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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와 이순신 그리고 바다 경영

[김성훈 칼럼] 이한빈의 신 태평양시대 'L字형' 한국발전 모델

큰 사람이 되려 하면 바다를 아니 보고 누가 그것이 가능하다 하리오.

더욱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大韓民國이 장차 이 바다로서 활동하는 무대를 삼으려 할 때 新대한소년은 공부도 바다에서 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고, 놀기(遊戱)도 바다에서 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터인즉, 바다를 바라보고 친할 뿐만 아니라, 부리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만큼 긴요한 일이 없을 것이다.

新 대한소년에게 있어 '바다를 보지 못하였다. 알지 못하였다' 하는 것은 최대 치욕이요 걱정거리인 것처럼, 그 반대로 ‘바다를 보았다. 안다’ 하는 것처럼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 없느니라.

<少年> 창간호(1908. 11. p.83)
*고문체의 원문을 현대 문체로 바꿈.

'섬나라' 大韓民國의 가련한 청소년들

동서양의 수많은 전략전술가들(키케로, 마한, 월터 로리, 김상기, 최남선 등)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해 왔다.

지난 70개 성상, 남북 분단과 대립으로 인해 북쪽 대륙으로의 진출이 막힌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면이 바다로 막혀 있는 '섬나라'나 다름없다. 섬나라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렇다' 하고 내세울 원대한 바다 경영의 해양 정책과 비전이 없다. 범(凡) 태평양시대가 우리 목전에 열리고 있지만, 여전히 공허한 한·중 FTA, TPP(태평양 동반자협정) 등 허황한 '경제 영토 확장'이라는 신기루에 도취해 자발적으로 세계 '대기업 지배체제(Corporatocracy)'에 편입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어린 소년 최남선이 꿈꾸던 주체적인 해양 경영의 비전이 없다. 일찍이 장보고 대사와 이순신 장군 등이 펼쳐 보였던 '바다 주권(主權)=국가 주권'이라는 의미의 미래 경영의 청사진이 없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미래가 바다 경영에 있으며 그곳이 자라나는 젊은 세대, 오고 또 올 우리 후손의 영원한 일터이요, 삶의 원천이 보이지 않는다.

열아홉 천재 소년 최남선(崔南善)은 중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少年)>을 발간했다. 그가 발표한 신체시(新體詩)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통해 드러난 큰 뜻, 큰 꿈,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최남선은 그의 시에서 어린 소년들에게 불어넣으려는 바다의 위대한 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진시황도 나폴레옹도, 그 누구도 나(바다)에게 크게 절하고 굽실거릴 뿐만 아니라, 감히 겨루려 하지 못한다. 육지에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부리는 자 누구라도 내(바다) 앞에 와서는 꼼작 못하고, 아무리 크고 높은 이라도 나한테는 행세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 나(바다)의 짝이 될 이는 크고 길고 넓은 저 푸른 하늘뿐이로다. 이따위 세상사, 저따위 인간들처럼 싸움질이나 하는 더러운 것이 없는 이 바다는 세상 사람 모두 다 미우나, 딱 하나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담이 크고 순정에 찬 소년들이 귀엽게 재롱부리며 나(바다)의 품에 와서 철석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들아! 입 맞춰 주마. 처얼썩, 철썩, 뚜르릉, 꽝.

상동
* 고문체의 원문을 현대 문체로 바꿈.

'바다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이 시는 역설적으로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조난당한 세월호 참사의 비운을 떠오르게 한다. 17세 청소년들로 주로 이루어진 304명의 승객이 "가만히 있으라"라는 거듭된 선내 방송만 믿고, 선내에서 웅크리고 기다리다 졸지에 모두 수중고혼(水中孤魂)의 신세가 됐다. 최남선의 시어(詩語, 말)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선내방송을 거부한 채 모두 "바다의 품속으로 철썩" 뛰어내렸다면, 수중고혼의 신세만은 면하였을 것을!

