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인생에 지갑을 잃어버린 일은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휴대폰을 '그날' 잃어버렸다. "인생에 오점"이었다.
그게 다 프레시안 때문이다. 프레시안협동조합의 '닥치고 일일호프'가 있던 10월 18일 휴대폰과 이별했다. '아이폰 6'가 곧 나온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 주의 조합원' 주인공, 강준모(32) 조합원 얘기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 싶어서 찾았다. IT 분야에 관심이 있는 조합원 모임인 '열린 프레시안(열프)' 구성원들과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프레시안의 웹 사이트에 대한 고민을 나누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대기 번호를 받고 문 밖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자는 그때 강준모 조합원을 처음 보았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일일호프 스태프들에게 그는 쿨하게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저는 어차피 일행 기다리는 거예요.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소비자 조합원인 줄도, 그때는 몰랐다. 기자의 기억에 강준모 조합원은 그날 1시간도 넘게 문 밖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을 주방에서 다시 봤다. 스태프들의 유니폼이었던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일행이었던 다른 조합원들은 다른 일정도 있고 자리도 꽉 차서 빨리 떠나셨어요. 저는 웹 사이트 관리 업무를 하는 김봉규 기자랑 어떤 방식으로 사이트 개편 기획을 해야 할지, 어떤 마인드인지 한 번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남았죠."
한가해지면 대화나 좀 나누려고 남았는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저랑 같이 '열프'에서 활동하는 김형규 조합원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오셨는데 주방에서 오징어 굽고 계셨어요. 그냥 '도와드릴 건 없어요'라고 말 한마디 꺼냈는데 순식간에 티셔츠를 입혀주시고 (스태프라고 쓰인) 목걸이를 걸어주시더라고요? 주방에 갔더니 오지은 조합원이 설거지를 도와달래요. 그래서 설거지 좀 하다가, 오징어 좀 굽다가, 쓰레기 좀 줍다가, 홀에서 받은 주문이랑 주방 '오더' 체크 좀 하다가 그랬죠. 그러다 보니 11시가 되고, 1시가 되고, 2시가 되더라고요."
일일호프를 밤 12시에 마감하고, 고생한 소비자 조합원 자원봉사자들과 직원 조합원들은 뒤풀이를 했다. 강준모 조합원도 함께했다. 집에 들어가서 시계를 보니 오전 5시였단다. 그리고 그날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프레시안의 제일 큰 문제? 뉴미디어가 아니라는 것"
강준모 조합원은 사회교육을 전공했지만, 어쩌다 보니 웹사이트 설계 일을 하게 됐다. 프레시안이 주식회사이던 시절, 정기 후원자인 '프레시앙'에 가입했다. 이유?
"프레시안의 논조가 좋았어요."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강준모 조합원도 "구좌를 뚫고" 조합원이 됐다. 이유?
"언론에서는 최초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시도니까 프레시안의 도전에 같이 참여하고 싶었어요."
원래 한 번 산 기계는 쉽게 버리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같이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는 강준모 조합원의 활동은 협동조합 정신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조합원이 된 다음에는 본인의 '전공'을 살려 프레시안을 위한 길을 찾고 있다.
"프레시안 사이트의 제일 큰 문제는 '뉴미디어'가 아니라는 거예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종이 신문이죠. 인터넷이 원래 문서의 축적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했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많은 매체들이 신문의 틀에 갇혀 있어요. 그 틀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죠."
강준모 조합원은 "프레시안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미디어 플래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디어 플래너'는 원래 광고 회사에서 쓰는 용어인데요. 광고가 만들어지면 그 광고를 라디오에 집중할지, TV에 집중할지 계획을 세우잖아요. 콘텐츠도 마찬가집니다. 인터넷에 집중할지, 종이로 뿌릴지 뭐 그런 것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 필요해요."
강준모 조합원이 하고 있는 고민은 프레시안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의 오랜 고민거리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문제기도 했다.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기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도 강준모 조합원은 직원 조합원보다 더 강한 열정을 보여줬다.
"좋은 화면, 좋은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요. 프레시안이 콘텐츠는 좋은데 형식이 콘텐츠의 질을 못 따라가거든요. 프레시안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좋은 뉴스 시스템이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기자들이 할 수 없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 것이 조합원으로서 소망이에요."
같은 고민을 하는 소비자 조합원들과 함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이렇게 가면 좋은 모델이 나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했다.
"남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는 성과를 내야죠."
강준모 조합원과 전화 인터뷰를 끝낸 뒤, 엄청나게 힘이 센 '빽'이 생긴 듯 든든함이 스멀스멀 퍼져가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심 없이, 오로지 신상 확인을 위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결혼, 하셨어요?"
"아니요. 애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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