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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김영환은 역사에 증언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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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김영환은 역사에 증언을 해야 한다

국가 기본의 재구축을 위하여 <24>

주사파의 대부, 강철 김영환의 진솔한 성찰의 소리를 듣고 싶다.
 
1986년 “강철 서신”이라는 문건이 배포되면서 이른바 ‘주사파’(NL파)가 급속하게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90년대 초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강철의 친구이자 동료도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에 근무하고 있었다. 하루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그 ‘동료’는 북이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웃하며 끝까지 그 뉴스를 믿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남북한 범민족대회 개최 당시 시종일관 어떻게 하면 북측에게 더 유리할 것인가의 방법만 주장하려고 무진 애를 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돌연 북한을 맹비난하고 또 탈북자 지원 운동을 한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들었다. 

민주화운동, 주사파로 흥하고 주사파로 쇠하다

당시 필자는 참된 ‘주체적 운동’이라면 남한의 현실에 발을 딛는 주체적인 현실과 이론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확신하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주사파와 같은 ‘방송을 듣거나 혹은 외부(?)의 지시로 형성된’ 그러한 이론과 운동은 진정한 ‘주체적’ 이론이나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무자비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 정권의 서슬 퍼런 폭압 속에서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식으로 북한이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경향까지 초래한 측면이 있었다. 또 분단국가의 특성상 반외세 및 통일운동이 지니는 감성적인 민족주의적 호소력 등 존립의 공간도 작지 않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주사파에 의하여 주도되는 운동’은 결국 보수 세력의 ‘반공 논리’에 철저하게 이용되고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남한 대중들의 의식에 수용되기 어려워 ‘북한 프레임’에 묶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인류 역사상 현실 권력에 대한 의존 혹은 종속은 예외 없이 좋지 못한 결말을 노정했다는 점에 비춰 민주화운동에 두고두고 커다란 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터이다. 그러나 필자는 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에 홀연히 출현하여 광풍을 휘몰아친 ‘주사파’가 민주화운동을 단기적으로는 크게 흥하게 만들었지만, 장기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쇠락하게 만든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사파 문제’는 현재진행형

필자는 강철 김영환을 몇 번 본 적이 있으나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주체사상이 휩쓴 그 엄청난 파장에 비하여 그의 증언과 고백의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그가 입을 열어 ‘변절’ 혹은 ‘사상전향’(만약 이 용어가 싫다고 한다면 ‘자신의 변화 발전’도 좋다. 여기에서 용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과 관련하여 자신의 과거와 오늘의 현실에 대한 소회를 증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과거의 문제를 이제 와서 꺼내느냐라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사파의 문제는 과거에 이미 종결된 개인사 범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영향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친일파 논쟁이나 역사교과서 등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 문제와 통합진보당 이석기로 상징되는 현재의 ‘종북’ 논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주사파의 문제는 사실상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 미래의 좌표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본 기고의 주제이기도 한 ‘국가의 기본’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빠뜨릴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거울에 자기 성찰과 고백을 기록해야

그간 우리의 역사는 멀리 친일파 문제를 비롯하여 최근의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사건이나 어느 인물의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두루뭉술하게, ‘맺고 끊음’의 과정이 결여된 채 정확한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이 누적되고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시시비비가 정확히 가려지지 않고 항상 능구렁이 담 넘듯 적당히 넘어갔으며, 결국 반성과 성찰이 없는 사회를 낳고 결국 원칙과 기준이 결여된 사회를 만들어냈다. 이는 장기적으로 역사적 과오가 있는 기득권 세력의 대물림과 이로 인한 정통성 시비를 초래하였고, 사회적 반목과 대립의 혼란상을 가중시켜왔다. 
 
기실 오늘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은 이러한 관행의 누적으로서의 ‘적폐’이다. ‘주사파’의 문제 역시 그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 현재 탈북자지원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냥 묻을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며, 반드시 본인이 자기변명이 아니라 역사에 책임을 지는 증언과 성찰을 함으로써 그 ‘역사적 매듭’을 지어줘야 한다. 이는 역사라는 거울에 정확한 기록과 평가를 해냄으로써 그 의미와 교훈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내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이는 역사에 본인이 기여할 기회이자 책무라고 생각한다. 
 
김문수의 증언도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그 유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그 말의 유효성은 증명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의 책임자였던 김문수의 솔직한 소회도 들어보고 싶다. 
 
서노련은 구 소련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당시로서 가장 극렬한 노동자계급 이기주의의 용어와 구호를 주창하였다. 심지어 서노련은 “광주항쟁은 노동자계급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학생과 소부르조아지가 주도했으며, 이에 따라 타협적 자세로 실패하였다. 따라서 광주항쟁은 노동자대중에게 아무런 과제를 제시할 수 없다”는 등 한국의 구체적 현실에 토대를 두지 못한 ‘기계적이고 관념적인’ 사고와 관점을 가지고 다른 (운동권) 사람들을 막무가내 호통 치며 기세등등했다. 김문수 역시 당시 ‘성실한 운동권’ 인물로 정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신의 ‘전변(轉變)’과 관련하여 진솔한 증언과 성찰의 매듭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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