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중국의 영혼의 산, 민족문화의 영산은 없었다. <정거장>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와도 같았다."
세계 문단을 들썩이게 할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왔다. 현재 아시아 작가로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중국의 저항시인 베이다오(北島)와 우리나라 고은 시인이 후보에 올랐다. 중국은 2012년 모옌(莫言)에 앞서 디아스포라 작가 가오싱젠(高行健, 2000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가오싱젠은 1940년 쟝시(江西)성에서 태어났다. 1957년 베이징 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입학하여 졸업 후 잡지사에서 불어번역가로 일하였다. 노벨상을 있게 한 <영혼의 산>(靈山)은 1983년 실험극 <정거장>(車站)이 공연 금지 처분을 받자 베이징을 떠나 양쯔강을 따라 긴 여행을 하면서 구상·집필하다가 7년 후 1989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 파리에서 완성하였다. 그 후 천안문 사건에 대해 비판한 1991년 희곡 <도망>(逃亡)이 공연 금지되면서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 금서조치가 내려졌다.
<영혼의 산>의 '나'는 티베트 고원과 쓰촨 분지 지역 등을 여행하면서 '중국의 오래된 뿌리'가 있는 '영혼의 산'을 찾는 여정이다. 한 노인은 영산이 우이(烏伊) 진(鎭) 강가에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미 그 강가를 지나왔고 어디서도 그 영산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영산'은 공간일수도 시간일수도 역사일수도 미래일수도 있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산'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영혼의 산으로 중국 문화의 원류이자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영산 자체가 아니라 '나'와 '민족'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가 윤리의 온상인 황하 유역의 중원 문화와는 다른 정치와 현대 문명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화 된 ‘변방’의 민족문화이다.
현대 중국은 '유교의 부활'을 내세우면서 '문화중국'을 꿈꾸고 있다. 개혁개방이후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전통문화의 복원, 신유가의 중시 등 민족주의 측면에서 유교의 부활을 강조해왔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개최 이후 내부적으로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통합과 결속력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이익과 서구의 견제라는 측면에서 문화소프트파워의 구축에 힘쓰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문화중국'으로의 길이 망명 작가 가오싱젠의 시선에는 어떻게 보여졌는지, 경계의 밖에서 중국의 내부를 들여다본 그만의 '민족문화'는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함께 연관 지어 생각해볼만 하다. <영혼의 산> 속의 중국문화는 어떠한 문화이며, 현대 중국의 '문화중국'의 바람과 어떤 길항관계에 놓여있는가? 아래는 CNKI(中國知網, 중국 내 학술지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문화소프트파워(文化軟實力)을 키워드·제목·주제로 검색한 결과이다.
물론 유학은 중국 문화의 중심이었고 또 현재 중국 문화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아 중국 사회의 통합을 모색하려는 점은 관념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 유학의 정신문명이 '현재' 중국의 대내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적실한 대안인지, 나아가 유가의 사유방식이 현대 중국 정치와 인민의 일상, 사회제도 등으로 귀착할 수 있는지의 적실성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는 한 민족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으로 인해 존속되는 것은 아니며, 정체성은 시대적 요구와 문화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변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근대는 유학, 공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비판과 계승이라는 연속과 단절의 반복을 거듭해왔다. 현재 유학의 부흥은 미디어를 활용하여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대중의 자발적 흐름이 아니라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안에 놓인 장치라는 것이다. 정치가 문화를 좌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가 정치와 자발적으로 연관될 때 ‘문화중국’의 길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이와는 달리 <영혼의 산>에서는 이러한 주류 문화에 의해 단절된 중국 문화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현대 중국의 한족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장강유역-소수민족의 전설과 신화, 민요와 무속 등 주변부의 민족문화를 상기시킨다. 그는 '주의 없음'(無主義, No Ism)'을 주장하면서 중국에서 팽배하는 유가전통, 애국주의와 중국 정부가 전유하는 이데올로기적 관행을 거부하고, '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정체성을 외면한다.
그런 면에서 가오싱젠의 문화정체성은 어디 하나에 묶여있는 존재의 양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의 양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유학의 부활을 통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정치적 헤게모니로 전환하려는 점에 거부하는 것이다. 이 점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지만 정주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고정된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않고,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경계에 선 작가이자 지식인임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가오싱젠은 디아스포라의 신분으로 경계(변방)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자기(민족문화)의 성찰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민족문화를 제시하였다. '나'와 '민족'의 시원으로서 '영혼의 산'을 한족 중심의 주류문화를 상징하는 황하유역에서가 아니라 근대성(modernity)에 의해 배제되고 희생된 변방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중국이 유가의 부활을 통해 '문화중국'으로 나아가려는 것과 길항의 관계를 형성하는 점이다.
그는 분명 중국인이었지만 '중화성'과 같은 주류 민족문화에서 벗어나고자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중국적이면서도 탈 중국적이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바라본 중국의 영혼의 산, 민족문화의 영산은 존재유무의 대상이라기보다 희구의 대상이었으며, 유가문명으로 이루어진 산은 분명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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