아아, 참으로 분하고 원통하다. 미래 이 나라의 주역인 소년소녀들을 삼킨 바다, 골든타임에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하지 못한, 아니 구조하지 않은, 따뜻한 심장이 없는 대한민국 정부 기관, 비전이 없는 남북으로 갇힌 섬나라, 권력유지와 기업이윤 극대화가 최우선인 사회체제에서 비명에 간 어린 백성의 영혼은 아, 지금쯤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국정 운영의 총체적 난맥상

세월호 참사에서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세월호(세상을 초월한다는 뜻)의 침몰 원인이 무엇이며, 둘째 구조 과정에서의 총체적 국정(國政) 난맥상이다.

침몰 원인은 한마디로 돈, 즉 자본(資本) 및 기업(企業) 이윤과 권력 유착에 따른 '이윤 극대화 = 안전불감증'이 체질화한 신자유주의 기업지배 사회의 속성 때문이다. '비지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를 내세운 '이명박근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 아래, "대기업 자본의 국가지배체제(학술용어로 Corporatocracy)"가 필연적으로 빚은 참사 현상의 하나다. 바다도, 하늘도, 땅 위, 땅 아래 어디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대기업 자본이 탐욕의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고, 설상가상 생명(生命)과 안전(安全)에 관한 문제마저 기업 이윤 극대화를 위해 국가적으로 '규제완화'에 혈안이 되어 왔다.

그리고 사고 다음날 '한 명도 빠지지 말고 전원을 구조하라'는 대통령의 지엄한 현장 지시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동서고금에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적 참사는 한 마디로,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말단 해경(海警)에 이르기까지 무위, 무능, 무책임의 행정 난맥상 때문이었다. 통신·보고체계·보고내용·구조장비·구조인원·지휘체계·관련 부서끼리의 불통, 석연치 않은 구조업체의 선정과정, 초기 민간 잠수사 배척과 사후관리 부실, 해군·해병·해경의 위기대응 능력 부재,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상식을 초월한 일탈 행위, 대통령의 유체이탈 식 언행 등 그 어느 하나도 예외 없이 '無爲, 無能, 無責任'이 아닌 것이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핑계 돌리기, 남 탓하기, 과거 적폐(積幣) 탓하기, 일회성 엄중 문책발언 남발 등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상황 모면'용 일탈 행위가 다반사였다. 구조의 골든타임에 도착한 해경 123경비정 함장이라는 사람의 법정 진술 "세월호 승객들에 대한 탈출 권유 방송을 깜빡 잊어버리고 하지 못했다"는 그 백미(白眉)다.

심지어 해경 매뉴얼에는 사건 발생 시 그 '충격을 완화 시킬' 더 충격적인 (홍보) 기사를 발굴하라는 지시에 따른 듯이 사후 거짓 홍보와 사탕 발린 발언을 남발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때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탄 배경이다.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한 정부의 무능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수십 일씩 단식하면서 처음부터 줄곧 '철저한 진상규명 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정부에서 민간 기업에 이르기까지 돈, 기업이윤, 수출, 성장, GNP 수치만이 뼛속 깊이 자리 잡아 국민의 生命과 安全 불감증 현상이 도처에 유청산(有靑山)이다. 그로 인해 세월호 참사, 서해 페리호와 천안함 사건,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등 비슷한 사건사고가 그칠 날이 없다.

바다는 다른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 생명과 희망의 원천으로서, 폭리와 영리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자원과 부(富)의 원천으로서 또는 몰락의 원인으로서, 바다는 우리에게 과거를 묻고 미래(未來)를 여는 엄연한 우리의 현재인 것이다.

해양 경영사에 떠오르는 불세출의 영웅들

우리나라 해양 경영사(史)에 샛별 같은 수많은 위인이 있지만 바다에서 나라와 겨레를 구한 영웅을 말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9세기 장보고(張保皐, AD?~846) 대사와 16세기 이순신(李舜臣, AD1545~1598)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두 영웅의 공통점은 서남해안 섬(다도해, 多島海) 사람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순신 장군은 그의 우인(友人)에게 보낸 편지(<난중일기>에 수록)에서 "약무호남(若無湖南)이면 시무국가(是無國家)"라고 해서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을까. 장보고 대사는 그 자신이 해도(莞島) 출신으로 중국에서 출세했으나, 동포들이 노예로 팔리며 고통 받는 참상에 분연히 귀국해 완도 장도 일대에 청해진(淸海鎭)을 개설하고 한·중·일 바다에 출몰하던 해적을 소탕했다. 명실공히 동양 3국의 해상왕으로, 이른바 다국적 초(超) 국경 군·산·상업 복합체의 해상 왕자로 군림했다.

