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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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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영화'가 아니다

[기자의 눈] 영화 <카트>가 말하는 2007년 그들, 2014년 우리

"사람 대접 좀 해달라고! 투명인간 취급 하지 말라고!"

선희(염정아 분)가 울부짖는다. 선희는 업계 1위 '더마트'에서 5년 간 벌점 한 번 없이 일했던 비정규직 계산원이다.

"우리는 버림받았어. 우리는 국민이 아니야."

황선영 씨가 말했다. 선영 씨는 홈에버(현재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일했다.

선희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선희는 선영 씨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일했던 마트에서 하루 아침에 잘렸다. 그리고 싸웠다.

"저 생활비 벌러 나오는 거거든요. 반찬값 아니고요." (선희)

"이 나이 되면 혼자되는 사람이 참 많아요. 동료들 가운데 이혼하거나 남편이 죽거나 해서 여성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80만 원이 그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생계비인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요?" (이랜드노조 조합원 ☞관련기사 보기)

선희와 선영 씨 싸움의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은 절망했고, 싸우면 이길 줄 알았고, 다시 절망했고, 다시 싸웠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은 현실일까, 영화일까

▲영화 <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이랜드리테일 소속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의 싸움을 극으로 재구성했다.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제작사의 자체 평가는 지나치지 않다. 오히려 104분의 러닝타임 내내 어디서부터가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몇년 전 눈 앞에서 봤던 그 장면인지 헷갈려야 했다.

하긴, 그때도 그랬다. 2007년 6월 30일, 장을 보러 토요일 오전부터 일찌감치 나온 사람들로 북적대던 상암동 홈에버월드컵점. '아줌마'들이 자신의 일터에 들어가겠다고 용역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던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한 용역 경비원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이 순식간에 눈 앞을 가득 메울 때, 이 장면이 정말 '현실'일까,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관련기사 보기)

600여 명의 '아줌마 부대'가 마트를 점거하고, 계산대 사이사이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나는 이 나이 돼서 새삼스럽게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할 때, 영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에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1박 2일"로 예정했던 아줌마들의 마트 점거 농성이 20여 일동안 이어졌고,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기까지는 510일이나 걸렸다.

510일 동안 보았던, 들었던 모든 '현실'들이 <카트>안에 고스란히…

▲ 2007년 7월 20일, 홈에버월드컵점을 점거 중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프레시안
그 510일을 몰랐다면, 아마 영화 <카트>를 보고 "영화니까" 했을지 모른다.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 절차상 하자 좀 있다고 결과 바뀌는 거 아니잖아"하는 점장의 신경질적인 말도, 자신이 잘린다는 공고문을 보고도 "외주화가 뭐래요, 성님?" 묻는 머리 희끗한 청소 노동자의 순진한 눈망울도, 창고 바로 옆의 퀘퀘한 탈의실에서 동시에 울리던 '계약해지 통보' 문자 메시지 알림음들도, 회사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고 형광등조차 꺼진 회의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그 지루함도, 파업이란 걸 하면서도 불평을 호소하는 고객에게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던 몸에 밴 '고객 서비스 정신'도, 오랜 파업으로 생활비가 없어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던 아이들의 모습도, 지도부 앞으로 날아 온 수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장도, 모두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했던 '과장'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이랜드 파업 510일을 지켜보면서, 기자가 보았던, 들었던 모든 '현실'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겪어야했던 많은 날들은 비현실적이었고, 영화 <카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심지어는 아주 세밀한 순간까지도 <카트>는 고스란히 옮겨왔다. 계산대 사이 사이에서 종이 박스를 깔고 누워 자는 장면,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어 계산대 위에 매달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매장 물건은 털끝도 건드리지 않던 이들, 남편 등 가족의 타박과 반대에 어쩔줄 몰라하던 어떤 이, 싸움이 길어지면서 시작된 조합원끼리의 갈등, 생계를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했던 누군가까지….

거의 모든 장면들이 과거 어느 날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보는 듯했다. 이런 느낌은 <카트>가 '배우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관련기사 보기)

선희는, 태영은 오늘도 싸우고 있는 노동자이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함을, 현실보다 오히려 영화가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거기에는 선희의 아들 태영(도경수 분)의 역할이 크다.

"언제 급식비 냈는지 기억이나 해?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은 읽어나 봤어?"

일할 때는 수당도 못 받는 연장근무를 하느라, 파업을 하면서는 회사와 싸우느라 아들 급식비조차 제때 챙겨 내지 못하는 엄마 선희에게 태영은 따져묻는다.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알바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태영은 그제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편의점 유리문을 부쉈다고 편의점 사장에게 얻어 맞고, 경찰서에 끌려갔던 아들에게 선희는 묻는다. 왜 그랬냐고.

"억울해서."

태영의 간단한 대답에 선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선희가 싸우는 이유기도 했다. 영화가 태영의 입을 통해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선희만이 아니다. 오늘도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영화의 출발점이 된 이랜드 파업은 벌써 7년 전 이야이기지만, '힘 없고 억울한' 선희는, 태영은 오늘도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다가 하루 아침에 '투사'가 돼 버린 선희는, 자신이 부당한 일을 겪고나서야 뒤늦게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된 태영은, 또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 <카트>의 개봉일은 11월 13일이다.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오랜 싸움이 비로소 끝난 날이기도 하다. 2008년 이날, 홈에버에서 일하던 '아줌마 계산원'들은 노조 지도부 12명의 퇴사를 조건으로 일터로 돌아갔다. 그들의 오늘은 어떨까.

▲ 2007년 6월 30일,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서울 상암동 홈에버월드컵점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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