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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비자로 입국했는데, 보호소 수용이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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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합법 비자로 입국했는데, 보호소 수용이 웬 말?

[기고]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라지 씨의 사연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라지(30) 씨는 지금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 중이다. 이틀 뒤로 예정된 출국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 글이 실리는 이 시각, 라지 씨는 아마도 출국비행기 탑승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이송 중일 것이다.

라지 씨는 2008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왔다. 4년 10개월간 취업하던 중, 2012년 교통사고를 내고 795만 원이라는 꽤 많은 벌금을 부과받았다. 당장 벌금을 납부할 돈이 없어 몇 개월이 걸리긴 했지만 부과받은 벌금을 모두 납부한 뒤, 그리고 2013년, 비자기간이 만료되어 출국하였다. 

키르키즈스탄으로 돌아간 라지 씨는 다시 한국에서 취업하고자 고용허가제 절차에 따라 한국어시험을 치고 사업주와 근로계약도 맺었다. 그리고 한국대사관에서 90일간의 사증도 발급받아 2014년 7월 16일 한국에 다시 입국하였다. 라지 씨가 인천공항 입국심사 시 공무원이 라지 씨의 벌금부과 사실을 파악했는데, 라지 씨는 당시 벌금을 납입한 납입증명서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무난하게 입국심사를 마쳤다. 라지 씨가 한국으로 다시 입국하게 된 이 모든 과정은 합법적이었다.  

입국 후 사업장으로 간 라지 씨는 사업주와 함께 외국인등록증 발급신청을 하기 위해 관할인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그런데 라지 씨의 범죄경력을 조회해 본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는 라지 씨에게 '형사범 관련 진술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체류 여부에 관한 심사결정에 필요하니 형사처분을 받게 된 사건, 계속 체류해야 할 사유, 그리고 법 위반 사실에 대한 반성과 체류 중 법규 준수를 서약한다는 내용의 진술서였다. 라지 씨는 진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였는데, 출입국사무소는 라지 씨의 외국인등록증 발급을 거부하였다. 5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받은 경우 입국이 규제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외국인 등록이 거부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득해진 라지 씨는 출입국사무소의 다른 공무원에게 '그럼 나는 어떡해요?'라고 물었고, (아마도 라지 씨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 듯한) 공무원은 '다른 출입국사무소로 가보세요' 라는 무심한 답변을 주었다. 라지 씨가 외국인등록증을 교부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라지 씨의 사업주는 라지 씨와의 근로계약을 파기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된 라지 씨는 고용허가제의 절차에 따라 다른 사업장을 찾아 계약을 맺고 1주일간 일도 했다. 그리고 라지 씨는 다시 외국인등록증 교부신청을 하기 위해 관할인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나 청주출입국사무소는 라지 씨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였다. 이전에 부과받았던 벌금형이 원인이었다.   

구금된 라지 씨는 한국 출입국사무소 측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입국규제자라면 왜 한국대사관은 내게 사증을 발급해주었는가? 왜 인천공항에서는 나를 입국시켜주었는가? 내게 외국인등록증을 줄 수 없다면 안주면 되는 것이지 왜 나를 구금하는가? 나는 한국대사관으로부터 90일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는데 왜 나를 구금하는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외국인보호소에서의 생활은 라지 씨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었다. 두통에 시달렸다. 집으로는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있다는 얘기는 차마 연락할 수 없었다. 이대로 추방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어 출국에 동의하였다. 보호소에 구금된 상태로는 너무 힘들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출국을 3일 앞두고 한국의 지인을 통해 라지 씨의 힘든 상황이 이주노동자 인권상담소에 전해졌다. 청주외국인보호소를 찾아간 변호사와 상담소 활동가를 만난 라지 씨는 자신의 간절한 희망을 털어놓았다.

'내가 한국대사관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체류를 허가받은 10월 9일까지 보호소가 아닌 곳에서 지내다가 자진출국하고 싶다. 이렇게 가고 싶지 않다. 이곳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그의 또 하나의 희망은 다음과 같다. 

'보호소 측에서 타고 가라고 한 귀국항공편은 카자흐스탄을 통해 귀국하는 경로이다. 그 경로로 가면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에 도착하게 되는데, 수도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다. 끝에서 끝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에서 내리게 되면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갈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가고 싶다'

그의 간절한 희망에 대한 외국인보호소의 공무원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입국규제자임에도 본국에서 사증이 발급된 것은 범죄경력조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통과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입국을 심사해야 하는 직원이 짧은 시간에 판단을 해야 하는데 어쩌다 실수한 것일 것이다.

사후에 범죄경력을 발견한 것인데 10월 9일 자진출국하도록 둘 수 없다. 추방할 때는 본국으로 추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한국대사관이나 법무부측의 고의는 전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정부 측의 시스템 미비로 인해 초래된 불법구금과 라지 씨의 인권 침해는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나?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미 입국해 있는 라지 씨가, 자신의 희망대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그가 자신의 잘못 없이 당하게 된 이번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상해 줄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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