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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남북 시대? 지금은 '남북 왕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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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남북 시대? 지금은 '남북 왕조 시대'다

[주권자 인민 정치혁명·③] 남북 제왕 정치 체제의 적대적 공존

한국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할 때 상당한 거액을 쓴다. 지난해 5월,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전 세계에 망신만 당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에는 그 대변인의 특급 호텔 비용까지 합해서 총비용은 4박 6일 동안 자그마치 33억3000만 원이나 되었다. 하루에만 5억 원이 넘는 돈을 쓴 셈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대통령실이 세출 예산액은 1600억 원을 훌쩍 넘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직원은 1000명가량 된다. 그 가운데 경호원이 500명이 넘는다. 군대 편제로 보면 1개 대대가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의 경호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1억 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다. 거기다 운전기사를 포함해 10명 이상의 공무원이 죽을 때까지 전직 대통령에게 봉사해야 한다.

오늘날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은 정치 체제를 놓고 보면 남북 왕조 시대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 남북이 서로서로 절대 권력을 강화시해 주는 적대적 공존의 제왕 정치 체제, 이것이 한반도의 정치 현실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절대 수령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이야 두말할 나위 없는 전체주의 왕조 독재 체제이다. 그러나 남한 대통령 또한 단지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그 방식만 다를 뿐 사실은 제왕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력은 조선 시대 어떤 임금보다도 더 많고 더 막강하다.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英祖) 대왕조차 지금의 청와대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궁녀 한 명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했다. 영조는 궁녀 한 명을 더 늘리고 별군직에 인척 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았느냐는 과거 응시자의 호된 비판을 받아 조정과 비변사 대신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을 정도였다.

"궁인(宮人)을 선발하여 들이는 것에 이르러서는 내가 본디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지난번 자전(慈殿)께서 면전(面前)에서 부릴 사람을 초입(抄入)하라는 명이 있었고 대신의 말이 있었으므로... 별군직(別軍職)에 사정(私情)을 썼다는 이야기는 더욱 무상(無狀)한 말이다. 나의 외친(外親)에 대해서는 경들도 응당 알고 있는데, 어찌 이 직임에 합당한 사람이 없겠는가마는, 또한 임명한 적이 없다... 이 뒤로는 왕자(王子), 왕녀(王女)가 초사(草舍)나 토막(土幕)에서 살더라도 내가 알 바가 아니다" 하고,
이어 눈물을 흘려 목이 메어 울며 말하기를, "내가 평일에 마음속에 맺힌 것이 있으면 털어버리지 못하였으므로, 근일에 목구멍에 환약만한 담(痰)이 엉겨 있다. 임금 노릇 하기가 참으로 또한 괴롭다"하였다.
- <영조실록> 43권, 13년(1737년) 3월 26일(갑인) 2번째 기사
영조의 권력은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가진 권력과 비교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왕이라는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한국의 대통령은 영조대왕보다 훨씬 더 세고 더 막강한 권력을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대통령실 공무원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군, 경찰, 검찰 등 입법, 사법, 행정의 주요 직책 전체를 망라하고 있다. 사법부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마지막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입법부 의원도 대통령이 비공식의 공천권 행사를 통해 제한된 틀 안에서이긴 하지만 인사권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주요 임원을 임명하는 정부 산하 기관과 민간의 각종 관변 단체만 해도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방송공사(KBS) 사장도 대통령이 낙점한 사람이 낙하산으로 내려가고 심지어는 시중 은행장도 대통령이 낙하산을 내려보낸다. 말이 삼권 분립이지 실제로는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선거로 뽑고 입법과 사법 권력의 일부를 나누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수천만 인민이 가진 권력을 몽땅 모아 단 한 사람에게 5년씩이나 강제로 맡겨 놓아야 하는 제도를 민주주의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칭해서 인민 주권을 강탈해 간 제왕정치 체제, 귀족 엘리트 독재 체제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인민(demos)이 통치하는(cratia) 체제이지 대통령 1인이 통치하는 체제가 아니다.

건설 족 출신의 부패하기 이를 데 없는 대통령의 대운하 계획에 장단 맞추어 온 국가 기관과 공무원이 총동원되고 수십조 원의 국가 예산이 4대강 굴착기 삽질에 쓰이는 국가를 인민 주권이 실현되고 있는 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 한 사람의 괴물 같은 의지에 따라 수백만 년 거기 그렇게 흐르고 있던 한강과 낙동강과 금강과 영산강이 몇 년 만에 산산이 파괴되어 버리고 마는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치 체제와 선거 제도를 민주주의라고 강변한다면 이는 스스로 사고할 얼과 넋을 잃어버린 채 그야말로 사대주의라는 새장에 갇혀 서구의 일부 주장을 되풀이할 뿐인 앵무새로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 학자와 정치인, 관료와 언론인 등 이른바 기득권 지배 계급이 바로 그런 앵무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들은 식민지 근성이 골수에 박혀 서구 '선진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이론을 베끼고 추종하는 누런 피부 흰 가면의 매국노 집단이라고 밖에는 달리 규정이 되지 않는다.

