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월 2일 세월호 참사 책임 문제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5월 19일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106일 만입니다. "지난번(세월호 참사)에도 빨리 갑판 위에 올라가라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많은 인명이 구조될 수 있었는데 그 한마디를 하지 않아 희생이 많았다" "책임을 맡은 사람, 선장이면 선장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 인명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빨리 갑판 위로 올라가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하지 않은 것이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선장 책임이라는 얘기죠. 국가 지도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국가개조를 약속했던 대국민담화 발표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 그는 '세월호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갔습니다.
같은 날 하사관 병사 두 명이 포로 훈련을 받던 도중 사망했습니다. 동료 병사들의 왕따에 무차별 총격으로 대응했던 임 병장 사건, 선임 병사의 무자비한 구타로 목숨을 잃은 윤 일병 사건 등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군대 내 폭력 및 사망사고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9월 3일 열린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눈 딱 감고 풀어라"며 과감한 규제완화를 주문했습니다. 규제 완화가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군사작전 펼치듯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의 양극화를 몰고 온 신자유주의의 요체가 바로 규제 완화와 민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민생의 이름으로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민영화와 규제 완화의 끝은 민생 파탄이 분명한데도 저들은 그 반대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7.30 재보궐선거 이후 박근혜 정부는 드러내놓고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니, 지난해 이 정부 출범 이후의 행태를 보면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파헤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낸 일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그리고 최근 김문기의 상지대 총장 복귀에 이르기까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행태들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우며, 가까스로 정상을 찾아가던 대한민국을 다시 과거의 비정상으로 돌려놓으려 합니다.
누군가 '정치란 최고의 자선 행위'란 말을 했습니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일이야말로 정치가 해야 할 1차적 책임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실 규명입니다. 꽃다운 나이의 자식들이 왜,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제대로 밝혀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 4개월이 지나 추석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진상 규명의 첫걸음은 시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무책임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이 만들어낸 정치의 실패이자 정치의 실종입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진상 규명을 호소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한 시인이 얘기했듯 "오직 진실만이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추석,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을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 <주간 프레시안 뷰>, 추석 연휴 기간 쉬어 갑니다. 54호는 9월 18일 발행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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