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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에 맞짱 뜬 동네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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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파리바게뜨'에 맞짱 뜬 동네빵집

[생협평론] 협동으로 함께 굽는 빵, 동네빵집 되살릴까

신흥중 깜빠뉴 베이커리 사장(62). 열일곱 살, 전남 영암에서 무작정 상경한 그 해 처음 빵을 빚었다. 서울에 와 있던 친척이 마침 제과제빵 일을 하고 있었다. 이쪽 일을 하면 숙식도 제공된다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45년. 열심히 살았다. 제빵사가 됐고, 가족을 꾸렸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주택가로 접어드는 큰길가에 ‘빵의 나라’라는 가게도 차려 빵집 사장님이 됐다.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1990년대 중후반 들어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전국적으로 골목 진출을 개시한 것이 이즈음이었다. 그에 비례해 동네빵집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신 사장이 살던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이 지나고 보니 인근에서 장사하던 빵집 7곳이 문을 닫고 신 사장네 빵집 한 곳만 남았다. 그 사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 6곳이 새로 들어섰다. 문을 닫은 동네빵집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이름을 갈아탄 경우도 있었다. “가맹점으로 바꾸지 않으면 바로 옆에 매장을 내겠다고 (대기업들이) 위협하니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신 씨는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신 씨는 급기야 ‘빵굼터’라는 중소 브랜드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는 길을 선택했다. 대기업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나마 보호막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대기업보다 브랜드 이용료를 덜 내도 되고, 매장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과의 격차는 자꾸만 벌어져갔다. “브랜드 이용료로 월 30만 원을 내는 데 비해 혜택은 거의 없었다”고 신씨는 말했다.

최기권 마실ing 사장(52). 벌써 24년째 지금 있는 자리(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에서 빵집을 해오고 있다. 입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인근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큰길 건너편에는 종합병원이 있다. 돌이켜보면 빵집으로 "돈을 쓸어 모으던 때가 있었다" 상권 좋지, 빵 맛 좋지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담뿍 받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년 전 인근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고 최기권 사장은 회고했다.

"처음엔 식당이 새로 들어선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 불과 열 걸음 떨어진 옆옆 가게에 파리바게뜨가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나."

파리바게뜨가 옆에 생긴 이후 자꾸만 줄어가던 매출에 애가 타던 최 씨는 사실상 업종을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매장을 카페로 리모델링하면서 판매하던 빵의 종류와 갯수를 대폭 줄여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커피가 주종이고 빵은 구색 맞추기 용이 된 셈이다. 함께 빵 굽던 종업원 2명도 내보냈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카페는 그런대로 성공적인 듯했다. 커피에 관심이 많아 바리스타 교육까지 이수한 둘째 아들이 직접 원두를 공수하는 등 정성을 들이면서 커피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 퍼졌고, 동네 이웃들도 사랑방인 양 이곳을 모임 장소로 삼게 됐다. 그러나 문제의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매장을 확장해 카페 공간을 새로 내면서 또 다시 시련이 시작됐다. "우린 커피 한 잔에 3000원을 받고 있는데, 그쪽에서 커피를 1500원에 판다는 얘길 듣고 맥이 풀렸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자기네가 좋은 원료를 쓴다고 아무리 강조해 봐야 대기업의 헐값 공세와 마케팅 공세 앞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치이고 자본은 딸리고…반도의 흔한 빵집 사연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까지는 '반도의 흔한 빵집 사연'이다. 빵 굽는 기술이 있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처자식 먹여 살리고 내 집 장만도 거뜬히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들은 회고한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마냥 동네빵집의 전성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대기업들이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물론 대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제과제빵 업계가 생산·유통·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일대 혁신을 이룬 것은 부인하지 못할 성과다. 그러나 이들 대기업은 자기네 프랜차이즈에 들어오게끔 기존 동네빵집을 압박하고, 이를 거부하는 동네빵집이 있을 경우 바로 옆에 신규 매장을 오픈하거나 건물주에게 기존 동네빵집 임대료를 터무니없게 인상해 임대 계약을 해지하도록 유도하는 등 각종 불공정한 형태를 일삼아 골목상인들의 원성을 샀다. 이 같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사회문제가 되자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는 기존 동네빵집으로부터 500m 이내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을 낼 수 없게끔 출점 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 동네빵집 사장들의 중론이다. 2000년 1만8000여 개에 달했던 동네빵집은 십여 년 만에 4천여 개로 급감했다. 신흥중·최기권 사장이 속한 대한제과협회 서울 서부지회(서대문구·은평구)의 경우 한창때는 회원 수가 300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50명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지금껏 살아남은 동네빵집 주인들은 정말 독한 사람들, 실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실력이 딸리거나 허랑방탕한 사람들은 벌써 다 떨어져 나갔다"라고 신흥중 사장은 말했다.