조선 시대 양반 계급은 토지를 자손에게 물려주면서 대대로 세습 지배 계급이었다. 오늘날 남북의 특권 엘리트 지배 계급 또한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대물림한다. 삼성 재벌은 이병철에서 이건희로, 이건희에서 또 이재용으로, 떡고물 받아먹은 사법 관료라는 주구(走狗, 사냥개) 덕택으로 세금도 몇 푼 내지 않고 세습된다.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조중동' 거대 언론 재벌도 대대로 대물림된다. 이들은 젊은 여성 탤런트의 성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판사와 검사에게 뇌물을 주었음에도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거꾸로 그런 사실을 폭로하고 비판한 국회의원과 기자만 기소되고 처벌받는다. 조선 시대 양반보다 더한 한국 지배층의 가렴주구와 탐학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은 분명히 갑오농민혁명 전야의 조선왕조 시대보다 더 못한 남북 왕조 시대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연합뉴스

남북 제왕 정치 체제의 적대적 공존

박정희는 1972년 10월 국회를 강제 해산하는 이른바 10월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인민의 동의 없이 헌정을 중단하고 영구총통제를 도입한 명백한 불법 내란행위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유신체제 선포에 앞서 북한의 김일성에게 친절하게도 이 사실을 극비리에 두 번씩이나 미리 알려주었다. (2009년 우드로윌슨센타의 동유럽 국가 북한 관련 외교문서 공개) 그로부터 두 개월 뒤인 1972년 12월 북한의 김일성 또한 북한 헌법을 개정해 수령론 중심의 주체사상을 명문화하고 주석제를 도입, 국가 주석직에 오른다. 1972년 남북한 인민을 깜짝 놀라게 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평양 방문과 북한 부수상 김성철의 서울 방문, 그리고 그에 뒤이은 7.4 남북공동성명의 화해협력이란 남북 절대 권력자끼리의 화해협력과 야합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남과 북에는 동시에 극도의 파시스트 독재 체제인 유신체제와 주체왕조 체제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에는 끊임없는 상호 도발과 전쟁 위기 조성을 통해 준전시 상태를 유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적대적 공존의 제왕 정치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 계열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했다. 박헌영은 1956년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허가이로 대표되는 소련파와 박일우, 무정 등 연안파도 숙청했다. 허가이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김일성은 1956년에는 개인숭배 반대를 내걸고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했던 최창익, 서휘, 윤공흠 등의 연안계와 박창옥, 김승화 등의 소련계 등을 대규모로 숙청했다. 제왕 권력의 확립이란 이렇게 숙청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살인 범죄 행각의 연속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나 총선 때마다 어김없이 간첩 사건이나 이른바 공안사건이 등장했다. 여운형, 김구 암살 사건과 관련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온 이승만은 1959년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조봉암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200만 표 이상을 얻어 1960년 네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승만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했고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진보당은 해산당했다.

박정희는 집권 기간 내내 동백림 간첩단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 간첩 사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등 거의 해마다 조작 간첩 사건을 일으켰다. 박정희가 조작 간첩 사건으로 누명을 씌워 살인한 사람의 수는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박정희는 민주화운동과 반유신 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를 때마다 습관처럼 이 같은 조작 간첩 소동을 일으켜 고문과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질렀다. 북에서도 남에서도 미 제국주의와 반동분자, 공산당과 빨갱이 간첩은 독재체제 유지의 가장 훌륭한 국면 전환용 희생물이었다.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공안사건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남한의 공안기관이 조작한 사건이거나 남북한 공안기관이 합작한 사건으로 밝혀지곤 했다. 1997년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당국에 휴전선에서 총을 쏴 달라고 부탁한 이른바 총풍 사건은 그나마 재판을 통해 그 음모와 조작이 공식 확인된 기획 공안 사건이었다.

이런 공안 기관의 정치 공작은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작년 대선 당시 국정원이 심리정보국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여론조작 활동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를 계속하면서 속속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나자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적절한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총장을 전격 갈아치워 버리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희생자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찾아내 구조하지 못했던 국가 기관이 검찰총장의 숨겨진 혼외 자식이라고 추정되는 학생은 귀신같이 찾아내 정치 공작에 활용했던 것이다. 결국 국정원의 여론조작 사건 수사는 이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가의 역할은 외적의 정치, 경제, 군사 침략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하고 인민의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가는 지금 인민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국가가 전혀 아니다. 남과 북의 '민주공화국'은 전쟁 조작과 공포의 환기를 통해 인민을 협박하고 인민 착취와 지배를 보장하는 국가일 뿐이다. 북한 인민의 아사와 굶주림, 대다수 남한 인민의 채무 노예와도 같은 생활고와 대형 재난 사고의 행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 인민의 국가가 아니라 북한과 똑같은 제왕 대통령의 국가, 소수 특권 지배 계급의 국가임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이 글은 협동사회독립언론 '두레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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