래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의지가 한 번 더 확인되는 차원에서의 평화 증진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화 문제도 중요하지만 번영 문제도 더 중요하다. 평화번영정책인데 경제라고 하는 이 화두가 이번 회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기왕의 경협이 심화·확대되는 것 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나. 우리 위원회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 내놓은 한반도 경제권 개념과 구상이 진진하게 논의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교류를 벗어나서 좀 더 넓은 공간단위를 활용하는 동북아 역내 전략과 더불어 해석할 수 있는 한반도 경제권 개념이 논의될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다 싶다.
프레시안 : 철도가 시험운행 차원을 넘어 연결되면 경제적 효과 등으로 인해 국민들 호응이 제일 높을 것 같다.
이수훈 : 동북아시대구상안에 TKR(남북횡단철도)를 조속히 개통시키고 그걸 중국 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연결시키는 계획이 있는데 핵문제 때문에 잘 안 됐고, 열차 시험운행도 1년 늦춰저 얼마전에 했다.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하위 단위의 과제도 논의 할 수 있지 않겠나.
"이번 정상회담은 6자 프로세스에 동력을 더할 것"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핵문제는 6자회담 틀로 가져가야 하고 정상회담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대통령이 북한에 다녀왔는데 핵문제에 대한 확답이나 다짐을 안 받아온다면 납득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이수훈 :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이번 정상회담은 물론 핵문제의 합의 이행 과정에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핵 해결을 하는 데 상당히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 회담이 핵문제를 위해서만 연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반드시 핵문제 해결하고 오라는 주문이 있는데, 그것은 남북 간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너무 일차방정식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다. 한반도 문제는 복합방정식이 필요하다.
물론 비핵화 문제가 왜 다뤄지지 않겠나. 청와대 안보실에서 이미 밝혔듯 비핵화 문제는 다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회담이 너무 핵문제에 집착돼서 포괄적 논의가 이뤄지는 것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역시 보수 진영의 지적이기도 하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그런 우려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유 제공 등 대북 경제지원 문제를 비핵화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마당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큰 규모의 경제지원이 결정되면 북한 입장에선 비핵화의 유인 요소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수훈 : 이번 정상회담은 6자 프로세스의 동력을 더하면 더하지 동력을 뺐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결정한 중요한 판단 근거는 6자 프로세스 속에서 핵문제 해결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협상이 가능하겠다는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양자회담이 6자회담과 6자 프로세스에 절대 부담을 줘서도 안 되고 주지 않을 것이다.
'대량의 에너지를 주겠다, 전력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서 6자회담 틀 속에서 가야할 에너지를 해치는 회담이나 합의는 없을 것이다. 6자회담의 동력을 보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군비 통제 부문도 다뤄질 것으로 보는데 우리도 30만 감군안이 있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지스함 건조 등 주로 해·공군력 강화를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선 이 부분은 대북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모순되는 지점이 있는데 어떻게 풀수 있을까?
이수훈 :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군비통제는 분리시켜 볼 수 있다. 핵문제는 6자회담 틀로 풀고, 군비통제는 재래식 무기를 우선 운용적 개념의 군비통제로 가보면 된다. 상호 훈련 참관이라든지, 훈련 공지 등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전력증강 문제는 북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꾸 덩치가 커지고 주변환경도 변하고 있고 대외활동이 커짐으로써, 그런 차원에서 기본적 자위력을 갖추는 것이다. 한미동맹도 변하고 있고, 안보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프레시안 : 그건 우리 입장 아닌가? 북한도 핵무기는 남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고 항상 강조했었다. 그런 논리를 북측이 인정할 수 있을까?
이수훈 : 북이 그걸 위협으로 느끼면 느끼는 것인데...핵의 경우 자기들은 남쪽을 향해 안 쓴다고 하지만 미사일을 시험하고 그러면 우리가 위협을 안 느낄 수 있겠나. 하여튼 우리의 전력증강 문제는 한반도 전체 상황에 관한 것이고 자위력인데 북이 그것에 크게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4자 정상회담, 불가능하진 않지만 확률 높진 않아"
프레시안 : 정상회담 발표 전 위원장께서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곧 방북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4자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을까 ?