마침내 현실이 된 빵집 주인들의 숙원

'반도의 흔한 사연'을 넘어 이들이 '특별한 사연'의 주인공이 된 것은 동네빵네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면서다. 발단은 2013년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시작한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 공모 사업이었다. 소상공인 5명 이상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면 2억 원 한도 내에서 공동설비·장비 구매, 공동 브랜드 개발 등을 지원한다는 공고를 보고 서대문구·은평구 빵집 사장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공모 참여 자격이 협동조합으로 한정돼 있어 협동조합 설립에 눈을 돌린 측면이 크다"고 신흥중 사장은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눈먼 돈'을 거저먹겠다고 달려든 것만은 아니었다. 배이성 노블베이커리 사장(51·은평구 수색동)에 따르면, 공동시설은 이들의 숙원이었다. 협회 활동 등을 통해 오랜 기간 친목을 다져온 빵집 주인들은 ‘우리도 제대로 된 공장만 있으면 대기업과 맞붙어볼 만할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지금처럼 가내수공업식으로 각자 자기네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는 구조로는 다양한 빵 또는 숙성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빵은 생산하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기술을 교육받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한계가 뚜렷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때마침 '귀인'도 나타났다. 연세대 학생들로 이뤄진 '인액터스'가 그들이었다. 인액터스는 탈북자가 중심이 된 도심 녹화 사업이나 자원 재활용 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을 주로 해온 대학 동아리다. 2013년 들어 이들이 새롭게 눈을 돌린 것이 골목상권 문제였다. “골목상권 문제를 공부하다 동네빵집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인액터스 조성열씨(연세대 영어영문학과)는 말했다. 이에 따라 동아리 내에 ‘동빵팀(동네빵네 프로젝트 팀)’을 구성한 학생 10여 명은 먼저 학교에서 가까운 서대문구·은평구의 동네빵집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는 상권 분석에서 마케팅 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을 돕고 싶다고 빵집 주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협동조합 설립 논의가 불거진 것이다.

각자 매장을 운영하며 생업에 바빴던 빵집 사장들이 협동조합을 순조롭게 설립하기까지는 이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 학생들은 협동조합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공부하며 정관 작성에서 설립 신고까지 빵집 사장들을 서포트하는 한편, ‘동네빵네’라는 협동조합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고 홍보·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맛있게 부푼 빵을 형상화시킨 감각적인 로고 또한 이들이 소개한 디자이너들의 재능 기부로 탄생한 것이다.

▲ 연세대 학생들로 이뤄진 인액터스팀이 동네빵네 홍보를 돕고 있다. 사진은 동네빵네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 중인 '빵툰(빵+웹툰)' ⓒ생협평론


