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현실주의 정치인에겐 미래가 없다"

"어떤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제주해군기지 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정책이 옳다 그르다'고 검증하고 싸워야지 '왜 비판하냐'고 따지는 이상한 나라"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해놓은 선거법에 대한 불만을 다시 한 번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전북 김제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전세계 민주주의 어느 나라도 대통령에게 선거든 정치든 중립 의무를 부여한 나라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었다.
  
  22일 제 4회 제주평화포럼 참석 차 제주도를 찾은 노 대통령은 제주지역 주요인사 오찬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선거법과 대선주자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이나 대선주자들의 실명이나 구체적 정책은 거론하지 않아 선관위의 선거중립준수 요청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노 대통령은 정치인의 이상을 강조하면서도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선 현실론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비판하냐'고 따지는 이상한 나라"
  
  대통령 5년 단임제, 선거법 등 현행 정치제도 수정을 시도했거나 시도하고 있는 노 대통령은 이날도 "정치제도가 정교하게 짜여지지 않으면 갈등만 발생하고, 효과적인 정치인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거법과 관련해 "현직 국회의원이나 도의원이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면서, 후보자가 뭘 하려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다"며 "후보 위에 국민이 있는 것인데, '정책이 옳다 그르다'고 검증하고 싸워야지 '왜 비판하냐'고 따지는 이상한 나라"라고 말했다.
  
  '취재지원선진화방안'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기자실을 가진 나라는 일본 외에 몇몇 없다"며 "하지만 여야 모든 국회의원에게 물어보면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니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힘 앞에서는 알랑거리고 고개 숙이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정당하게 이뤄지는 일을 왜 나만 못하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노 대통령은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 정치인은 미래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는 차기 대통령에 대한 노 대통령 나름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제주해군기지는 필요하다"
  
  제주도의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인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그간 말을 아껴 온 노 대통령이지만 이날은 "제주 해군기지는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해군기지에 대해 반대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제주도가 결정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책임을 제주도로 미뤘다.
  
  노 대통령은 "제 의지와 관계없이 행정의 방향이 가고 있기 때문에 가게 될 것이다"면서 "긴밀히 상의해서 제주도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결단이 내려진 만큼 아름다운 항만을 조성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관광객이 좋아할 명물이 되도록 운영해 나가겠다"며 제주해군기지를 기정사실화 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가 웬말이냐'는 지적을 의식한 듯 "미래에 있어 이상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에 있어 어떤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면서 "무장이 됐다고 평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무장으로 평화가 깨지는 게 문제지, 무장과 평화가 같이 있는 게 잘못은 아니다"면서 "무장 없이 평화가, 국가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제주도가 다시 한 번 세계 평화의 섬으로 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제주의 평화정신이 세계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었다.
  
  "제주는 참여정부의 적자"…"여러분이 1등 도민"
  
  이날 간담회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진행될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먼저 김태환 도지사는 "제주도는 참여정부의 적자(嫡子)다, 참여정부의 정책과 전략적 기조가 분권과 균형발전이기 때문"이라고 노 대통령을 맞았다.
  
  노 대통령 역시 "여러분들이 서울 시민보다 더 큰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1등 도민이다"고 제주도민들을 추켜세우며 "이럴 때는 박수 한 번 치고…"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노 대통령은 "제주도를 특별 대우하는 수준으로 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겠다"면서 "제주도를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영어타운 추진, 영리 병원 추진 등 '신자유주의적' 사업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빙 둘러보고 가는 영어마을 말고 6개월, 1년 정도 체류하면서 가는 복합단지로 가야 할 것", "의료산업체계가 꽉 막혀 있다"는 등의 말로 적극 지원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