이수훈 :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방북한 마당에 6자 외무장관 회담 후 라이스 장관이 북한에 갈 수도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4자 정상회담 문제는 6자 외무장관 회담이 먼저 열려야 가능하다. 외무장관 회담이 9월에 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열리길 바라는데 그건 아직 숙제다. 만약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면 4개국 외무장관들이 만나서 이 (정상회담)문제를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하는 논의를 하고...그리고 이번 남북정상회담 잘 치르고, APEC을 거치면 4자 정상회담이 불가능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확률이 낮다고 보진 않는다. 하여튼 외무장관 수준에서 좋은 여건과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거기까지 진도가 나갈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이 가능하려면 이벤트로라도 4자 정상회담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
이수훈 : 굳이 따지자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시퀀스(수순)로 갈 수 도 있지만 긴 평화협상을 진행할 수도 있다. 작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도 있고, 평화체제 문제가 상당히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절차도 중요하지만 역시 한반도에서 남북, 북미, 북일 이런 전반적 정세 속에서 한반도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고 덜렁 종전선언을 하고 협상을 하고 사인만 하는 평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평화가 진전이 많이 되고 그것이 담보될 수 있는 한반도와 주변 국제환경이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신냉전축 부활 막기 위한 균형외교
프레시안 :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고, 일본의 헌법개정이나 보통국가화를 통한 군비증강도 미국이 강하게 바라고 있다. 중국에선 이런 두 가지 현상이 뭉쳐지면 동북아에서 한-미-일이 과거 냉전 당시와 비슷하게 축을 형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훈 : 그런 우려는 우리가 더 크다. 다시 해양축 대 대륙축으로 각을 형성될까 하는 우려 말이다. 참여정부의 외교기조는 균형외교인데 이는 어느 쪽에도 무작정 편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폐기하는 정도까지 이탈해서는 안 되고 중국하고는 엄청나게 다방면으로 전면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로 잘 오고 있다. 하지만 지적한대로 미-일이 함께 가고 호주도 그 쪽에 참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상하이 협력기구로 뭉쳐서 신냉전축의 대립이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균형외교가 바로 그것이고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만들자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과거 같이 해양 대 대륙의 단층에서 부딪히고 갈등해서 우왕좌왕하는 현실이 오지 않도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프레시안 : 몇 년 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동북아 균형자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뜸하긴 한데 공식적으로 폐기했단 말도 못들었다.
이수훈 : 2005년 봄 공사 졸업식때 대통령이 말한 건데, 당시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만드는 등 우경화 되고, 중국도 군사력을 팽창하는 가운데 우리가 뭔가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서 미리 막자는 뜻에서 균형자론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균형자라고 하니까 영어로 '밸런서'(balancer)가 되서 "19세기 유럽에서 영국이 수행한 역할인데 한국이 뭔데 그런 역할을 자임하냐"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청와대에서 생각한 개념은 과거 영국식의 역량을 자신한 것이 아니라, 이 틈새에서 그런 일(역내 충돌)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고 과거를 돌아보자는 차원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낸 것인데, 하도 안팎의 화살이 세서 우리가 접었다. 하지만 그 취지와 인식은 그대로 살아있고, 지금은 균형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프레시안 : 현 정부 들어서 한중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았고, 한미관계도 처음에 삐걱거리다가 최근 한 두해 전부터 어쨌든 잡음은 없다. 그런데 한일관계는 처음에 좋다가 그 이후에는 영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대로 가도 별로 답답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도 보인다.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으면 정말 이대로 가는 건가?