공장 함께 운영하며 히트상품 레시피도 공유

2013년 6월, 설립 신고를 마친 동네빵네협동조합이 맨 먼저 역점을 둔 것은 숙원사업이었던 공동 공장의 설립이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공동 시설비 2억 원을 지원받게 되면서 동네빵네협동조합에 참여하기로 한 빵집 사장 11명은 각자 천만 원씩을 출자금으로 냈다. 정부 지원금의 20~30%에 해당하는 금액은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를 종잣돈 삼아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나선 조합은 2014년 1월 은평구 신사동에 마침내 공동 공장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인 8월 말, 이곳 공장을 직접 한번 찾아가 보았다. 지하철 6호선 새절역에서 걸어 3분 거리. 조합원들이 속한 빵집들로부터 가까워 언제든 신선한 빵과 반죽을 배달받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였다. 협동조합 2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흥중 사장의 안내를 받아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제빵사들이 거대한 밀가루 반죽을 놓고 씨름 중인 선반대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본즉 대형 반죽기며 숙성기, 오븐도 차례로 눈에 띄었다. 과거 개인들이 빵집을 운영할 때는 사들일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개당 2000만~3000만 원짜리 고가의 장비들이란다.

신 이사장이 특히 공을 들여 설명한 것은 천연효모 발효기. "시중에서 파는 빵 중에는 제빵 개량제를 써서 반죽을 강제로 발효시키는 빵이 많다. 그래야 발효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개인 빵집들도 사정이 비슷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강제 발효시킨 빵을 먹은 사람들은 "밀가루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라고 하소연하곤 한다. 그러나 소화를 저해한 범인은 밀가루가 아니다. 이들 빵의 식감을 오랫동안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 다량으로 집어넣은 유화제·방부제 등 식품첨가물이 진짜 범인인 셈이다. 동네빵네의 경우 공동 공장이 생기면서 천연효모 발효기를 이용해 2~3회에 걸쳐 반죽을 천천히 발효·숙성시키는 일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더 건강한 빵을 손님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신 이사장은 말했다.

▲ 정부 지원금과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마련한 공장 내부 모습. ⓒ생협평론

더욱이 이들 공장에서 만든 빵은 대부분 얼리지 않은 생지(生地) 상태로 각 조합원의 매장에 배달된다. 조합원인 빵집 사장들은 이 생지를 다시 발효시키거나 가공해 각자 개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신선한 빵을 구워낸다. 그런 만큼 본사로부터 냉동 생지를 공급받아 이를 오븐에 구워내기만 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과는 빵맛의 차원이 다르다고 동네빵네협동조합은 자부한다.

빵 종류도 훨씬 다양해졌다. 빵집 사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새 빵을 개발할 때마다 조합원들이 모여 품평회를 하고, 이를 제품화할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신 이사장은 말했다. 각자 매장에서 잘나가던 대표 주자들을 개량해 공동 브랜드화하고 레시피를 공유하는 일에도 나섰다.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달라진 빵 맛을 먼저 알아본 것은 소비자들이다. 일주일간 세 번 발효시킨 빵에 붉은 쌀과 사과·건포도 등이 박혀 새콤달콤한 '일주일을 꿈꾼 빵', 노아의 방주처럼 둥글게 생긴 빵 가운데 고소한 크림치즈를 얹은 '노아갈릭', 빵 속에 든 무화과가 톡톡 씹히는 '무화과 꽃이 피었습니다' 등 천연 발효 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빵에 소비자들은 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4월,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일주일간 벌인 특별 입점 행사에서 동네빵네협동조합은 빵 5000만원어치를 뚝딱 팔아치우기도 했다. 백화점 담당자도 놀랐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기록이었다. 이어 국회에서 열린 ‘협동조합 우수상품 바자회’에서도 동네빵네의 빵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런 입소문을 바탕으로 동네빵네협동조합은 ‘SK 초콜릿’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서 ‘동네빵네 건강빵 세트’도 판매하기 시작했다(인터넷 판매는 여름철에 일시 중단했다가 9월 중순 재개했다).

조합원들의 가게 매출도 늘었다. 전통적인 빵집 비수기인 여름 이전까지만 해도 매장당 매출이 20% 이상 신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동네빵네협동조합은 추산했다. 카페 위주로 운영되던 마실ing의 경우 협동조합 전환 이후 빵 판매를 크게 확대한 결과 매출이 40% 가까이 뛰었다. 덕분에 최기권 사장은 아들 지윤씨(25)와 새벽부터 하루 종일 빵을 구워낸다.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공을 바꿨다는 지윤씨는 "빵 만들고 굽는 게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함께 제과제빵을 공부 중인 동기들의 경우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데, 이런 데서는 냉동생지를 해동시켜 오븐에 구워내는 작업이 대부분인지라 빵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협동조합 전환 이후 이전보다 구색이 훨씬 다양해진 빵을 다루면서 아버지한테 고급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게 된 그는 분명 행운아인 셈이다.

