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 절반을 넘는 사회, 그건 ‘정상’이 아니다
출근길에 여의도 LG 빌딩 앞 한켠에서 노숙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LG 하청노동자들이었다. 필자는 노동운동을 관찰하기 위하여 90년대 초반 울산에 내려가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로 1년 가까이 일한 적이 있었다. 주야 2교대 근무로 밤낮이 뒤바뀌고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한 달 월급은 고작 42~43만 원 정도였다. 당시 정규직은 같은 작업대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약 150만 원 정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 중 절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 27%에 비하여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유럽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동일하다. 다만 비정규직은 적게 일하고 적은 돈을 가져갈 뿐이다.
사실 현 정부가 강력하게 주창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에서 가장 시급한 내용은 바로 비정규직의 정상화가 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는 사회, 그건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온전하고 정상적인 삶을 가장 결정적으로 파괴하는 주범이며, 이러한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사회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비정상’ 사회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비인간적 대우에 소속감도 갖기 어려운 이들 비정규직에게 시설, 전기, 화재 등에 대한 안전 책임을 모조리 떠넘김으로써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고도 위험사회’가 되고 말았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국회 구내식당에서 몇 년 동안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바로 국회 내 외주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무자들이다. 힘든 노동은 모조리 이들 비정규직에게 전가시키고 있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에 인간적인 대우는 부재 상태이다. 이분들의 신분 보장과 인간다운 근무 조건도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극화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한국의 소득 상위 10% 인구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8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한 국가이다. 주민의 직접 선출제도를 비롯하여 사법제도와 인권의 기준 등 미국 사회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배우지 않으면서 정작 이렇게 극심한 소득불균형의 양극화와 같은, 닮지 말아야 할 것은 어찌 그리 잘 배우는지.
더구나 소득 집중도의 변화가 현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의 상위 10% 소득자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무렵 50%를 넘게 되고, 한국은 2020년이 되기 전에 미국을 제치고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2012년 말 현재 한국의 소득 상위 1% 인구는 전체 소득의 12.23%를 점하였다.
우리를 가장 절망시키는 것: 부의 세습화와 학력의 대물림
절망이란 단지 현재의 극심한 소득불균형과 양극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절망의 진정한 원인은 바로 내일에 대한 꿈을 꿀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지금 우리 모두를 절망시키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에서 부의 세습화와 그로 인한 학력의 세습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학생 100명당 서울대 합격자가 강남구는 2.1명인데 비해 강북구는 0.1명으로 무려 21배나 차이가 났다.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가 상위 1~3위를 휩쓸었다. 또한 학생 100명 당 서울대 합격자가 과학고 41명, 외고가 10명인데 비해 일반고는 0.6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분절되어 양극화하고 또 그것이 고착화, 심화되는 사회에서 “누구든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소박한 상식과 내일에 대한 꿈은 처절하게 산산조각 나고 만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창출된 사회적 부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극단적으로 극소수에게 독점되고 세습화되는 사회에서는 결코 일체감이 형성될 수 없고 사회적 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활력이 급속하게 사라지게 되고 국민적 사기가 저하되면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정체 혹은 퇴보해 갈 수밖에 없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슈퍼파워,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급속한 쇠락도 바로 1% 대 99%로 상징되는 양극화가 그 주요한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국가’의 개념
양극화와 부의 세습화로 인하여 사회 통합력 및 사회적 활력이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독일 국가운영의 한 특징인 ‘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사회국가의 원칙’이란 국가가 모든 국민이 사회공동체의 틀 안에서 실질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정부 제도를 구축하고 정책을 시행한다는 원칙이다.
‘사회국가’의 구체적 내용은 경제적으로 소수 기업의 경제적 독점과 담합을 반대하고, 그 대신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사회복지와 정의로운 분배에 정책의 중점을 두는 것 등이다. 다만 ‘사회국가’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근간으로 하고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한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이를 통하여 소득의 공정한 분배와 사회복지를 실현한다는 개념으로서 무조건적인 복지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와는 상이한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최근 문희상 새정치 비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야당 추천 몫으로 돼 있던 국회도서관장을 백낙청·이어령 교수 등의 추천을 받아 외부 전문가로 정하는” 방안을 제기하였다.
그간 야당이 임명한 국회도서관장은 대부분 당 대표 측근이 임명되면서 민주나 개혁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채, 자신의 개인적 전시성 업적 쌓기에 몰두하고 자신과 동문인 특정 대학 출신의 직원에 대한 과도한 중용 및 승진 등 좋지 않은 처신을 보여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이러한 모습들이 쌓여서 결국 야당의 이미지가 나빠진다. 그러니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진실로 변화하는 야당의 모습을 국민에게 증명하려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문제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국회도서관장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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