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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란 손수건'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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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엄마의 노란 손수건'에서 배우다

[주간 프레시안 뷰] 행동하는 네트워크 조직 가능한가

뭔가 다른 이유

국회, 광화문, 청운동, 안산,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하 '엄마손'). 머리에 노란 손수건을 매고 나타나 무엇이건 열심히 합니다. 광화문 농성장에서도 서명대를 지키는 일에서 피켓 시위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서슴없이 몸을 움직이지요. 국회 농성장 출입이 통제되었을 때도 어떻게 들어왔는지 아이스박스까지 챙겨 와서는 가족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누는 데 여념이 없어요. 엄마손의 첫인상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느낌, 궂은일을 마다 않는 아름다운 당당함이었지요.
엄마손은 그동안 보아왔던 시민단체나 사회운동단체와는 뭔가 달랐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지는 기억저장소 1호관 일로 오혜란 엄마손 공동대표를 만나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첫인상부터 오 대표는 9000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단체'의 대표 모습이 아니었는데요, 굳이 모두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마음과 몸으로 보여주는 분? 나이는 저보다 많이 아래였지만, 편안하고 포근한 엄마의 느낌이 들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엄마손의 자세가 이런 거였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어느 기사를 보니, 기다림을 상징하는 노란색에 밭일을 하거나 부엌일을 하기 전 반드시 머리에 손수건을 두르던 옛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착안해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이름을 붙였더군요. 쉽게 수긍이 되었답니다.
사회운동이라 하면 '엄마의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는 이 지극히 당연한 키워드에 뭔가 한 방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한 대목이었어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옳은 길로 인도하려는 의지가 그 어떤 이념이나 논리보다 절절히 느껴지는 말, 엄마의 마음. 저는 평생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해본 적이 없거든요. 말이나 논리보다는 행동하겠다는 뜻으로 노란 손수건을 머리에 맨다 하니 더더욱 감동이었습니다. 노란색은 기다림의 의미니 천천히, 끝까지 하겠다는 것이고요. 이것이 기존의 시민단체나 사회운동단체와 엄마손이 다르게 느껴진 이유였습니다. 오 대표가 그런 느낌을 제게 그대로 보여준 셈이죠.

▲ 지난 6월 7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촛불집회에 참석한 '엄마의 노란 손수건'. ⓒ프레시안(최형락)

내부 투쟁하지 않고, 하나 되는 그들
여야 정치인들을 보며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싸움질입니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우리와 상관없는 정치 공학에 계파 싸움까지. 그들에게는 싸움질할 이유가 너무 많죠. 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은 이런 점에서 다릅니다.

초기에 가족대책위 임원 일부에 정의당 당원이 있다고, 일부에서 온갖 이간질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죠. 가족들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니 여당 당원도 야당 당원도 있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또 비교적 진보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하게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아이를 잃고 벽창호 정권과 대치한 지 다섯 달이 되어가니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을 텐데, 그럼에도 가족들은 분열하지 않았어요. 가끔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이내 서로 다독이고 하나가 됩니다. 하늘로 간 아이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 때문이죠. 그 사랑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돌리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원인을 치료해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염원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싸움질을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엄마손 역시 그런 점에서 가족들을 닮아 있습니다. 남편 몰래 활동하느라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끼고 나오는 회원이 있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시민이 대다수입니다. 중학생·고등학생 자식을 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세월호 참사로 수장된 아이들이 남의 자식 같지 않았겠죠. 사고 열흘 뒤인 4월 26일 모임을 처음 만들어 28일에 카페를 개설, 닷새 만에 회원 6000명이 가입했답니다.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이 한 마음으로 참사를 애도하고 희생자 가족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초기에 공동대표 정세경 씨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있었어요. <조선>다운 분열공작이었지만, "정당인도 엄마다"라는 한마디에 평정되고 말았지요. 저는 오히려 통합진보당 당원인 엄마와 선글라스 끼고 남편 몰래 집회에 나오는 엄마가 하나 되는 그 모습 자체가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치졸하고 말만 많은 정치인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가치를 희생자 가족들이나 엄마손 같은 분들이 실천하고 계신 거지요.
자유, 사랑, 정의와 같은 가치는 사상이나 논리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의 실천이 켜켜이 쌓여 실현되는 것이죠. 그동안 사회운동의 성장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대목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럽게도 정치 사상적인 논쟁에 익숙한 저 역시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작태를 연출하는 모습을 목도하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답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세상을 보라, 그리고 노란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핍박받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실천하라, 그러면 무엇이 가치이고 그 가치를 어찌 실현할지가 보일 것이다’ 하는 교훈을 유가족들이, 그리고 엄마손과 같은 새로운 운동가들이 제게 가르쳐 주었어요.