▲ 신흥중 동네빵네협동조합 이사장이 숙성고 안에 든 빵을 보여주고 있다. ⓒ생협평론

협동조합, 결코 쉽지만은 않더라

동네빵네협동조합에는 아직 불안 요소도 많다. 심지어 동네빵네에 속한 한 조합원은 “누가 협동조합을 한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을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점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드는, 어쩌면 선후가 뒤바뀐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불거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공장에서 발생했다. 배이성 노블베이커리 사장은 "처음에 공장을 너무 크게 시작했던 것 같다.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갔어야 하는데 서로가 경험이 없다 보니 욕심이 앞섰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지원 정책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신규 설비 중심으로 지원을 하다 보니 골목상인들이 제대로 협동조합을 공부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간 없이 설비 투자에 매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비용도 발생했다. 일단 공장 내 위생·냉각·자동주문 시설 등을 갖춰가는 데 끊임없이 추가 비용이 들었다. 초기 운영비를 따로 떼어놓지 않은 것도 실책이었다. "처음에는 특히나 수요공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다 보니 재고가 쌓이면서 적자가 늘었다. 외부 이벤트에서 빵을 엄청나게 팔아놓고도 뒤로는 남는 게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멍가게 수준으로 사업하던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매 순간 도전이었다"고 신흥중 이사장은 말했다.

하다못해 세금 비용도 발생했다. 신 이사장은 "올해 처음 법인세를 납부하면서 깜짝 놀랐다. 정부가 말로는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면서 일반 기업과 똑같이 법인세를 물리더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구멍 난 재정은 조합원들의 갹출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천만 원으로 시작됐던 조합원 1인당 출자금은 일 년여만에 2000만~3000만 원 수준으로 늘었다. 한 조합원은 "매장에서 돈을 좀 만지게 되면 뭐하나. 공장 빚 메우느라 꼴아박아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러니 조합원 간에 불화가 빚어지기도 했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언성을 높이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조합원의 이기적인 행동 또한 협동조합을 위태롭게 했다. 공장의 경우 이들 조합원 매장이 필요로 하는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게 돼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 이어 전통적인 빵집 비수기인 여름을 맞으면서 매출이 하락하자 애초에 약속했던 물량을 구입하지 않은 채 자기 매장에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고 빵을 빚는 조합원들이 생겨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장 매출이 하락하고, 이것이 다시 조합원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배이성 사장은 “조합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이걸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형태를 선택한 이상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고 신흥중 이사장은 말했다.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 결국 조합원 모두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협동조합의 작동 원리를 믿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공장)이 잘돼야 내 집(개인 매장)도 잘된다. 우리 집이 잘못되면 내 집도 미래가 없다"는 신 이사장은 요즘 조합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집'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을 궁리 중이다. 조합원 이외 가게들에도 빵 반죽을 제공하면서 공장 거래처를 늘리고, 학교들을 상대로 빵 만들기 체험학습을 유치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마실ing의 안주인 안미진씨(47)는 협동조합을 하면서 생각지 못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한 치 앞이 안 보여 낙담하는 일은 사라졌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지금은 그나마 이렇게 하면 동네빵집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가 전공을 바꿔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큰아들을 환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라진 가게를 보고 제 일처럼 좋아하는 단골손님들을 보며 새삼 자부심도 생기더라고 안 씨는 말했다.

"언젠가부터 파리바게뜨가 빵집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우리조차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하면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오랜 기간, 더 가까운 곳에서 이웃들의 건강과 추억을 챙겨온 것은 우리들 아닌가.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면 동네 빵집이 다시 빵집의 대명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동네빵네협동조합에는 서대문구와 은평구 빵집 11곳이 참여 중이다. ⓒ생협평론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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