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동안 국내 산림정책은 전란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복원하려는 녹화사업이나 자원화사업 등 가시적이거나 물질경제적인 1차원적인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는 숲, 생태, 둘레길, 올레길, 등반, 산악이벤트, 가족캠핑, 주말농장, 전원생활, 귀농 등 산림이 주는 무형의 가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산림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 산림복지 개념이다. 그런데 복지하면 비용 문제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산림복지는 최소비용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최상의 복지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도시숲을 비롯해 산림복지 서비스를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산림청 주도로 시작됐지만, 아직 초기단계다. 이에 따라 산림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참고할 산림복지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은 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가깝게는 일본, 멀리는 유럽의 프랑스, 스위스, 영국, 독일 등 해외 5개국과 국내 산림복지 현장 취재로 이뤄졌다. 총 7회에 걸친 이 기획의 마지막 편은 국내 산림복지 현장인 '치유의 숲' 탐방과 산림청장 인터뷰로 구성됐다. 편집자
국내에 생애주기별 산림복지의 체험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치유의 숲'이 국가 직영으로 몇 곳이 있다. 그중에서도 경기도 양평, 강원도 횡성, 전남 장성 등 3곳에 있는 치유의 숲들이 '대표 치유의 숲'들이다.
생애주기별 산림복지는 태교->유아->청소년->가족->수목장 등 모든 연령대에서 숲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우리는 모두 숲에서 나고 숲에서 죽는다"는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치유의 숲' 만끽하게 해주는 프로그램들
경기도 양평의 '산음 치유의 숲'은 2009년에 개장한 국내 1호 치유의 숲이다. 이곳은 수도권에 위치해 이용자의 생애주기에 맞춘 치유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프로그램은 체험형(90분), 당일형(7시간), 1박2일형 등으로 구분해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곳을 방문한 취재진은 7시간 당일형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본격적인 치유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스트레스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율신경균형검사'를 받았고, 이를 통해 자율신경 활성도 및 균형도, 스트레스 저항도,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가도 좋은 숲이지만, 전문 지식을 갖춘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 숲 이곳저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숲해설가와는 격이 다르다. 2013년부터 시행된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숲을 해설하는 동시에 탐방객의 마음도 치유하는 '능력자'들이다.
이날 취재진이 만난 산림치유지도사 이호진 씨는 몇 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을 맨발로 체험해줄 것을 요청했다. 맨발로 산길을 걸으며, 진짜 산과 함께 있음을 느껴보란 취지였다. 처음엔 작은 자극에도 '아야' 소리가 나왔지만, 이내 편안해지니 다시 신발을 신는 것이 불필요하다 느껴질 정도다.
치유의 숲에선 본격 방문에 앞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숲에 동의 구하기'란 과정이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숲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숲을 이루는 동식물입니다. 우리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아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간략한 의식을 치른 후 취재진은 잣나무가 가득한 치유의 숲 안에서 매트를 깔고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흐르는 계곡 물을 바라보며 말 없이 명상을 하기도 했다.
생활 공간과는 다소 떨어진 숲에서 평소 느끼던 스트레스나 아픔을 떠나보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산림치유 지도사는 걷기를 멈추고 나뭇잎을 하나씩 주어 잎 위에 떠나보내고 싶은, 사라졌으면 하는 대상을 눈으로 적어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잎을 시냇물에 띄워 보낸다. 함께 프로그램을 체험한 학생 이진아 씨는 "별거 아닌 일 같아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양평 산음 치유의 숲엔 아로마 마사지 배우기, 산림욕 체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이 씨는 "그냥 숲에 오는 것도 좋지만, 치유의 숲을 찾아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것은 그 이상"이라며 "누가 시키지 않았다면 맨발로 숲을 걷거나, 조용히 계곡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일 등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평했다.
산음 치유의 숲은 이 같은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면 다시 체험자의 스트레스 상태를 측정해 준다. 취재진이나 체험에 함께 참여했던 이 씨 모두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고 스트레스 저항도가 다소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백 열풍'을 불러온 국내 최대 편백나무 숲
전남 장성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편백나무 숲인 '축령산 치유의 숲'이 있다. 연간 4만 명이 다녀가는 축령산 치유의 숲은 편백나무 묘목 품귀 현상이 불 정도로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에서 '편백 열풍'이 불고 있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숲은 1956년 춘원 임종국 씨가 사재를 털어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성됐다. 당시에는 난방을 위해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라 제 돈을 들여 묘목을 심는 임 씨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매년 꾸준히 숲을 가꿨고, 벌거숭이 산이던 축령산에는 어느새 240헥타르 면적에 120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있는 숲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된 이곳은 지난 2000년 산림청이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하고 2009년 국가 직영 숲이 됐다.
축령산 치유의 숲은 다양한 길들이 퍼져있다. 2.2킬로미터의 솔내음숲길, 1.9킬로미터의 산소숲길, 2.9킬로미터의 건강숲길 등이 있다.
취재진은 산림치유지도사인 박현수 팀장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양 옆으로는 죽 뻗은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가운데 난 숲길은 부드러운 곡선이라 매우 아름다웠다. 경치만으로도 걸을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숲이지만 모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박 팀장은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덕분이라고 했다. 피톤치드는 병균, 곰팡이에 저항하기 위해 분비하는 방향성 향균 물질이다. 편백나무는 소나무보다 4~5배 많은 피톤치드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편백나무 숲은 그야말로 모기 청정 지대라고 할 수 있다.
