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MB)은 박근혜 정부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특히, '저탄소 녹색 성장'으로 치장했지만, 사실상 '고탄소 회색 성장'으로 결판난 4대강 정비 사업과 핵 발전 확대 정책의 후유증은 현재형일 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 한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핵 발전 정책에서 이명박 정부 집권 5년 전과 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핵 발전 산업이 이전 정부에 비해 2배로 증가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원자력산업회의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 이전 시기에 핵 발전 산업체의 연간 매출은 12.8조 원 규모였는데, 2008년 이후 급증하여 2012년 현재 21.4조 원으로 급상승했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은 연간 2.5조 원에서 5.3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장면 1 : 내가 17년 동안 해봐서 아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95년 펴낸 자서전 <신화는 없다>(김영사 펴냄)에서 현대건설 회장 시절인 1988년 한국전력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해 증언을 내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특수성에서부터, 현대건설이 처음 고리 1, 2호기 건설 때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하청 업체로 참여해 오늘날 원자력 발전소 설비 일체를 건설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업체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간추려 설명했다."
실제, 당시의 국회 회의록을 보면 그는 이렇게 발언한 것으로 나와 있다.
"17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원자력기술의 자립화라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면 2 : 정치 자금을 안 준 건 영광 3, 4호기 건설이 처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참석한 한국전력에 대한 국정 감사는 5공화국의 대표적인 비리사건으로 알려진 영광 3, 4호기 주계약(컨버전스 엔지니어링) 및 건설 계약(현대건설) 특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1987년 4월 총공사비 3조3230억 원(당시 가격 44억 달러)의 영광 3, 4호기의 토건 및 기전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이는 당시 단일 공사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당시 건설 공사의 수주가 덤핑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관행 속에서 예정가의 90%가 넘는 좋은 가격으로 공사를 땄으니, 관례에 따라 정치 자금으로도 상당한 액수가 쓰였을 것이라는 것이 한간의 소문이었고, 그래서인지 이 문제에 대한 신문이나 국회에서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자서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대목을 이렇게 기술했다.
"영광 3, 4호기 원자력 발전소 공사는 현대건설에 낙찰됐다.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는 않겠지만, 정부에서 발주하는 거대 공사를 수주하면서 정치 자금이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은 공사이기도 했다."
영광 3, 4호기 수의계약에 따른 정치 자금 제공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 해명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전의 핵발전소 공사에서는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고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참고로 과거 핵발전소의 경우 커미션은 원자로와 터빈 발전기가 계약금의 3%, 설계 기술 용역이 5%, 토건이 10%라는 얘기가 있다. 실제 검찰 수사 결과, 월성 2, 4호기의 에이전트가 당시 한국전력 사장에게 2억 원을 줬고, 한국전력 사장의 알선 커미션이 726만 달러였다(<한국원자력창업사>(박익수 지음, 과학문화사 펴냄). 소문대로 영광 3, 4호기 건설의 커미션이 수주액 44억 달러의 10%라면, 더구나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핵발전소 납품 비리는 스케일 면에서 조족지혈이라 할 수 있겠다.
#장면 3 :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엿장수 마음대로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의 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0년까지 신규로 핵발전소 2기, 석탄 3기, LNG 10기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발표된 2008년의 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2년까지 신규로 핵발전소 60기, 석탄 5기, LNG 1기를 짓기로 했다.
또,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핵발전소 관련 각종 인·허가 과정이 대폭 단축됨으로써, 미래와 현재의 핵 발전 산업의 국내 시장을 급속히, 그리고 양적으로 확대를 유도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전 정부에 비해 연간 핵 발전 매출이 급속히 증가하고, 미래의 핵발전소 건설 프로세스를 확정, 추진하였다.
2년 주기로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계획 기간도 2년 연장되는데, 그 때마다 핵발전소를 최소 2기 이상 신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미래의 신규 핵발전소 시장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한편, 상업 운전 중인 핵발전소의 수가 늘어날수록 유지·관리 등을 명목으로 커지는 현재 핵 발전 산업 시장의 팽창을 도모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보다 더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 있을까?
이러한 핵 발전 정책 드라이브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서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박근혜 정부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35년까지 핵 발전 설비 비중을 29%로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8년의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핵 발전 설비 비중을 41%로 설정한 것보다 낮아졌다는 착시를 불러 온다.
그러나 이는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핵발전소 이외에 7기가와트 규모를 추가로 짓겠다는 방침이고, 현재 건설 중인 5기와 계획 중인 6기 외에도 최소 5기에서 7기를 추가로 증설한다는 의미이다. 즉, 현재 상업운전 중인 23기의 핵발전소가 2035년에는 40기 안팎으로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조만간 발표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핵 발전 정책이 연장선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핵 발전 정책이 주는 시사점은 핵 발전 정책의 결정권자들과 수혜자들의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감시받지 않는 관계를 주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 원자력문화재단을 위시한 원자력 업계의 광고 공세와 언론과의 공생 관계, 원자력 정책과 정치 후원금을 둘러싼 정치인과 이들 기업의 관계, 연구개발(R&D)과 원자력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 퇴직 관료의 재취업과 그들의 역할 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의 중요성도 시사한다.
이를 통해, 폐쇄적이고 베일에 싸여 있던 원자력 정책 결정 과정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위한 출발일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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