행동하는 네트워크 조직이 가능한가?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네트워크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는 했었지요. 의사결정 구조를 네트워크식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직접 행동보다는 협력 모델 정도로 네트워크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손은 행동하는 조직을 네트워크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 같습니다. 중앙 조직에서의 기획과 분담 지시 없이 그것도 전국에 흩어진 엄마들을 대상으로 행동을 조직한다? 쉽지 않은 시도죠. 직업을 갖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라 활동 가능한 시간대를 조사하고 기획된 활동에 적절히 배치하고 역할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제재하는 등의 체계적인 강제를 작동시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오혜란 대표는 웃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회의하는 것보다 쉽고요, 카페 개설해서 소통하는 게 편해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은 쉽지 않았던 것이 그들에게는 쉽다는 이야기였어요.
자발성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세가 기반이었을 겁니다. 그 기반이 어느 조직보다도 강하니 네트워크로도 충분히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고요. 처음 제안한 사람들이 사회 혁신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큰 담론적 과제를 내걸고 일을 시작했으면 지금의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겠지요. "엄마들이 지켜줄게", "대한민국 정부는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와 같은 진정 어린 외침이 엄마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이끌어 냈을 겁니다. 행동해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하는 조직. 엄마손 네트워크의 자기성장 메커니즘입니다.
엄마들이니 극성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카페에서만 대화하다 현장에서 만나면 너무 수줍어 말도 못 꺼내는 엄마들이 허다하답니다. 그러다 마음이 북 바쳐 "서명해주세요" 하고 소리 지르다 보면 어느 새 거리낌 없는 '투사'가 된다는 거예요. '엄마의 극성'이란 표현은 엄마를 모르는 이들의 편견에 지나지 않아요. 엄마는 포근하고 수줍고 사랑에 가득 차있으며 아이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바치는 그런 존재랍니다. 해서 엄마손은 그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무엇이든 가능한 '극성' 운동가로 스스로 발전해가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극성'에서는 마음속에 꽉 들어찬 사랑만이 보이지, 사상과 논리로 세운 목적의식은 보이지 않아요. 그 사랑의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사상이 되고 논리가 되고 목적의식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운동이 엄마손에게 배워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실천의 아이디어는 소통으로부터
엄마손에게 배워야 할 것이 또 있어요. 다채로운 실천이 그것입니다. 그 어떤 운동조직도 해내지 못하는 발상들이 엄마손에서는 자연스럽고 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카페에서 의견을 나눌 뿐인데도 말입니다. 분향소 앞 침묵시위와 단원고로의 행진에서 시작해서, 전국 서명활동 하기, 희생자 가족들 활동현장에 먹거리 대기, 리본, 목걸이 만들어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노란 손수건 매고 촛불집회 제일 앞에 앉기, 현수막 달기, 신문광고 내기, 정치인들에게 촉구, 항의 전화하기, 악성 댓글 등 신고방 운영하기, 특별법 홍보하기, 희생자 가족과 아이들에게 편지 보내기, 최근에는 동조농성하기에 이르기까지 활동 아이템이 끝이 없어요. 이에 대한 오혜란 대표의 해석은 간단명료했습니다.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인데요."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진상규명을 위해, 아이들이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서로 소통하다 보니 다양한 행동 아이템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바람직한 사회운동의 방식을 이리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니, 항상 기획하고 조직하고 역할 배분하는 일에 익숙한 제게는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소통된다 한들 힘이 빠지기 마련이지요. 엄마손이 지치지 않는 이유는 실천에 있다고 봅니다. 행동 아이템이 나오면 카페에서 소통하고 제안자를 포함해서 몇 사람이라도 일단 실천에 옮기고 보는 엄마손 식 운동방식. 공동대표들이 있지만 굳이 이런 행동들을 통제하지도, 특별히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활동을 위한 재정 충당 역시 각지에서 각자가 십시일반으로 내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고요. 결과적으로 이런 운동방식이 주효해서 그 어떤 사회단체나 시민단체보다도 효과적으로 다양한 일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원 가치와 자발성의 철학이 엄마손에 의해 실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네트워크는 이렇게 할 때 비로소 그 잠재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주도에 사는 어느 엄마 한 분의 이야기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제주도에 사시니 희생자 가족들에게 직접 뭔가 해드리는 행동에 참여할 수 없었겠지요. 꼭 서울에 한 번 오고 싶다 해서 오 대표가 동행한 적이 있는데, 놀란 것은 안산에서도 광화문에서도 가족들을 너무 많이 알아 서로 인사하고 껴안고 하더라는 겁니다. 알고 보니 희생자 가족들의 페이스북에 일일이 친구 신청을 해서 댓글 달아주고 응원하고 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는 겁니다. 오 대표는 그분과 만나서 울고 헤어지며 울고 했답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서로의 마음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엄마손이 네트워크 방식으로 지금까지 실천을 잘 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통하는 마음'에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416 기억저장소'와 함께 미래를
지금은 아니지만 곧 엄마손의 활동 반경이 달라지겠지요. 특별법 싸움이 일단락되어 희생자 가족들이 농성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점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손이라면 능히 그 새로운 국면에 자연스레 대응해 가리라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전부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공동체운동을 제안해왔어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돈보다는 사람이, 국가보다는 국민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 되려면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이런 운동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저는 우선 전국의 힘을 집중해서 안산 고잔동·와동·선부동에서 공동체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분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모두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를 가꾸어 가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세상을 향해 발해 서서히 대한민국 모든 마을들이 그리 되어갔으면 정말 좋겠어요.
오혜란 대표를 만난 것도 이런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였지요. 416 기억저장소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기록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일 테니 이곳을 근거지로 해서 공동체 운동을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오 대표의 답은 역시 간단했어요.

"공동체 운동, 꼭 필요합니다. 회원들의 뜻에 따라야겠지요."

다행히 기억저장소에서 할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일은 일단 오 대표 개인 차원에서라도 함께 하기로 했답니다. 하지만 오 대표는 사진 영상강좌나 기록시사회 같은 프로그램보다는 희생자 가족들과 지역주민들이 도란도란 모여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는 데 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자리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엄마손에서 경험한 방식이 가장 민주적이고 효과적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고요.
엄마손 방식으로 공동체 운동을 해보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엄마손과 함께 하면 더 좋고요. 왜냐하면 사회는 이제 변화해야 하고 그 변화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상과 논리가 앞서고,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 익숙하고, 목적 중심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분열하기도 하고, 보통 시민들과는 잘 결합하지 못하던 우리. 이제는 엄마의 노란 손수건에서 배워 스스로 새롭게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눈앞에 닥친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길게 보고 변화하자는 거지요.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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