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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메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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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메시아'다

[주간 프레시안 뷰]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종교를 떠나 우리 사회가 교황의 방한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가 거대한 종교 조직의 지도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몸소 실천한 겸손과 포용의 낮은 자세, 약자와 빈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영적인 진정성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겁니다. 방한 중 교황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족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용산 참사 유가족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두루 만날 예정입니다. 모두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이자 정치가 외면한 낮은 곳입니다. 부디 고통 받는 그들이 교황과의 만남에서 치유를 받고 용기와 희망을 얻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교황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한국인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참사가 벌어진 지 넉 달이 되어가는 지금, 교황의 방한을 지켜보며 그 메시지를 돌아봅니다. 세월호 참사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며, 숱한 반성과 참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연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인지요? 교황은 서울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손을 꼭 잡고 "세월호 가슴 아프다.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위로했습니다. 교황이 남은 일정에서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세월호 참사를 과거지사로 밟고 지나가려던 집권 세력의 생각은 과연 달라질까요?

교황의 방한 의미를 폄훼하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방한 자체가 우리 사회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리라는 기대 또한 하지 않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 약자와 빈자를 보듬는 과제는 우리가 스스로 갈등의 한복판에서 부단하게 부딪혀 바꿔야할 과제니까요. 이들을 위한 정책과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정치를 펼쳐야 할 책임은 단연 위정자들이 통감해야 할 일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화동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청와대

그럼에도 지난 한 주, 우리 정치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는커녕 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당과 야당이 앞다퉈 세월호 출구를 찾아 헤매는 졸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통령이 약속하고 여당과 야당이 호언장담한 진상규명은 착수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출발점인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진통 때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야당의 특검추천권을 포기하는 방안에 합의를 하면서 낭패를 봤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진상조사위 구성에서 야당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성과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오로지 '협상'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철옹성 같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상대로 100%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7.30 재보선 참패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만한 정치적 지렛대가 부러진 현실도 고려했을 겁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협상 전략은 보다 심층적인 정치의 바탕을 간과한 결정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은 여론조사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세월호 피로증'이나 재보선 패배를 이유로 쉽게 내던져 버릴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고귀한 활동이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순교자와 같은 헌신을 요구한다. 이 같은 소명감으로 정치는 실천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참모습이다"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적어도 야당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정치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정치에 관한 교황의 발언이 뜻하는 바가 당장의 손익 계산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성에 있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진정성을 보여 국민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으로부터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박 원내대표의 협상 내용이 당 안팎에서 야유를 받은 까닭은 정치적 현실론 앞에 진정성을 헌신짝처럼 버린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잠깐 싸우는 척하다가 국민들보다 먼저 지쳐 퇴각하던, 매우 익숙한 야당의 모습을 박 원내대표가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이죠.

10년 가까이 거론돼 온 '야당의 위기'는 이런 식으로 곪고 곪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교황이 만나기로 한 세월호 유가족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자신들과 같은 편에서 집권세력에 맞서줄 그 누군가가 절실한 이들입니다. 교황에 앞서 야당이 먼저 손을 내밀고 아픔에 공감했어야 할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문제를 '일부 소수'의 문제로 배척해버린 순간부터 야당의 위기가 태동했던 겁니다.

야당의 재건 역시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합리적인 재건' 자체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모든 논리적 문법을 의심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누구인지, 차기 당권을 누가 잡을 것인지 따위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130석의 의석을 가진 야당은 당력을 집중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관철시켜내는 것으로부터 당 재건의 첫 단추를 끼어야 합니다.

당장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파기 선언으로 박영선 원내대표와 야당이 체면을 구겼지만, 누가 봐도 지금 야당이 체면치레에 연연할 때는 아닙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합의한 임시 안이 의원총회에서 추인 받지 못한 사례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지난 2004년 말 '4대 개혁입법' 논쟁 당시 한나라당 김덕룡,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이룬 합의안이 양당에서 공히 난타당한 전례가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에선 급진파들이,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당시 대표가 이끄는 보수파들이 합의 번복을 이끌었습니다. 그랬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치인들 잘살라고 있는 것이냐"며 여의도 정치를 나무라는 모습은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협상권을 위임받은 당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을 번복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치는 명분 싸움인데, 세월호 특별법 협상 파기 선언으로 박영선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우는 명분이 크게 상처를 입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야당이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는 까닭은 합의가 번복되기까지의 과정 때문입니다. 양당 원내대표가 지난 7일 합의안을 공개한 이후 유가족들이 먼저 반발했습니다. 이후 여론이 들썩였습니다. 이 같은 예상치 못한 민심에 야당 의원들이 하나 둘 이견을 피력하더니 끝내 박영선 원내대표도 이를 수용했습니다. 들끓는 여론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합의 번복을 이끌었다는 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라는 민심이 여전하다는 증좌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남은 문제는 이 같은 민심을 정치권이 어떻게 수렴하느냐입니다. 일각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당초 김 대표가 야당에게 특검 추천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발언을 했던 만큼 그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입니다. 또한 지난해 철도파업 당시 김 대표가 막후 중재력으로 파업 철회를 이끌어내는 수완을 보인 점을 들어 그의 정치력으로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겁니다. 만약 김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의 물꼬를 그런 방향으로 터 준다면 그의 정치적 위상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김무성 해결사론'은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원내대표의 소관사항이라며 한발 물러서 침묵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과 맞서는 무리수를 지금 당장 감행할 이유도, 야권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즐기는 듯한 새누리당의 분위기를 깰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야당이 김무성 대표를 압박하는 것도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합의 번복에 따른 여론의 뭇매를 피해보고자 하는 속내 때문일 겁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전향적인 태도로 임하지 않는 한, 진상규명의 실천 수단이 담보된 세월호 특별법을 관철시키는 길은 험난하고 머나먼 과정이 될 겁니다. 당장 재협상은 없다는 새누리당을 테이블에 끌어내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될 겁니다. 세월호를 빌미로, 야당이 민생을 발목잡고 있다는 보수언론의 공격도 거칠어질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믿을 대상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김무성 대표도 아닌 국민뿐입니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 벌어지는 협소한 정치 갈등의 틀을 넘어 국민과 집권세력의 대립으로 프레임을 크게 전환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야당의 진정성에 달렸습니다. 야당이 정말 국민들을 믿고 세월호 진상규명에 절실하게 매달리면 국민들도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국민이 움직이면 새누리당이나 박 대통령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2차 침몰시키지 않으려면, 이젠 존재 의미가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됐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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