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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땐 알바, 늙어선 날품팔이로 살라?

[박점규의 동행]<42> 영화 <카트>와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

홈플러스 시흥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김선영(45) 씨는 어린 시절 소풍날처럼 영화 <카트>의 개봉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7년 홈에버 월드컵경기장 매장 점거 파업의 주인공인 그와 동료들은 근무 때문에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해 영화가 개봉하면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2006년 1월 그는 시흥점에서 주 35시간 계약직 계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5시간, 어떤 날은 7시간 일했습니다. 2년이 지나기 전에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기간제법 시행을 앞둔 2007년 4월, 회사는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동료 언니를 재계약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억울했던 언니가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동료 언니가 잘리면, 다음 차례는 선영 씨였습니다. 기간제 계약직들이 쫓겨난 다음은 정규직 차례가 됩니다. 선영 씨는 노조에 가입해 정규직노조와 함께 싸웠습니다. 기간제법 시행을 일주일 앞둔 6월25일 노조는 전면파업을 시작했고, 월드컵경기장 매장 점거파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매장으로 돌아가기까지 500일이 넘는 시간, 선영 씨는 지금도 그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카트>의 주인공들

▲영화 <카트> 포스터. ⓒ명필름
선영 씨가 일하는 홈플러스 시흥점에는 200여 명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단시간 계약직 노동자들입니다. 이 외에 용역, 파견, 하청업체 소속의 노동자들이 200여 명이 일합니다. 선영 씨는 2007년 파업에 참가해 계약해지되지 않고,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르면 유통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대단히 높습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지난 4년 동안 매출액이 48%나 급증했고 2013년 순이익도 업계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간접고용 비율이 300인 이상 사업장 평균보다 10% 가량 높았고, 직접고용 기간제를 합친 비정규직 비율은 무려 46.8%에 이르렀습니다. 전체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입니다.

2013년 1만 명의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마트는 정규직 인원이 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30% 가까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간접고용 노동자가 23%에 이르렀습니다. 선영 씨가 일하는 홈플러스도 비정규직 비율이 40.05%, 간접고용 비율이 23.67%에 이릅니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파업이 7년이 지난 오늘, <카트>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28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1877만6000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이었습니다. 노동계 통계는 850만에 이르지만, 정부 통계로도 비정규직이 6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정부 통계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정규직은 최근 3개월(6~8월) 동안 월평균 임금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5만8000원)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은 1.8%(2만5000원) 늘어나는데 그쳐 격차가 더욱 커졌습니다.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일의 혜택을 받는다는 응답이 모두 줄었고, 국민연금 가입률과 건강보험 가입률도 하락했습니다. 경제민주화와 비정규직 전면에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치하 최악의 근로조건

지난 7월17일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비정규직을 놔두고 내수를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국민행복시대를 위해서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중구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했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 10월26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해 안전업무 등에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 기존 경력이 인정되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종합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에서는 비정규직 사용 제한 대상 업무에 여객 운수사업, 철도사업, 해상여객운송사업, 항공운수사업 등의 업종이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6000명의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일까요? 광주와 대구를 비롯해 도시철도 비정규직 역무원들도 다 정규직이 되는 걸까요? 지하철, 버스, 선박을 수리하는 노동자들도 정규직의 꿈을 꿀 수 있는 걸까요?

언론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비정규직 근무 기간의 경력도 인정해줄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으로 임금이 인상되면 임금인상분의 50%를 1년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비정규직 종합계획이 발표되면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신규채용하면서 경력을 극히 일부만 인정했는데, 이를 바꿔 근속기간을 모두 인정해 줄까요?

안전 업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 근속기간을 전부 인정한다는 정부 계획은 극소수의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의 진짜 목적은 기업이 비정규직을 맘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전 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한다?

정부는 파견노동 확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직업소개소 양산이라는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를 숨겨놓고 '안전업무 비정규직 사용제한'으로 포장했습니다. 늑대가 양이 탈을 쓴 것입니다.

첫째, 파견노동 확대입니다. 정부는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림어업을 파견 업무에 추가하고, 고소득 전문직·관리직에 대한 파견 제한 완화, 고령층 파견 전면 허용 등을 추진한다고 언론에 알렸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매년 1000명의 노동자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제조업에 고령층 파견이 전면 허용되면, 현대차는 신규 채용을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기술이 좋은 숙련 노동자들을 파견업체를 통해 날품팔이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입니다. 정부는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년쯤 되면 근로자가 숙련되니까 해고하기 어렵다. 일본은 5년으로 돼 있어 합리적이고 아예 기간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동계의 반발 때문에 정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사용자단체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이나 기간 자율 결정권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종합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계약직 노동자는 3238명으로 2010년 38명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이 중에서 기간제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해 정규직이 된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2년 이내에 모두 그만둬야 했습니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정규직을 신규채용을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3년으로 연장되면 일정하게 숙련도 갖추게 되고, 계속 돌려쓰기를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직업소개소 양산입니다. 정부는 법인사업자도 시설 규모 20㎡ 이상이면 유료직업소개소를 운영할 수 있고 직업소개소 명칭에 ○○고용센터, ○○은행 등의 명칭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복잡한 '민간 고용서비스 시장 활성화 방안'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유료 직업소개 사업의 시설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안정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11월10일까지 입법예고할 예정입니다.

시흥, 안산의 시화, 반월공단에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인력소개소를 전국으로 확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근로기준법 9조와 직업안정법의 중간착취 금지 조항을 무력화시키고, 불법 사람장사를 양성화하겠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일본처럼 대기업이 인력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왔습니다. 일본의 최대 인력파견업체인 '굿 윌(Good Will)에 가입한 임시직 구직자들이 무려 270만 명에 달하고, 하루 평균 파견인력이 3만 명이 넘습니다.

삼성고용센터, 현대인력은행이 생겨나게 됩니다. 대규모 직업소개소는 재벌 3~4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겁니다.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가 통과되면 젊을 때는 떠돌이 알바 인생, 늙어서는 날품팔이 파견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젊은 노동자들은 이 회사, 저 회사를 1~3년 계약직으로 떠돌아다닙니다. 늙어서는 파견업체를 통해 이 공장, 저 공장을 헤매고 다녀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을 외치며 머리 숙여 인사하던 선영 씨와 동료들이 일손을 놓고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은 못된 회사와 함께 2년이 되기 전에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07년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인한 이들의 파업은 영화 <마트>의 배경이 됐다. ⓒ프레시안자료사진

경제민주화와 비정규직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지금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를 꺼내들고, 전 일터의 하청화,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1990년 대학과 공장에서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영화 <파업전야>가 상영됐고, 영화 상영을 막으려는 백골단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침묵하고 외면하던 노동자들이 스패너를 들고 일어서는 모습입니다.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의 마지막 장면이 궁금합니다. 선영 씨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하신 날인 11월13일 개봉하는 <카트>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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