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를 만나 박 전 대표는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셨느냐.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사과'나 '유감'이라는 직접적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과의 의미'를 담았다는 흰색과 빨간색 장미다발을 건넸고 김 여사는 이를 사과로 받아 들였다.
거실의 벽에는 장준하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젊은 장준하 선생과, 이제는 82세의 노인이 된 김 여사가 가슴에 담았던 얘기를 적어 둔 메모지를 꺼내 읽으며 흘린 눈물, 그 노인의 손을 꼭 부여잡은 박 전 대표의 애잔한 표정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장 선생이 의문사를 당한 1975년으로부터 32년이 지난 2007년 7월, 대선후보 박근혜의 '과거사 끌어안기'를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 시절의 어두웠던 현대사의 한 장면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대단한 '깜짝쇼'라도 준비해 둔 것처럼 귀띔하며 일원동으로 향한 '대선주자 박근혜'의 발걸음은 분명한 '기획'이었다. 박 전 대표 자신의 정치적 맥락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마치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재임시절이던 지난 2004년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집권)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DJ와의 화해는 소위 '서진(西進)정책'이라는 한나라당의 호남 끌어안기가 시작될 무렵 나온 상징적 조치였다.
왜 장준하였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3년 전 밝혔던 사과에는 진정성이 얼마나 농축돼 있었을까. 박 전 대표는 최근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아버지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북한이 벌인 일이라고 의심했다"고 썼다. 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사건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깊숙이 관여한 듯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장준하 의문사'라는 두 사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혐의'는 짙지만 아직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권력기관이 행위의 주체였는지에 대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가 마주선 듯 보이는 과거사에는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명백한 오류를 사선으로 비켜 선 선택적 행위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준하 선생 유족과의 만남 직후 브리핑에서 캠프의 이혜훈 대변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고인의 사인규명에 나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가) 그에 대해선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모양은 '과거사 안고가기' 같은 착시효과를 내면서도 내용은 선택된 사건에 박 전 대통령은 관계가 없다는 적극적 항변이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녹아 있는 셈이다.
'명백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한…
자서전에서 박 전 대표는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일을 회상하며 "심장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썼다. 타인의 손에 부모, 형제, 자식을 잃은 그 고통을 박 전 대표만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에게선 과거사진상조사위와 대법원이 박정희 정권 시절의 '사법살인'으로 재평가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립서비스 사과'조차 나오지 않는다.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의 혹독한 고문으로 조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 뒤 불과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박정희 권력에 의한 인권 희생의 대표적 사례다.
오히려 박 전 대표는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혁당 문제는) 국내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때도 법정에서 결정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정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불쾌하게 반응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민주화에 진정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피해 입은 것에 대해 과거에도 사과했고 앞으로도 그럴 용의가 있지만 친북좌파의 탈을 쓴 사람들은 잘못이 있다"면서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런 대목은 지난 6월 그가 공식 출마를 선언하며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땅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의 희생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도 한 발언의 진의를 의심케 한다.
박 전 대표가 과연 과거사에 대한 분열증적 시선을 거두고 박정희 시절의 '명백한 과오'까지도 두 눈을 뜨고 마주볼 수 있을까?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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