▲ 영화 <명량> 중. ⓒ(주)빅스톤픽쳐스

그런데 이번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특정지역에 소재한 두 분의 유적이 긴 세월 동안 홀대받아 왔다. 이순신 장군은 그의 마지막 3도 수군본부 본영을 1598년 2월 18일(음) 목포의 고하도에서 완도의 고금도(묘당도)로 옮기고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陣璘)의 수군 5000명과 함께 일본군의 조선반도 철수에 대비, 최후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을 준비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기간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23전 23승의 마지막을 남해와 사천·하동의 좁은 수로에서 '노량대첩(露梁大捷, 1598년 11월 18~19일)'을 잉태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일찍이 청해진 대사(Commissioner, 총감(總督)) 장보고는 청해진(완도)을 기지로, 신라 경주의 감포항과 서남해안 일대, 그리고 중국 산둥반도와 장쑤성·절강성·광둥성·경항(京杭)대운하와 장안(西安), 일본 하카다·교토·오사카, 나아가 샴(타일랜드), 페르시아(아랍), 필리핀을 상대로 활발한 교역을 펼치며 만국의 상인을 맞이했다. 우리가 세계사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해양 상업 제국(帝國)의 기틀이 이곳에 자리 잡았었다.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과 23전 23승의 이순신 장군

미국 주일대사를 역임한 하버드 대학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 교수는 "이 지구 상에 수없이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일어섰다 사라져 갔으나,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간 한 언어와 한 문화권, 한 핏줄 그리고 비슷한 규모의 국경을 보존해온 국가는 아마도 중국을 빼놓고는 한국뿐일 것이다. 신라 이후 한국은 오늘날까지도 국가와 민족의 동질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대 유럽 국가에게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Ennin’s Travels to Tang China>, 1955)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장보고와 이순신 같은 세계적으로 걸출한 해양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 대사(Commissioner)를 일컬어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The Trade Prince of Maritime Commercial Empire)"이라고 명명했다. 역사상 훌륭한 왕후장상(王侯將相)과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지만, 한·중·일 정사(正史)에 그 전기가 실린 영웅은 오직 장보고 청해진 장군 한 분뿐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세계 해전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23전 23승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이 그의 영웅 됨을 증거한다. 무적의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한 노일(露日)전쟁의 영웅인 일본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그의 승전 기념식장에서 자신을 이순신 장군에 비교한 기자에게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견줄 수는 있어도, 감히 이순신 장군에 비교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에 비교한다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도고 제독의 노·일 전쟁 승리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 당시 일본 수군격파에 썼던 학익진(鶴翼陣) 전법을 응용한 'T 진법' 덕분이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서남해안의 해로를 이순신에 의해 완전히 차단당한 왜군은 군수 물자를 한양과 평양 등 육지로 수송할 수 없어 조선 침략 전쟁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즘 1700만여 관객을 열광케 한 영화 <명량>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두 해상 영웅의 최후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왕권의 시기·질투·음모에 의해 희생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보고 대사는 보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신라 문성왕(文聖王) 정권이 보낸 자객인 장보고의 옛 동지 염장에 의해 살해됐다. 장보고 장군이 낌새를 알고도 당했는지 이렇다 할 역사적 증거가 없으나, 아무튼 오늘날까지 민간인 사이에 전해오는 "염장 지른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마찬가지로, 이순신 장군 역시 노량해전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500여 척 왜선과의 접근 혼전에서 승전의 기미를 확인한 막바지에, 스스로 투구를 벗은 채 지휘선 지휘대 위에서 가림막도 없이 독전을 하다 날아온 유탄에 왼쪽 가슴을 내줬다. 장군은 수행한 조카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미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노량대첩에 앞서 이순신 장군은 사랑하는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듣고 한동안 심신이 쇠약해져 시름시름 앓았다고는 하나, 스스로 왜적에 목숨을 내놓은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다만, 부제학 이발(李潑)이 "시기심 많고 모질며 고집이 센 임금(선조) 아래에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변덕이 심한 비정한 왕조의 독제체제에서 혹여 이순신 장군에 대한 백성의 하늘을 찌르는 흠모와 구름 같이 몰려드는 민심을 시기하며 위협을 느낀 용렬한 왕에게 승전 후 다시 모함과 보복·재보복의 위해 행위가 가해질 것이 예상돼 이순신 스스로 적탄에 몸을 내맡긴 것이 아니냐는 '의자살설(擬自殺說)'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비탄을 맞고 운명을 거둔 다음에도 지금의 아산 유택에 옮겨지기까지 83일간 그의 시신은 완도의 고금도 수군 진영 언덕 위에 외로이 있었다. 서울 출신인 장군을 마땅히 모실 곳이 없어 휘하 장병과 백성이 시신이라도 사수하려던 본능이 오죽했을까 싶다.

