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상회의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
지난 21일, 미국 뉴욕 거리에 40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다. 이들은 다음날부터 이틀간 진행될 유엔 기후정상회의(UN Climate Summit 2014)에 맞춰 각국 정상들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 전 지역과 해외에서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뉴욕뿐 아니었다. 런던, 파리,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집회가 진행되었다. 이날의 집회는 기후 변화를 둘러싼 시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되었다.
이번 뉴욕에서 진행된 유엔 기후정상회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포함되는 공식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연장된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20년 이후의 새로운 기후 변화 대응 체계에 대한 협상 타결 시한이 겨우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각국의 정상들의 정책적 의지를 고무하기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주재한 회의다. 약 100여 명의 국가 정상과 800여 명의 기업 대표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하였다.
그렇다면, 인류와 지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논하는 이번 회의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무엇일까? 아시안 게임에 묻혀 일반 시민에게는 이슈조차 되지 않은 이번 회의는 '대통령의 훌륭한 유엔 데뷔였다'로 정리되어 주요 언론에 실렸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대통령의 기조연설의 내용은 무엇이었고 기후정상회의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다룬 언론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기술과 시장을 언급했다. 여기에 탄소 포집과 저장(CCS) 기술과 배출권 거래제 시행에 대한 언급 그리고 국민이 아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앞으로 한국 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전략에서 기술과 시장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방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시장 중심의 기후 변화 대응책은 이미 전 세계 민중의 지탄을 받아왔던 부분이고, 각국 정부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기후 변화 대응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회의장 밖 민중의 목소리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내용이다.
'기후 변화'라고 쓰고 '시장'이라고 읽기
이번 회의의 결과는 <의장 보고서(Summary of the Chair)>로 최종 정리되었다. <의장 보고서>의 서두는 세계 각국의 리더들은 기후 변화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억제해야한다는 인식을 확인했다고 쓰여 있다. 더불어 이를 위해 별로 남지 않은 기회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세계 정상들이 내놓은 해결 방안은 기업과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와 이들을 위한 시장의 확대였다.
이번 <의장 보고서>는 탄소 가격 책정(Pricing carbon)과 기후 지능형 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을 핵심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대안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대규모 자본을 기후 변화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 일 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기후 정의 진영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유엔 기후변화협약 프로세스도 아닌 이번 정상 회의를 반기문 사무총장이 급박하게 추진한 것은 이번 회의의 결과로 나오는 <의장 보고서>를 리마로 가져가기 위한 교묘한 술수가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 의심대로라면, 이번 정상 회의는 기존 기후 변화 시장에 '탄소 시장'과 '농업 기업'을 끌어들여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방침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관철시키려고 마련한 자리다.
<의장 보고서>에서는 탄소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투자자들을 탄소 시장에 끌어들이는 정책적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더 적극적으로 탄소라는 오염물질에 가격을 매기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기존 탄소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정책의 대표적인 것이 배출권 거래제다. 한국에서도 2015년부터 시행될 이 제도는 정부가 탄소 배출의 기준선을 정하고 그 안에서 더 배출한 기업과 덜 배출한 기업끼리 탄소 배출권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이 배출권 구입에 들어간 비용을 소비자에게 가격으로 전가하거나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나 일자리 상실이라는 결과로 민중에게 짐을 지운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기후 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온실 기체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지속적으로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감축의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그 효과성이 의심받고 있다.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오염물질에 가격을 매기는 것 외에 또 하나 이슈는 기후 지능형 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이다. 이에 대해 유엔 식량농업기구(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FAO)는 "생산성, 복원력(적응력)을 지속 가능하게 증대시키고 온실 기체를 저감/제거하며, 국가적 식량 안보와 개발 목표의 달성을 증진하는 농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후 지능형 농업은 세계은행과 아프리카 개발은행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미 많은 실험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포괄하는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고, 탄소 상쇄 제도와 묶이면서 유전자 조작 작물의 대규모 단일 경작이나 대기업 중심의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이로 인한 토지 수탈과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 등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이런 시도는 소작농들의 쇠퇴를 가져 옴으로써 식량 주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것이 농업을 기후 변화 대응 시장에 포함시키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미 이런 문제들이 많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제기 되고 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가족농의 해다. 한쪽에서는 소규모 가족농의 중요성을 외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라며 가족농을 해체하고 대규모 농산업이 땅을 파헤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 변화를 볼모로 자본주의를 강요하기
<의장 보고서>에는 73개 중앙 정부, 11개 지역 정부 그리고 1000개 이상의 기업 그리고 투자자들은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것을 지지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 리더들은 전 세계 GDP의 52%를 대변하며, 54%의 온길 기체 배출을 하는 이들이고,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온실 기체를 많이 배출한 선진국과 대기업이 세계를 대변하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유엔의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통해 밝힌 기후 변화 대응 프레임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회의장 밖의 민중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으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미친 소리다." 전 볼리비아 유엔 대사였던 파블로 솔론의 말이다. 뉴욕 거리의 40만 민중은 시장의 확대가 아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기후 변화 대응을 원하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뉴욕 집회에 참여하여 "이 인민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모이는 정상들의 논의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의장 보고서>를 통해 훗날 오늘을 돌이켜 볼 때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우리의 집(지구)을 번성하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선택을 한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여전히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의 의지를 보이는 국가는 없으며 회의장 밖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제 약 두 달 후면 페루 리마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내년에는 2020년 새로운 기후 변화 대응 체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하는 마지노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마지노선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민간 기업과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지구를 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가 이어진다면, 전 세계 민중들은 더 이상 유엔의 선택을 지지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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