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시간과 조건을 스스로 만들 수는 없을까? 30대 중반의 여성 6명이 '조금 다르게 일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힘을 모았다. 2~6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며, 아이를 낳기 전 회계·홍보·마케팅·디자인 등의 일을 했던 전문가들이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사회가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찾는다는 의지로 만든 협동조합. '솜(SOcial Mate, SOM)협동조합'이다.(☞ 솜협동조합 바로가기 www.tobesom.com)
사무실 없고 일하는 시간도 제각각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문화가 바뀌고 있지만 일반 회사의 노동형태는 여전히 정해진 시간과 자리에 반복된 일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협업 컨설팅 전문가 제이컵 모건은 <일의 미래>(조성숙 옮김, 생각연구소 펴냄)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정형화된 근무시간을 고집하는 회사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일하고 싶고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반 회사의 노동조건에서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솔깃한 말이다.
솜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한다. 먼저 고정된 사무실이 없다. 멤버십 회원으로 속한 '하자센터'에서 회의를 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각자의 집에서 작업한다. 일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오전 시간에 주로 일하고, 못 다한 일은 아이가 잠든 밤이나 새벽에 하기도 한다. 일의 특성상 그들에게는 고정된 근무시간이 필요 없다. 제안받은 업무를 약속한 날까지 잘 마치면 된다. 호칭은 별명으로 하며, 회의할 땐 반드시 높임말을 사용한다. 일감이 들어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서 하며, 수익은 전적으로 맡은 사람의 몫으로 한다. 다 같이 작업했을 때는 일의 양에 따라 협의하여 분배한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36.5살로 비슷한 연배들이다. 일의 성격상 논쟁거리가 많을 수 있으나, 오히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한 사람의 반대 의견도 귀 기울여 반영함으로써 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어느 누구라도 반대하면 그 일을 포기한다. 조합의 평화와 신뢰관계를 잘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육아, 일 함께하려면 협동조합밖에 없어요"
솜협동조합이 창립한 것은 지난해 1월이지만, 시작은 2011년 8월 '조금 다르게 일하기'라는 취지로 모인 작은 모임부터다.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선희 조합원과 중학교 동창인 장민경 조합원, 그리고 장민경 조합원의 대학원 동기인 이은경 조합원 세 사람이 모임을 시작했다. 현재는 조합원이 총 6명으로 초기 모임 구성원 외에 디자인을 하는 이소현 조합원, 마케팅 10년 경력의 이주연 조합원, 홍보와 디자인 기획을 하는 권소현 조합원이 있다.
출자금은 최소 1계좌에 5만 원인데 처음 50만 원씩 출자했으며, 매월 5만 원씩 조합비를 낸다. 사무실이 별도로 없어 고정비용이 안 드니 출자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2012년 청년 등 사회적기업 육성사업과 2013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H-온드림 펠로'로 선정되어 받은 지원금 덕에 자본금에 여유가 있었다.
협동조합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들은 다른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들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선택하기에 협동조합만한 게 없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장민경 조합원은 이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사회가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니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어요. 육아와 일을 함께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할 일은 협동조합밖에 없어요. 협동조합을 통해서 예전에 해오던 일도 이어서 할 수 있고, 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 자기 자신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어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서로 배려하며 일해
솜협동조합은 사회적 동료라는 의미를 담은 '소셜 메이트'라는 이름대로 사회적경제 조직의 업무파트너로서 경영지원 일을 맡아 해왔다. 지난해 서울 구로구의 사회적경제 페스티벌을 맡아 디자인, 홍보안내지 발행, 행사기획을 했다. 올해 7월에는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의뢰를 받아 협동조합 주간행사의 포스터와 자료집을 만들었고, 최근까지 사회적기업 상품 기획행사를 맡아서 선물꾸러미를 기획하고 포장하여 내놓는 일을 해왔다. 또한 서울시 시민제안 평생교육 지원사업으로 '두 번째 커리어 프로그램'이라고 하여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일을 찾는 길을 여는 교육을 했다. 얼마 전 15회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는데, 비용은 일반 기업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공공기관 지출표준금액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기에 거의 인건비 정도만 받는다.
이들의 업무능력을 보니, 시장이 넓고 가격이 높은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을 하루 종일 할 수 있으면 가능해요. 일반 기업들은 수시로 대응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고려하지 않아요." 장민경 조합원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선희 이사장은 다른 면에서 생각했다. "사회적경제 영역은 배려가 있어요. 우리가 홍보를 맡은 터치포굿의 사례를 보더라도, 홍보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일반 홍보기획사에서 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경제사정을 배려하고, 그곳에서도 우리가 아이들을 돌보는 오후 5시 이후는 피해서 연락하는 배려를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경제가 여성들이 육아하면서 일하는 데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요?" 사회적경제는 자기만 잘 살자는 게 아니고 서로 배려하면서 함께 잘 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일터로서 최적하다는 말이다.
이들 개인이 지금까지 받은 월 수익은 평균 80~100만 원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얻은 것이라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들은 개별 작업에서 얻는 수익은 개인의 것으로 인정한다. 보통 6명이 함께 일하기보다 2~3명이 맡아서 하는데, 수익 배분은 협의하여 정하고 아직 이와 관련한 갈등은 없었다. 개인 수익의 20퍼센트(%)는 조합에 내 조합비로 적립하며, 나중에 어느 정도 적립되면 조합 활동비로 사용하려고 한다.
다시 일하고 싶은 여성의 희망이 되고 싶다
솜협동조합을 세우면서 이들은 두 가지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다르게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리를 잘 잡아서 이들과 같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일터가 되는 것이다.
목표에 따라 미래 조합원을 키우려고 한다. 현재 두 사람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수공예 능력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교육이 가능하다. 솜협동조합이 그동안 해온 일을 그대로 전수하여 조합원으로서 자격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에서는 어떠한 비용도 받지 않으며, 조합 활동의 하나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협동조합을 꾸리는 것만큼 인큐베이팅 작업에도 힘을 쏟는다. 다시 일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에게 모델이 되는 것, 솜협동조합이 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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