박 팀장은 피톤치드는 인체 면역력을 높여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숲에 있는 쉼터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고혈압, 성인병, 암 환자들을 위한 치료뿐 아니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서비스업 종사자, 극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는 소방관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축령산 치유의 숲에서는 이런 편백의 장점을 살려 각종 질병 치료 프로그램,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산림청 지원을 받아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는 점이었다. 박 팀장은 "숲이야말로 국민들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복지"라고 했다. 숲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박 팀장은 걷는 도중 종종 멈춰서 편백나무 숲의 기운을 느껴보라며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박 팀장은 연못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응시하도록 했다. '보기 명상'이다. 박 팀장은 "그림자는 실상도 아니고 허상도 아닌 현상"이라며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함이나 행복한 기분들은 본질이 아닌 현상이니 너무 그 감정에 빠져 있거나 집착해선 안 된다"며 '마음 내려놓기'를 권했다.
이어 '듣기 명상' 시간도 이어졌다. 눈을 감자 작게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가 들렸다. 박 팀장은 "고요함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는 "도시 사람들은 고요함을 경험하지 않아서 고요하면 불안함을 느낀다"며 "고요함 속에 있을 때 비로소 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며 잠깐이지만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했다.
숲을 걸으며, 박팀장과 함께 명상을 하며 모처럼 교감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진정한 휴식은 몸보다 정신이 쉬는 것"이라며 "많은 국민이 일상 생활에서 틈틈이 숲을 이용한다면 국민 모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박 팀장은 '의료민영화'를 우려했다. 그는 "병원이 숲을 매입하면, 돈 없는 사람이 숲에 접근할 기회가 사라진다"며 "국가가 숲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편 복지를 제공한다는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숲에 찜질방 같은 시설이 들어올 필요 없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이 숲을 이용하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숲의 건강함을 지키고, 그 숲에서 어떤 활동을 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국가와 저 같은 산림치유지도사의 과제"라고 했다.
"산림복지, 무료로 누리는 기쁨"
청태산 '치유의 숲'은 2011년 8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일부에 조성됐다. 이 곳 '포레스트힐링센터'에서는 현재 산림치유지도사 4명이 근무하고 있다.
포레스트힐링센터에서는 탐방객들의 신청을 접수해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유숲길 트래킹과 센터에 설치된 열치유실, 물치유실, 명상·요가실, 풍욕장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족팀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한 윤동규(74) 씨 일행은 "이렇게 훌륭한 산림복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며 즐거워 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탐방객들의 즐거운 모습들을 보면서 취재진은 "이런 숲의 복지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지는 사회가 됐으면..."하는 마음이 들었다.
"숲의 다양화, 숲의 산업화 추진할 때"산림복지의 정책 실현에 주력해온 산림청은 연 1조80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부처다. 산림복지는 신원섭 산림청장이 가장 강조하는 산림정책으로 신 청장은 특히 '도시숲'을 확대할 필요성을 역설해오고 있다.서울 여의도 산림비전센터에서 만난 신 청장은 "도시화율이 90%가 넘는데, 집에서 나와 5~10분내에 갈 수 있는 도시숲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도시숲의 1인당 면적이 서울은 고작 4㎡다. 파리(13㎡), 뉴욕(23㎡), 런던(27㎡) 등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신 청장은 "인간의 마음의 고향, 엄마 품 같은 편안함을 주는 효능이 숲에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신 청장은 "도시에서의 삶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고, 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치유하는 작업은 바로 바로 해줘야 하는데, 숲이 이런 스트레스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한다.쌈지숲, 산림공원 조성에 주력그는 국토가 비좁은 국내 현실 상 도시에 커다란 도시숲을 곳곳마다 갖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시인하다. 대안으로 자투리 땅이라도 숲으로 가꾸는 '쌈지숲'을 조성거나 도시 주변에 접근성이 좋은 '산림공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5700억 원을 투자해 쌈지숲, 학교숲, 마을숲 등 도시숲 1700헥타르를 조성할 계획이다.신 청장은 독일과 일본 등 산림복지 선진국과 비교하면서 우리도 산림복지를 산업화하는 데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50여 년간 숲을 잘 가꿔와 산림녹화율로는 OECD 기준을 넘었다"면서 "이제는 숲 자원을 산림복지에 활용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100조 원이 넘는다고 추산한 신 청장은 "숲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산림복지는 산업화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산림복지의 산업화는 여러모로 아직 미흡하다. 산림치유지도사 등을 배출해 일자리를 창줄하겠다고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하지만 산림복지와 연계된 사회적 기업등을 양성해서 1차원적 개념으로서의 숲을 일터나 '쉼터'의 장소를 뛰어넘어 '삶터'로서 숲과 생활이 일치되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신 청장은 산림복지는 장년층에게는 '예방의학'의 효능이 있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다. 신 청장은 산림복지는 하루 23억 원씩 적자를 내는 의료재정에 조금만 예산을 투입하면 '예방의학'으로 의료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이라고 주장했다.신 청장은 수목장 확대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국가가 운영하는 수목장림은 경기도 양평 '하늘숲 추모공원'이 유일하지만, 앞으로 권역별로 한 곳씩 조성할 계획으로 "충북 보령 등지에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산림복지가 국내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신 청장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신 청장은 "산림복지는 환경과 문화가 어울어져야 가능한 것"이라면서 "천편일률적인 나무심기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이 나무들의 교체시기가 도래한 것을 계기로 숲의 다양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숲의 다양화는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의 수령도 다양하고, 나무의 종류도 다양화해서 '살아있는 숲의 상태계'를 가꾸자는 사업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