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원하지 않습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우리는 철저한 진상 규명 하나면 됩니다. 내 목숨이라도 내놓을테니, 제발 우리 애 살려서 보내주세요. 그게 안 된다면, 제발 진상 규명이라도 해달라는 겁니다."
마이크를 잡은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청와대 앞 노숙 농성 9일째.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故)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인 유 대변인은 "동네 개가 짖어도 시끄러워서 나가 보고, 고양이가 울어도 기분 나쁘다고 내다보는데, 우리 유족들은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모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경찰 차벽은 두텁게 유족들을 둘러쌌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은 유족들의 농성장과 도로 하나를 마주한 채 길 건너편에서 고립됐다. "인도로 지나갈 테니 길을 내 달라"는 요구에도, 경찰은 '불법 집회'라며 해산 명령을 반복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청와대 인근 노숙 농성이 9일째를 맞은 30일, 이날도 유족들은 불과 450미터 거리에 있는 청와대를 지척에 두고도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오가는 길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단원고 희생자 고(故)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유족들 앞을 빼곡하게 막아선 경찰 너머 청와대를 향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소리쳤다.
"원하는 답만 주면, 우린 돌아갈 수 있어요. 빨리 안산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분향소 가서 애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집에 가서 영정 사진 한 번 더 만져보고. 사진이라도 안아보고 싶어요. 우리 애 있는 하늘공원도 못 간 지 오래됐어요. 진상 규명만 해 달라는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중국인 관광객은 수십 명씩 오가는 길, 유족들에겐 허락하지 않는 정권
청와대로 가는 길목은 막혔지만, 이날도 광화문광장에는 "청와대가 응답하라"며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몰렸다. 유가족과 시민 5000여 명(경찰 추산 2000명)이 모여 유가족의 뜻이 반영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한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 20여 명이 도착해 유족들에게 실종자 10명의 얼굴이 새겨진 노란색 조끼를 전달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 주변에 차벽을 치고 30개 중대 2400여 명을 투입했으며,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해산 명령을 반복했다. 이에 주최 측은 '서울시로부터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공문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집회 후 참석자 중 일부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행진했지만, 경찰이 가로막으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행진은 "더 이상 다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바람에 따라 오후 10시께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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