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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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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게 묻는다

[김민웅의 인문정신] 정치의 사멸, 이대로 놓아둘 것인가?

야당, 이대로 붕괴하는가?

어떤 생명체도 평형 내지 균형 상태에 있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형의 동력, 또는 균형이 흔들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기본 특징이다. '제2 열역학 법칙'을 통해 일리야 프리고진이 간파한 것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에너지는 일단 발산되면 흩어져 사라지고 그런 가운데 그 에너지가 발생한 중심이 아니라 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변경의 지점에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지배적 힘에 눌려 있는 현실이 소멸하면 그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요소들이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오늘날 야당인 새 정치 연합을 태동시킨 것은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강력한 대안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기존의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표상처럼 보였던 안철수의 결합은 야당의 새로운 결속을 통해서 정치적 돌파력을 보여줄 것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정반대였다. 투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치구조와 역학에 재빠르게 순치되어 간 야당은 결국 김한길-안철수 체제를 청산하고, 비상상태로 들어갔으며 그 중심에는 박영선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후 박영선 체제가 보여준 것은 정치적 판단력과 소통능력의 심각한 결함이었고, 결국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상태에서 야당 붕괴의 위기에 이르게 했다. 본인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자신의 판단력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상돈 교수, 자신이 적절했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상대책위 위원장 영입문제는 본질적으로 지금 새정연 자신이 어떤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모르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이상돈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야당 내부의 전략가 집단과 이념적 근본주의자 탈레반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권위와 신뢰를 가진 지도력 부재에 따른 정치적 비극이다. 이 교수의 경우, 보수진영에서 합리성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적 조건이었다면 야당의 외연 확대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 부딪힌 야당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적 요구를 메시지화 할 수 있는 인물 내지 입장에 있지는 않다.

이 교수의 경우 박근혜 정권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해왔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오늘날 한국 상황에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가져오고 있는 박근혜 정권 태동의 책임과 관련해 통절한 자기반성과 사죄가 선결과제였다. 무엇에 대한 판단착오가 있기에 박근혜 정권 창출에 협력했는지 정리하고, 그에 기초하여 오늘의 한국정치에 어떤 가치와 노력이 최우선인지를 명확히 밝혔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개인적 서운함에 따른 반격으로 야당의 비상대책위 위원장을 받아들였다는 혐의를 벗기 어려워진다. 이번 사건 이후로도 이 교수가 박근혜 정권의 본질적 과오와 문제에 대해 일관성 있는 비판을 해나가기를 기대하는 까닭은, 그간의 발언이 그의 정치철학적 신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파동에 따른 야당의 지리멸렬함을 보면서 새누리당이 도리어 훌륭해 보인다는 식의 발언은 이상돈 교수의 한계 역시 보여주고 있다. 그런 발언의 동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현재 우리는 권력정치에 기반을 둔 조직적 우열을 가리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가 실현되고 어떤 가치가 박멸되고 있는가라는 절박한 문제 앞에 서 있음을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철저함이 없다면, 그가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정당과 정치는 가치의 문제보다는 조직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될 위험이 있다. 비상대책위 위원장 영입 파동에서 그가 받았을 상처에 대해서는 깊은 마음의 위로를 건네는 한편, 과연 자신이 야당의 대수술을 하는 책무를 받아 안으려 했던 것이 온당한 것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문재인 의원(지난 대선 당시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을 염려하는 발언들