팽개쳐 있는 바다 영웅들의 활동 무대

민생과 국운이 어려울 때마다 민초의 저항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바꿔 나라와 백성을 위기에서 구하고 살 길을 제시한 장보고·이순신 같은 바다 영웅이 오늘과 같은 난세일수록 더욱 그립고 간절하다.

그러나 정작 두 분의 주 활동 무대인 완도 및 남도 일대 유적지는 아직도 처량하게 방치돼 있거나 보존되어 있어도 누추하다. 전국 충무공 유적지 중 완도군 소재의 고금도와 충무사 유적지가 가장 초라하다 못해 사실상 버려져 있다. 한·중·일 정사에 빛나는 이곳의 장보고 대사 유적지 또한 초라하게 모셔져 있다. 중앙 정부와 지리적·물리적 거리가 멀어서일까? 우리나라 당대 정권이 해양 경영에 대한 의지와 비전이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예컨대, 장보고 대사와 후기 신라인의 항해 및 경제 무역 활동의 본원사찰(本源寺刹)로 알려진 법화사(法華寺 또는 法華院)가 중국 산둥반도 적산(赤山)과 일본 교토 히에이산록의 적산선원(법화원), 그리고 제주 서귀포 화원동에 엄연히 복구돼 있는데도 그 본부 사찰 격인 완도 상황봉의 법화사 유적지엔 아직껏 흩어진 주춧돌만 쓸쓸히 '장보고 푸대접'의 상징물이 되어 있다. 법화경(실상묘법연화경)은 장보고 대사가 불성(佛性)의 깨달음으로 인종, 성별, 신분, 사회적 지위,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중생구제 보살 행위와 경제무역 행위를 펼쳤던 정신적 기둥이었다. 특히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 중 '불난 집(火宅)'의 아이들 비유는 지금도 우리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산둥반도의 장보고 대사 유적지에는 중국 정부에 의해 장보고 기념관과 박물관, 상징물과 적산 법화원 유적지 등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복원되어 있다. 정작 대한민국 완도 장보고 대사의 청해진 본부 터에는 이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거나, 그마저도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정부 때부터 설립·운영돼 오던 "해상왕 장보고 재단"을 해체해 적립했던 십수억 원의 기금마저 빼앗았다(2011). 그리고 장보고 대사에 대한 추모 및 현창 사업은 전적으로 재정 빈약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방정부에 떠밀었다. 대한민국 정부에는 "장보고는 없고" 해양 경영 비전도 없다.

'세계 해양 영웅 공원'을 만들자!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은 장보고와 충무공의 완도 유적지부터 제대로 복원하라. 청해진과 법화사도 복원하자. 그리고 최근 세월호 참사로 수중고혼이 된 304명의 무고한 생령(生靈)이 쓸쓸히 잠들어 있는 이곳 남도 해역 일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안의 하나로 당장 해남 완도·진도, 남해 등 다도해 일대를 장보고와 이순신을 비롯한 우리 역사상 위대한 풀뿌리 해상 영웅을 기리는 '세계 해양 영웅의 공원'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바야흐로, 바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국민 속에 바다 영웅의 넋을 승화시켜 5대양 6대주 신(新) 해양경영 시대를 활짝 열어나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탄에 젖어 있는 이때 우리나라 우리겨레의 미래 바다 경영 비전을 새롭게 다듬어 나라와 겨레의 미래, 즉 살 길을 장보고 대사와 이순신 장군에게 의탁해보자.

