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공동체밭과 개인밭 두 곳에서 마늘농사를 지었더니 그야말로 마늘 풍년이다. 두 곳 모두 작황이 좋아서 씨알도 굵고 대만족이다. ‘김한수와 아이돌’의 마늘과 양파공동체에서 각자 몫으로 나눈 마늘이 여섯 접 남짓하고 가좌농장의 개인밭에서 거두어들인 마늘도 일곱 접쯤 된다. 한 해 자급자족할 마늘을 빼고 여기저기 나눔을 한다고 해도 꽤나 많이 남는다.
이를 어찌한다,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흑마늘을 만들어 먹을까 아니면 장아찌를 담글까. 그래도 너무 많다. 고심 끝에 가까운 벗들에게 마늘을 팔기로 했다. 전부터 내게서 이런저런 작물을 사고 싶어하는 벗들이 많았지만 자급밥상을 위한 소규모 농사를 짓다 보니 도무지 팔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기 마련인 감자나 고구마를 비롯해서 땅콩, 옥수수, 당근, 양배추, 토마토 등속은 우리 식구 먹을 걸 대기에도 바빴다. 그런데 드디어 팔 수 있는 작물이 나온 것이다. 도시농업에 입문한 지 꼭 6년 만이다. 얼추 가늠해보니 네 접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팔 수 있는 작물이 생기면 꼭 좀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벗들에게 연락을 하니 반색을 하며 당장 보내달란다. 알았다고 답을 한 뒤 전화를 끊으니 아뿔싸, 정작 중요한 가격을 제시조차 하지 않았다. 마늘을 팔겠다면서 가격도 정하지 않다니, 매사에 엄벙덤벙하기 일쑤인 스스로의 아둔함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쨌건 그제서야 인터넷을 통해 생협에서 파는 마늘 값을 알아보았다. 한살림과 아이쿱생협과 여성민우회생협의 마늘은 한 접당 2만 5000원 안팎이었다. 답답하다. 차라리 그냥 줬으면 줬지 추호도 그 값엔 팔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 소속된 우리들은 우리가 키운 작물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검정 비닐과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유기순환 생태농업을 견지해왔기에 그만한 자부심이 없다면 외려 이상한 일이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기계를 동원해서 로타리도 치지 않고 밭을 농기구만으로 일구어왔다. 모든 게 흙을 살리기 위함이다. 생태뒷간을 지어서 자가퇴비를 만들고, 집에서 모은 오줌과 막걸리를 섞어서 웃거름을 주고, 손수 만든 난각칼슘과 효소를 섞어서 엽면시비를 해온 것도 자연에서 얻은 만큼 자연에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작물도 되도록 강하게 클 수 있게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삼갔다. 어지간히 가물지 않고서는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물을 대주지 않았고,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천연농약의 사용도 자제했다(물론 진딧물은 예외다).
그 덕분에 우리가 키운 작물을 먹어본 노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이구동성으로 이상하게 옛날 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 옛날 맛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그러해야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서 찾아보기 어려운, 작물 고유의 자연스러운 맛이 옛날 맛이다. 하지만 유기순환 생태농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그간의 지난했던 노고를 생각하면 더더욱 마늘을 그 값에는 도저히 팔 수 없었다. 농기구로 밭을 일구고, 왕겨와 볏짚과 낙엽으로 보온을 하고, 오줌을 모아서 웃거름을 주고, 두어 차례 김매기를 하고, 낙엽으로 멀칭을 하고, 마늘쫑을 뽑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함의 연속이었다. 마음 고생은 또 어떠했는가. 무탈하게 겨울을 잘 견디고 있는지 겨우내 무시로 농장에 들러 밭을 둘러보고, 봄가뭄이 지속되었을 때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몸고생보다 마음고생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나는 좀더 규모있게 농사를 짓는 지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 또한 그때까지 값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올해 마늘과 양파 값이 워낙에 똥값인 데다가 현지의 농민들이 마늘과 양파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 끝에 한 접당 5만 원으로 값을 책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밑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질 않았다. 나는 그 즉시, 마늘을 사기로 예약한 벗들에게 전화를 넣어서 값을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비싸다고 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벗들은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더이상 뒷말이 없었다. 순간 뭉클했다. 제값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오히려 벗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나중에 마늘을 받아서 먹어본 벗들은 엄지손가락을 쑤욱 치켜세우며 좋은 마늘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해왔다. 나는 그런 벗들의 반응에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어쨌건 그렇게 해서 마늘 네 접을 2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시중가격보다 서너 배는 비싸고 생협과 비교해도 두 배나 높은 값에 판 셈이다. 그러나 제값에 작물을 팔았다는 보람보다는 복잡한 감정이 앞섰다. 시중에서 마늘 한 접이 만 원에 팔린다면 현지에서는 2000원쯤에 거래가 된다는 얘기다. 사실 전업농들은 평당 생산비용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든다. 비닐에 농약에 화학비료 같은 농자재 값은 말할 것도 없고 농기계 사용비용에 인건비에 운반비까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돈이 무한정 들어간다. 그러니 마늘이 그 값에 거래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마늘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니 마늘과 양파 주산지마다 밭을 갈아엎다 못해 항의시위가 봇물을 이루고 있었다.