이제 새정연의 정치적 파국은 그 형식과 절차가 어떻게 되어 있든 시간문제일 뿐 예견되어 보인다. 그 어떤 힘으로도 내부의 통합력을 복구하고 민심에 부응하면서 권위 있는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한길-안철수-박영선으로 이어지는 야당 붕괴의 과정에서, 우리가 새삼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문재인의 역할과 지도력이다. 그는 지난 대선의 야권 후보였고 부족한 준비에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문재인의 한계를 거론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은 중대한 사태변화이다. 이러한 목소리가 그를 아끼는 이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좋은 사람이다, 신중하다, 배려심이 깊다, 낮은 자세를 갖추었다, 포용력 있다, 이런 인격적 덕목들은 문재인에게 있어서 상당히 귀중한 면모이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은 대체로 이러한 그의 사람됨에 대해 가치를 두고 기대를 한다. 하지만 문재인의 신중함이 애매모호함이 되거나 실기(失期)를 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든지, 깊은 배려심이 명확한 입장천명에 걸림돌이 되게 하고 만다든지 포용력이 정치적 각을 세워 하나의 분명한 방향으로 정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자질에 타격을 주는 것은 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 자체에 손실을 가져온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문재인은 야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이유와 그를 타개할 방향, 방식에 대한 선명한 입장 표명이 부재했다는 점은 적지 않게 실망스러운 일이다.

비상대책위 위원장 영입 실패 이후 밝힌, 혁신과 외연 확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체제 작동이라는 그의 견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과제가 아니라, 혁신이라는 선결과제가 중심이 될 때 외연 확장은 뒤 따라 오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상황 파악이 이렇게 되면서 위기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응이 느슨해지고, 결과적으로 박영선의 실패를 함께 끌어안고 타격을 입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SNS와 보도로 그를 비롯한 주변의 자세한 해명을 듣자면 이번 상황에 대한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나, 민주공화국의 3권을 유린하고 있는 집권세력과 맞설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자세로는 한참 밑도는 판단능력과 처신이다. 투쟁력의 신경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지 않다.

야당의 전략 혼선과 분열의 위기에서 그가 확실한 방향설정을 통해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계속 엉거주춤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라는 자신의 가치를 불려 나가기보다는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당의 경우, 판단이 잘못되고 문제가 생겨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고 말을 바꾸고 모르쇠하는 식이 당연하게 되어 있으니 비판의 강도는 야당에 더욱 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은 과도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현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야당의 책임이 막중해지고 있고 그나마 정치의 복원을 하기 위한 동력 창출의 근거를 어떻게든 야당에서 찾아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당의 죽음이 아니라 정치의 사멸

물론 오늘날 야당의 붕괴상태는 어느 특별한 정치인이나 지도자의 책임으로만 몰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도자와 지도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또한 바로 그런 현실을 타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막대한 책임의 무게를 너무 모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신을 던져야 할 때 머뭇거려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와 동력을 약화시키고 만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하여 확실한 모습을 빠른 시간 안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야당은 구심력을 잃고 흩어져 나갈 것이며 일단 소멸된 에너지를 다시 그 안에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정치현실 변경에서 새로운 혁명적 힘의 태동이 사태를 전격적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야당의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사멸을 목격하고 있다. 이건 여당에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다. 진화는 단지 어느 개체나 종의 적응력 성공에 따른 결과만이 아니다. 진화에는 멸종이 포함되어 있다. 거대한 공룡의 멸종 뒤에 오는 진화가 오늘의 인류까지로 이어졌다. 새정연은 진화의 주체가 될 것인지, 아니면 멸종 뒤의 진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산화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문재인에게 마지막까지 기대를 거두지 않은 까닭은 이제 다른 방도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마저 아니라면, 괜한 미련 갖게 하지 말고 문재인은 정치를 깨끗하게 그만두는 것이 옳다. 어설픈 정치는 공적인 죄악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가 그저 N분의 1의 정치인으로 남는 것을 보려 했던 것 또한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계속 피멍이 들게 하는 집권세력,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면죄부를 준 사법부, 서민증세를 통해 대자본의 이해를 지속해서 방어하는 정권, 남북관계와 국제정치의 청사진 하나 재대로 없는 정부, 교육을 공적 혜택의 권리 대신 특권 계급의 자산으로 삼고자 하는 교육정책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폭정과 실정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야당이 이 모양이라면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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