이수훈 : 한일관계는 원초적인(역사) 문제를 안고 있다. 원초적 문제를 덮거나 무시하고 그걸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가자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한일 관계는 좋게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조금 따지자면 한일관계가 나빠지긴 참 쉽다. 한일관계의 원초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양국 간 입장차가 너무 분명해 해소되고 어렵지만, 경제나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양국 간 저변은 굉장히 좋다. 그래서 한일관계는 이렇게 가도 무방하다.
"참여정부 안보정책의 최종점은 다자간안보협력"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입장에서 답답할 것도 없어 보이긴 하는데, 한반도경제권 얘기를 하면 일본의 얘기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정하려면 한일관계에 모멘텀이 필요한 것 아닌가?
북일수교 등을 통한 배상금 지급 등 일본의 역할은 물론이고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한 동북아 발전에 대한 계획과 프로세스 안에서 사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이수훈 : 한일관계가 이대로 가도 좋다는 건 아니고, 좋은 협력관계로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일수교 문제는 납치이슈 때문에 속도를 못 내고 있어 아쉽다.
이 프로세스가 앞으로 가야 다른 것도 함께 갈 수 있다.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사고해서 북일관계도 개선하는 쪽으로 가면 좋겠다. 배상문제는 일본에서 북한에 가는 거고. 지금 국제금융기구(IMF)로 북한에 지원이 갈 수도 있는데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그런 돈이 없다.
우리가 지역 내에서 동북아개발은행을 추진하다가 여러 정세, 미국의 태도의 문제 때문에 준비하다 접었었는데 다시 검토해보려 하고 있다.
중국도 상당히 적극적이고 일본도 그렇다. 미국도 이젠 반대하지 않는다. 동북아에서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3성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고, 러시아 극동지역도 개발을 해야 하는데 자금이 없다. 그런 자금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나. 그것은 역내 개발은행을 만들어서 자금을 조달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한중일)에 지금 달러가 너무 많으니까, 그 돈을 잘 활용해서 동북아 개발은행 같은 걸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앞서 다자안보시스템을 강조했는데, 유럽의 경우 나토 등은 초기 몇 개국에서 자꾸 확대하는 그림으로 갔지만 동북아의 경우 역내 국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아예 시작도 어려울 것 같다. 중국이 빠지는 다자안보시스템, 러시아가 빠지는 다자안보시스템이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이수훈 : 동북아위원장이 된 직후 유럽 사회를 많이 들여다봤고, 대통령도 그런 주문을 해서 첫 보고서를 낸 것이 EU(유럽연합)와 관련된 것이었다. 유럽은 냉전이 절정기였던 70년대 초에 헬싱키 프로세스 만들어서 유럽안보협력회의를 만들었다. 적대하고 냉전하는 와중에도 공동안보, 다자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의 협력안보틀을 만들었는데 우리 지역도 이게 필요하다.
한국 같이 상대적으로 안보 문제가 취약한 국가는 자위력을 먼저 좀 갖춰야 한다. 그리고 한미동맹과 외교역량을 높여야 하는 보완축이 있고, 역내 다자안보협력 메커니즘이 생겨나면 (안보문제가) 완결되는 것이다.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최종점은 다자안보협력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핵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반대가 상당히 많았다. 끈질기게 밀어붙였고 의제화에 성공했고 안보정책조정회의까지 갔다. 이전에 정부의 고민은 미국이 이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데 있었다.
프레시안 : 미국은 아시아통화기금 설립도 마뜩찮아 했었다.
이수훈 : 미국이 어떻게 (다자안보시스템을) 생각하느냐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부산 APEC때 부시 미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긴 시간을 보내면서 '한미동맹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병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천명했고, 2006년 1월 신설된 한미전략대화에서 다시 확인했다.
중국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 않지만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러시아도 아주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6자회담 틀 내에서도 다자안보협력 워킹그룹의 의장국은 러시아다. 그런데 북한 문제가 남는 것인데 이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나?
프레시안 : 결국 평화체제 선언 이후에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이 가능한 것 아닌가?