가족의 목숨줄이 달린 수확을 포기한 채 생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나는 차마 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일반 노동자들이 해마다 되풀이해서 1년치 월급을 떼어먹힌다면 오늘날 농민들의 처지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농민들처럼 사방에서 목숨줄을 끊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누구도 농민들의 얘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농가를 돕자는 이벤트성 행사가 번개장터처럼 열릴 뿐 대다수 도시 소비자는 마치 횡재를 하기라도 한 양 싼 값에 내심 반색한다. 사실 도시의 삶은 농촌 수탈을 근간으로 유지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는 저임금 구조 속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삶은 유지될 수가 없다. 일반 노동자들에게 유기농산물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언제가 본 해외 다큐멘터리에서 극빈의 삶을 이어가는 멕시코 노동자의 가족이 1달러짜리 파프리카와 햄버거 앞에서 고민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병을 앓는 가족들을 위해 간절히 야채를 사고 싶었던 아이들의 엄마는 결국 살기 위해서 피눈물을 머금고 햄버거를 사고 말았다.
그러나 그건 먼 이국땅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땅에서도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실업자가 차고 넘치는 와중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천만 명을 웃도는 구조 속에서 그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건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는 먹고 산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내게서 마늘을 산 벗들은 다들 먹고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선뜻 지갑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피폐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에게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을 먹으란 얘기는 내게 몸에 좋으니 산삼을 사먹으란 얘기나 다름없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은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는 데 익숙해졌다. 도시가 농촌을 수탈하고, 자본을 독점한 세력이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구조 속에서, 이 땅의 지식인과 언론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켜왔다. 생산자가 소비자로 전락하는 순간 수탈은 정정당당해진다. 소비자가 왕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든 소비자는 무기력해진다. 소비자는 애오라지 소비자일 뿐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대비해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과거에 우리는 어지간한 것은 스스로 해결했다. 이사는 친구들과 했고 도배는 아버지들이 손수 했다. 큰 병이 아니고서는 스스로 치유법을 찾았고 김장과 장담그기는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장이사를 소비하고, 도배사를 소비하고, 병원을 소비하고, 마트를 소비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자기 살도 자기가 빼지를 못해서 숀리 같은 이를 찾아 가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형광등도 갈 줄 몰라서 출장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해야 정상인 공부도 이제는 학원이라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가 중심인 사회의 가장 무서운 함정은 우리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경쟁지상주의가 힘을 얻는다.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만 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은 소비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는 점점 공고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가난은 개인의 무능함이나 천성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얘기가 권위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그 얘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단박에 꿰뚫어볼 수 있다.
후배 가운데 도배사가 있다. 20년 전에 그 후배는 일당 15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이 일취월장한 지금은 되레 12만 원을 받는다. 1급 용접공은 한 때 35만 원의 일당을 받았지만 이제는 25만 원을 받는다. 20년 전 1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지금도 100만 원을 받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전에 100만 원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정규직이었지만 물가가 몇 배가 뛰어오른 지금 100만 원을 받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는 ‘실업자나 비정규직은 경쟁력을 갖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며 억울하면 지금부터라도 스펙을 쌓으면 얼마든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기 여부를 떠나서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밀양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향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이기주의자라고 서슴없이 몰아붙이는 이 사회를 과연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까.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 살기 위해선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도시를 지배하는 의식에 맞서 저항하고 과감히 결별해야만 한다. 당연히 소비를 중심으로 짜여진 의식구조도 해체하고 생산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서로의 노동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보살필 수 있다.
눈이 많이 왔던 작년 겨울에 칠순을 넘긴 경비아저씨가 혼자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중년의 아낙네 하나가 사납게 눈을 흘기며, “위험한데 저 뒤쪽은 왜 눈을 안 치우나 몰라”하고 부러 큰 소리로 게두덜거리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분리수거함에 쏟지 않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분리수거함 옆에 내려놓고 사라지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무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의 관리비에는 경비아저씨의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보다 더한 권리를 행사할 권한이 있으며 경비아저씨는 어떠한 경우에도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일상적 폭력을 자행한다는 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일찍이 공자는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소비자부터 없애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청소부도 노동자고 일용직도 노동자이며 의사나 판사도 노동자다. 학생도 노동자고 선생도 노동자이며 고위공직자나 대통령도 노동자다. 우리의 의식이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임금과 대우를 받는 걸 당연시 여기게 될 때 세상은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위험한 일을 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의사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때는 도시가 더이상 농촌을 수탈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고 어쩌면 모든 농민은 공무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모든 농민들은 더이상 화학농법으로 땅을 수탈하지 않고 유기순환 생태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게 분명하고 도시민들은 누구나 걱정없이 일상적으로 유기농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도 마늘 한 접에 5만 원 받은 걸 마음놓고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서 부쩍 가슴에 다가오는 시 한 편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는 청년시절부터 좋아해왔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울림 속에 어쩌면 위에서 얘기한 즐거운 꿈을 꿀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10월 현재 71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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