끝맺는 말: 李漢彬의 新 태평양시대 '한반도 발전모형'

이제 다시 세계 제1의 조선국으로, 그리고 세계 유수의 해운국으로 뻗어 가는 운세의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국제무역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5대양 6대주가 우리의 일터로 다가오고 있다. 그 너머 새로운 '업'의 세계가 우리를 손짓하고 있다. 서해와 중국해·동해를 국적 없이 떠돌지 모를 우리 선조와 세월호 청소년의 영혼을 달랠 새 전기를 모색할 때다. 그리고 조선반도 서남해안을 왜적의 침입에서 지켜낸 이순신 장군과 남도인의 호국 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백가제해(百家濟海)'의 혼을 이어받은 바다의 후손이 지금 이 순간도 지구촌의 험한 파도 거친 바다를 거뜬히 넘나들고 있다. 이것은 해양 민족의 '본능'이라고 말하는데, 틀림이 없다. 라이샤워 교수가 말한 세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자 장보고의 혼과 피와 본능이 태평양시대, 동북아 경제권 시대에 임하여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우리 몸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과거만 묻는 것이 아니라, 다도해와 골든 서남해안의 현재와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듯 장보고는 고대 해상 민족이었던 위대한 한국인의 원형(原形)이고 이순신은 호국 정신의 정화(精華)이다. 현재와 장래에 있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우리나라 선단(해운, 원양어선, 해군)과 연안 바다를 지키는 해경 그리고 국제 상사들의 지남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항적 에너지를 한 차원 높여 해양경영과 세계사의 개척이라는 창조적 이상으로 내연(內燃)시키다가 비록 비명에 일찍 갔을망정, 장보고 대사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끊임없이 쫓아가야 할 소중한 역사적 표상(表象)인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일시적 감정풀이로 '해경(海警)을 해체하겠다'는 단세포적인 발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오히려 흩어져 있는 모든 해사 업무를 재점검해 통합할 것은 통합하고 보강할 것은 보강해야 한다. 연안 해안 경비 업무와 방어 업무, 무역진흥 업무를 더 내실화해 원대한 해양 경영의 청사진을 펼쳐야 할 때이다. 중국 시진핑은 최근 주변 국가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라 해서 육로와 해로의 실크 로드(Silk Road)를 다시 부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묵인 아래, 군사 대국화의 야망을 더욱 강화하며 집단자위권 행사를 공공연하게 다지고 있다.

이제 21세기 태평양 해양시대에 임하여 우리나라가 새롭게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실크로드 주재자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낭비적이고 자살적인 동서갈등과 남북한 대립으로 국력을 소진하여 허울뿐인 군소국가로 전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당대의 정치적 리더십 문제만이 아니다. 바야흐로 미래 세계 경영의 명운이 달린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1988년 '목포(木浦) 선언'에서 당대의 석학 이한빈(李漢彬) 부총리가 맨 처음 주창한 "한국의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라!"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전체가 태평양을 향해 돌출해 나가는 형국을 21세기 태평양시대 한반도의 새로운 발전 전략으로 삼아야 할 때다.

이른바 이한빈 박사의 'L字형 발전모델'은 그 돌출부에 목포가 있고 해남 진도·완도·고흥·여수 등 다도해와 마산·진해·부산의 해운력이 총집결돼 있다. 군산·서천·평택·인천과 대전·서울·평양·신의주·원산·나진·선봉 등을 이끌고 나가는 학익진 발전모형이다.

21세기 새로운 세계사의 개척은 지금도 만인의 뜨거운 가슴속에 살아 숨 쉬어야 할 장보고 대사의 해양 경영 정신을 되새기며,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을 가슴에 안고 개척해 세월호의 한(恨)을 긍정적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새로운 실크 로드여야 한다. 이제 인천과 목포와 부산을 잇는 황금의 서남해안벨트와 다도해 가치의 재발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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