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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패했지만 야당은 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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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패했지만 야당은 패하지 않는다

국가 기본의 재구축을 위하여 <22>

‘엔트으리 정치’,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대표 

지난 월드컵축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의리 축구’만을 내세운 선수 선발과 전략 부재의 졸전만 벌인 끝에 국민에게 커다란 좌절과 실망을 안긴 채 지탄을 받았다. 그래도 축구 대표팀은 이렇게 성적이 나쁘고 지탄을 받게 되면 반드시 선수도 다시 선발하고 감독도 다른 인물로 바꾼다. 
 
그런데 우리의 야당은 수없이 패하고 그토록 국민의 지탄을 받았건만 그 밥에 그 나물 요지부동이다. 일이관지(一以貫之), 자기들의 관행대로 ‘의리’로 뭉쳐 공천하고 또 비례대표를 선발한다.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자기들이 선출한 자기들만의 대표일 뿐이다. 국민에게는 오직 찬반 투표밖에 남은 게 없다. 
 
한편 대한민국의 양궁 대표팀은 30년 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다. 물론 비리사건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극복해내면서 커다란 잡음이 없었다. 대표 선수도 실력으로만 선발하고, 신인 발굴에도 열성이다. 로비를 할 공간이 거의 없고, 지방에서도 개최하여 형평성을 고려한다. 지난 올림픽을 비롯해 금메달을 휩쓸었던 양궁 스타 기보배 선수도 아시안게임 국내 대표선발에서 탈락했지만, TV 해설자로 나서 애정 어린 해설을 차분하게 진행하였다. ‘서부활극’ 같은 것도 없었다.  

국민은 패했지만 야당은 패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은 지점이 있다. 바로 야당이 현재 국회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지자체 단체장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당이 단체장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정책과 행보에 있어서 오십보백보이다. 우리나라에서 그 어떠한 공공기관이건 기관장이 취임한지 3~6개월이면 해당 기관 직원의 논리와 메커니즘에 철저히 포획된다. 자나 깨나 오직 인기에 영합하는 전시성 행사에 부자몸조심,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관료화한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야당 주변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많이 펴졌다. 예전처럼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곳간에 쌀은 남아있다. 괜히 모험을 걸어 그나마 지금 향유하고 있는 것을 날릴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야당 국회의원은 특권화하고 지자체 쪽 야당은 관료화하면서 전체적으로 기득권화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른 ‘헝그리 정신’과 투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야당이 지금 아무리 엉망으로 된들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최소 백 명은 당선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민들이 아무리 야당을 미워한들 투표장에 가면 결국 우리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니 아쉬운 것이 없고 아무리 만신창이,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의 당이지만 누가 뭐라 하든 귀를 막고 현 상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계산이다. 국민은 패했지만 야당은 패하지 않는다.   

호남, 다시 이 시대의 조타수가 되어야

언젠가 친노 폐족론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지금 냉정하게 살펴보면, 친노는 불사조였다. 곡절이야 많고도 많았지만 결국은 끈질기게 살아났다. 지금 폐족론이 문자 그대로 딱 들어맞는 세력은 호남이다. 호남은 여당에게도 호남 대 비호남의 노골적인 전략적 구도에 의하여 철저하게 차별받고 있지만, 야당에서도 그저 불쏘시개일 뿐이다. 그 많은 차기 대권주자 중 호남 출신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폐족이다. 바야흐로 완벽한 영남 패권주의의 시대이다. 
 
최근 언제나 어김없이 우리의 기대를 정확하게 저버린 야당의 진로를 둘러싼 논의들이 속출하고 있다. 현 야당의 뿌리가 호남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야당에서 사실상의 주인은 호남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지금, 주인인 호남이 나서서 대오를 다시 조직하고 장군을 제대로 뽑아서 이 나라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호남이 움직여야 야당이 변할 수 있다. 호남의 민주 진영이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조타수가 되어야 한다. 가령 ‘호남당’ 추진 논의만으로도 그 자체로 야당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줌으로써 기존 정치질서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호남에 대한 구조적 차별 극복방안으로서의 연방제 제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계인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던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은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스코틀랜드의 위상은 높아지게 되었고 조세징수권과 예산편성권 확보 등 자치권이 대폭 확대되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야당 내 호남 세력의 결집을 꾀하여 기득권 세력이 아닌, 예를 들어, 천정배나 박주선 등이 고문 역할을 하면서 호남 역량을 집결해내고 동시에 당내 비주류와 협력하는 방안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   
 
비만 비둘기를 살리려면

돌이켜보면, 그간 민주진영은 수십 년에 걸쳐 보수 세력과 대결하기 위하여 민주 정부 실현, 대동단결, 단일화 및 연합을 주창하고 실천해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마치 “새로운 권력자가 된 돼지들이 타도 대상이었던 인간들과 두 발로 서서 파티를 열고 거래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도 같이, 야당에 대한 비판은 철저히 ‘왕따’ 되고 심지어 보복 당하면서 오직 입신양명과 줄대기 그리고 정치공학만 난무하였다. 이는 민주화라는 공공재(公共財)에 대한 노골적인 사유화 과정이었다. 결국 민주 진영 내에서 야당과 경쟁하고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의 공간은 철저하게 부정되었고, 초심을 잃고 무능하며 몸집만 비대한 오늘의 관료적 야당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필자가 오가는 길가에 샌드위치를 구워 파는 한 노점이 있는데, 그 주변에 비둘기들이 산다. 이들 비둘기들은 인간들이 버린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고 ‘풍족하게’ 살아서인지 매우 뚱뚱하다. 나는 것은 고사하고 걸어 다니는 것조차도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도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있다. 이들 비둘기는 먹이가 부족해서인지 무척이나 말랐다. 그러나 마른 이 모습이야말로 본래의 날씬한 비둘기 모양이다. 비록 야멸차게 보이겠지만 국민들이 당분간 이들 비만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지 않는 것이 진정 비둘기를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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