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릴까? 2015년은 해방 70주년이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이기도 하다. 2차 고위급 회담은 갈림길이다. 다시 불신만 확인한 체 기회를 놓치면,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처럼, '남북관계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시기'를 보낼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도 전망은 비관적이다.
회담 운영능력이 있는가?
박근혜 정부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인천에 북한 대표단이 왔을 때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화면에도 비쳐졌지만, 북한 대표단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매우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황병서가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탔고, 김양건은 출구를 찾지 못해 좀 헤매다 늦게 왔으며, 그사이 기다리던 최룡해는 당황한 채로, 할 수 없이 황병서 옆자리에 올라탔다. 그 차 운전석 옆자리는 북한 경호원이 탔기에, 운전사를 제외하고 모두 북한 대표단으로 채워졌다.
그동안 남북 회담을 많이 해 봤지만, 그런 장면은 처음 봤다. 차량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우리 측의 누가 차량에 동승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행사든 혹은 회담이든, 상대측의 의도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고, 대체로 이 때 모아진 정보들이 우리 측의 회담 전략 작성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남북 회담 역사에서 이번 사태는 아마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두 가지다. 처음부터 차량 배치 계획이 없었거나, 아니면 있었는데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다. 사실 회담 준비는 정책뿐만 아니고, 경호와 의전 등 상당히 복잡하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통일부, 국정원, 그리고 경찰과의 행사진행에 따른 협력체제가 미비했거나, 사전준비가 부족한 결과이리라.
또한 회담이 아니라 방문이라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식당이 갑자기 변경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장소의 특성이나 동선의 배치라는 것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서 통일부의 실국장, 국정원의 담당 차장까지 모두 우르르 몰려나가 상견례를 한 장면도 이해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는 상대 측 단장과 대표 면담(혹은 회담)을 열어서, 왜 왔는지, 어떤 메시지를 준비해 왔는지, 특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상대 측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을 해야, 우리가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행사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정부가 과연 북한 대표단의 의도와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인천에서의 남북 접촉과정을 보면, 회담 전략을 부처별로 조율하고, 결정하고, 지휘하는 주체가 불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실무부서인 통일부가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통일부는 더 이상 북한의 대화 상대가 아니다. 북한은 회담 상대를 청와대로 고집하고 있고, 제안이나 항의 또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관계 제로 시대가 벌써 7년이 되면서, 통일부는 회담 운영 능력을 상실했다. 모든 문제의 실체가 인천이라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재확인되었을 뿐이다.
'삐라', 안 막을까? 못 막을까?
더 중요한 것은 회담 내용이다. 올해 2월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핵심 합의사항이 바로 비방 중상 금지다. '삐라'(전단) 문제는 2차 고위급 회담의 개최와 향후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의제다. 정부는 보수 단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현재 쟁점은 보수단체가 아니라, 정부다.
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그렇게 완강하게 보수단체의 삐라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할까? 막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말이다. 특히 교류협력법이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삐라 살포는 군사 지역 내 혹은 근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용 법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삐라를 못 막는 것이 아니라, 안 막는 것이다. 그것이 현 사태의 본질이다. 박근혜 정부는 심리전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 이미 보수단체의 삐라와 관련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밝혀졌다. 국방부도 통일부도 절대로 심리전을 중단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경찰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보수 단체를 막겠는가?
왜 대화를 하자는 것일까?
정부는 회담만 제안한다. 회담을 운영할 의지도, 준비도, 능력도 없이. 심리전을 계속하면, 회담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관계 악화의 행동을 계속 하면서, 말로만 회담을 제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부 장관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회담을 하려는지,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 언제든지 입장이 바뀔 수 있다. 2015년은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의 실체가 드러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북·일 관계도, 북·러 관계도 새로운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북·중 관계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 북한의 외교정책에서 대남 정책의 우선순위는 언제든지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리할 때, 협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통일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회담을 준비할 때다. 왜 남북대화가 필요한지, 만나서 무엇을 논의할지, 그러기 위해서는 현안을 어떻게 조정해 나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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