이수훈 : 한번에 다 같이 가야 한다. 2.13합의에도 그렇게 해놓았다. 힐 차관보는 '동북아 다자안보나 평화체제 구축이 가장 시급한 건 아니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 했다. 미국은 이 정도로 적극적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외교전략에 맞게 다 해줬다"
프레시안 : 지난 5년간 보수진영과 일부 언론은 한미동맹이 와해돼서 안보가 악화됐다고 초지일관 지적해왔다. 그런 평가가 발목을 잡아서 실제 정책을 수행하지 못한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이수훈 : 한미관계에서의 불협화음과 이견이 있었던 것은 대북정책과 대북 인식에 대한 우리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과도하게 비쳐진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우리가 한미동맹을 재조정하면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협화음이었다. 엄청난 과제를 서로 대화협상절충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정상회담과 외교를 통해, 또 이라크 파병 등이 하나하나 보태져서 한미관계가 상당히 돈독해졌는데, 초기에 언론이 너무 그런 것(갈등)을 과대포장해서 우리 외교안보팀이 너무 애를 먹었다. 터무니없는 공격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하여튼 문민정부 이래 한미동맹 재조정의 과제를 참여정부가 깨끗이 정리했고, 그 점에서 미국이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미국의 세계전략, 외교전략에 맞게 대개 다 해줬다.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 같은 여러 가지를 자기들 세계전략에 맞게 다 해줬다.
반기문 장관이 어떻게 유엔 사무총장이 됐나? 미국이 'NO'하면 안 됐던 것이다. 한미관계가 안 좋은데 한미FTA가 어떻게 체결 됐겠나?
일본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도 가는데 노 대통령은 못 갔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는 거기 열 번 간 것 보다 더 이해와 소통이 더 깊다.
프레시안 : 보수진영의 그런 평가는 차치하고, 뒤집어 보면 한미관계에 있어서 현 정부가 말은 세게 하면서 실리는 미국이 챙기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든 미군기지 문제든 파병 문제든 다 퍼 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수훈 : 그렇게 양측으로부터 다 비판과 공격을 받은 측면이 있다. 진정한 동맹과 파트너십은 서로가 좀 잃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얻는 게 있다. 어떤 국면에는 좀 손해보고, 다음 국면에서 얻는 게 국가간 관계의 성격이다. 한미동맹의 역사가 그렇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때도 다 그랬다.
참여정부에서 그렇게 해서 국익에 심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크게 훼손되며 내준 것도 없고, 대체로 호혜적으로, 중요한 게 상호존중인데, 우리는 적어도 그런 것(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컸고 상처를 너무 받았다.
지금도 아마추어들이 외교안보를 다 망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 반박할 수 있다. 자료도 다 있다. 다음 (정권)사람들이 와서 외교를 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해놓았다.
프레시안 : 위원회 정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원회가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 중에서도 동북아시대 위원회는 핵심적인 위원회인데 성과를 차기정부에 어떻게 전달할지도 궁금하다.
이수훈 : 참여정부 거버넌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원회를 대단히 중요하게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고 위원장들도 월급도 안 받으면서 '좋은 경험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성심성의껏 노력했다. 성과가 많이 축적됐고 정착됐다.
그런데 동북아 위원회의 경우 워낙 중요한 게 미래전략 수립이라서 (당장 현실로) 안 된 것들이 많이 있다. 그걸 차곡차곡 기록 다 해 놨다. 대통령께서도 기록을 굉장히 중시해서 성공사례 뿐 아니라 나쁜 것, 실패한 것도 다 남겨놓으라고 한다.
동북아시대위원회는 21세기 한반도 정세나 역내정세를 볼 때 꼭 필요한 국가전략 싱크탱크고, 우리가 이 정도 역내 비전을 갖고 이웃 국가들에게 설득하고 도움을 구한 것은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이 정도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기구 하나 정도는 다음 정부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보고 능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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