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충격 요법'이다. 북한의 실세들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 등 북한 측 대표단의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북한 사이엔 거친 말싸움이 오가고 있었다. 북한은 '북남 대화를 꿈도 꾸지 말라'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더해 인권 문제까지 강하게 제기하면서 '북한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다.
이랬던 남북한이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대‧최고 수준의 접촉을 가졌다. 비록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차에 이뤄졌고 공식적인 의제도 거의 없었으며 눈에 띄는 이렇다 할 발표도 없었지만, 그 의미는 자못 크다. 북한의 '통 큰 행보'와 남한의 환대가 맞물리면서 짙은 먹구름만 드리워졌던 한반도 정세에도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파격적인 선택을 했고 이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북남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올해 내에 열려는 의도이다. 김정은 체제의 대남 접근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냉·온탕을 오고 갔고 그만큼 남북관계도 답보 내지 후퇴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 체제로서는 올해 핵심 기조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이번 방한을 '상황 타개책'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전략적 목표는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 아닌가 싶다. 황병서가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말한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또 하나는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필요한 평화적인 대외 환경 조성을 최대 당면 과제로 삼고 있다"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 연설 내용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제재 강화라는 불리한 환경과 자체적인 경제관리 개선 조치가 일부 성과를 내면서 생긴 자신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대규모의 특구 지정과 관광 산업의 활성화, 그리고 제조업과 농업에서 시장주의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외부 투자와 관광객 유치, 그리고 물자 확보가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다. 이번 북한 대표단의 깜짝 방문도 북한의 전방위적인 대외 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이번 계기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제2차 고위급 접촉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갖기로 합의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문제 해결,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 등 핵심 현안들에 대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삐라 살포를 둘러싼 갈등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남북한 인권대화도 타진할 수 있게 된다.
박근혜 정부도 보다 자신감과 적극성을 갖고 남북관계 및 한반도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5.24 조치 해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에 나서지 않고서는 남북관계가 가다 서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또한 여당과 보수 진영 일각에서조차도 이들 사안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를 당부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도 금강산 관광 재개는 유엔의 대북 제재와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가 더 이상 주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한 6자회담 재개에도 본격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미 북한, 중국, 러시아는 '조건 없는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 일본도 한층 유연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인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6자회담에 적극성을 띈다면 미국으로서도 마냥 거부하기는 힘들어진다.
이제 북핵과 남북관계를 기계적으로 연계해 악순환만 거듭해온 방식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해결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핵문제 해결 진전이 남북관계 발전에 모멘텀을 주는 선순환을 도모할 때이다. 이게 7년 전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10.4 선언의 핵심 정신이었다. 그리고 이건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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