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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이 '이순재 보험 광고'로 뒤덮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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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이 '이순재 보험 광고'로 뒤덮인 이유?

['의료 민영화 바이러스'의 습격 <1>] "병원 가서 화장품만 사오는 날 머지않았다"

철도 민영화가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사회적 의제였다면, 이제 박근혜 정권은 새로운 의제를 장착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의료 민영화! 결국 지난 7월 10일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의료법의 본법 규정을 고치려면 국회 통과가 필요해 피곤해지니, 국무회의 의결만으로도 가능한 시행규칙 개정이란 꼼수를 낸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의료 부문 규제 완화는 박근혜 정부에 절실하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런 꼼수에 맞선 저항도 거세다. 우선 의료 민영화 저지 100만인 서명 운동이 단 며칠 만에 온라인에서만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특히 의료법 시행규칙 입법 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 7월 22일 하루에만 60만 명 넘는 서명이 답지했다. 아울러 민주노총 소속 보건의료노조가 7월 22일부터 닷새 동안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비록 철도노조의 총파업만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의료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저항도 조직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미 상당 부분 무너진 한국 의료 시스템의 공공성

의료 민영화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작년 말 정부가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다. 여기서 정부는 의료법인이 의료사업과 별도로 할 수 있는 부대사업 범위를 늘리고, 이 부대사업을 하기 위한 자법인(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등 대대적인 의료산업 규제 완화 정책을 담았다. 철도 민영화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회사 설립'이 등장하며,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 주장했던 박근혜 정권은 이번에도 "이건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 철도 민영화 문제와 분명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철도사업의 경우 공기업인 코레일이 완전히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레일의 자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 사업을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민영화의 물꼬를 터주는 문제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의료사업의 경우 이미 대학병원·삼성병원·현대아산병원 등 수많은 대형 의료법인들이 들어서 있다. 한국 의료기관 전체에서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은 불과 5%에 불과하다. "누가 운영하는가"를 중심으로 민영화 여부를 판단하자면, 이미 한국의 의료사업은 거의 완벽하게 민영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한국 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은 이미 엄청난 수준으로 허물어져 있다. 아직까지 가족 중에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질환을 겪는 사람 한 명만 생겨도 가계가 휘청거릴 수준이다. 집을 팔거나 전세를 월세로 바꿔야 하고, 대출 빚에 허덕이며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케이블TV 광고는 이미 '이순재 보험'을 비롯한 민간보험 상품과 대부업체가 장악한 상태다. 그나마도 나이가 많거나 병력이 있을 경우에는 민간보험조차 가입이 안 되거나 엄청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광고가 성행할 정도로 민간보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은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수준이 워낙 저열해서, 국민들 상당수가 암 보험을 비롯한 민간보험에 별도로 가입해야만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복지 공약'의 핵심으로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100%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유권자들 역시 이 공약에 상당한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던가(물론 이 공약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 인수위 시절에 이미 폐기되고 말았지만 …).
병이 의심돼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치료비를 내기는커녕 교통비를 돌려주더라는 유럽의 의료 시스템은 물론이고, 대규모로 의료 인력을 양성해 공공의 시스템을 갖춰온 쿠바·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의료 공공성은 밑바닥 수준이다. 공공성의 흔적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린 최악의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미국과 비교할 때에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남아 있는 공공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 민영화에 반대하는 병원 노동자와 철도 노동자 등이 지난 7월 26일 서울역에서 청계광장까지 걷는 '생명과 안전의 물결 행진'을 벌였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나마 남은 마지막 공공성까지 허물어버리려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의료 민영화'라는 의제가 수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뜨겁게 토론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수많은 민간 의료기관들이 자유롭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 안에 그나마 '티끌만큼의 공공성'이 남아 있었는데, 박근혜 정권의 의료정책은 이 마지막 공공성마저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 시스템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공공성의 토대는 다음의 두 가지다.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에 전 국민이 가입하도록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과,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과 반드시 계약을 체결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진료하고 그 진료비를 국가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다. 이를 통해 국가는 민간의료기관이건 공공의료기관이건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 권한을 확보하게 된다.
아울러 의료법인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지금까지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은 연구, 의료인 양성, 장례식장, 식당, 주차장 등 8개 사업으로 엄격히 제한됐다. 또 의료사업이나 부대사업에서 수익이 남는다 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의료기관에 재투자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물론 명문 대학병원과 삼성·현대 등 거대 자본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병원들에 명의들이 몰리고, 그래서 부자 환자들이 그런 병원에서 서비스와 혜택을 받는 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큰 병원에서 장례를 한번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아, 이놈의 병원이 장례식장 사업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긁어모으겠구나 ….
하지만 위에 설명한 제도들로 인해 여전히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타국과 견줘 그나마 어느 정도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시간이 좀 길지언정, 거대 병원들이 서민의 진료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다. 부대사업에서 큰돈을 벌더라도 이윤의 대부분을 다른 호주머니로 빼돌리는 일 역시 쉽지는 않다.
부대사업 확대·자회사 허용이란 미명 하에 추진되는 의료 민영화(영리화)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새로운 의료 정책이 바로 이 '마지막 남은 티끌만큼의 공공성'과 '비영리사업 원칙'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 민영화 내지 의료 영리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정책들을 도입하기에 그런 걸까? 간단히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선 의료법인이 부대사업을 하기 위한 자회사 설립이 자유로워진다. 물론 그동안 대학병원 등 학교법인의 경우에는 자회사 설립을 일부 인정받아 왔지만, 이를 제외하면 자회사 설립은 금지됐다. 자회사 설립 자체가 의료기관에게 금지된 영리 목적 사업의 빗장을 풀어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회사 설립 자유화를 통해 바로 그 빗장을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기관 출연 재산 운용 수익의 70%를 의료사업에 재투자'하도록 안전장치를 하겠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영리 목적'이 도입되는 순간 자본가들이 그 안전장치를 피해갈 수백, 수천 가지 꼼수를 만들어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 박근혜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제시된 '사업유형별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형태(예시)' ⓒ보건복지부
위에 제시된 자료를 보더라도 상황은 분명해진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논란이 벌어질 때, 정부의 변명은 자회사 지분의 51%를 국가 또는 공기업이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 예시에 따르면 의료법인이 부대사업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자산운용사·벤처캐피탈 등 재무적 투자자와의 합작을 기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해외환자 유치 목적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의료법인의 지분은 10%만으로도 충분하다. 재무적 투자자에다 전략적 투자자들까지 모조리 배당 수익을 가져간다. 박근혜 정부가 하겠다는 규제는, 의료법인이 출연한 10% 지분에 대한 배당 중 70%를 의료기관에 재투자하도록 해 공공성을 지키겠다는 것. 갑오(甲午)년 청마(靑馬)가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재벌들이 운영하는 의료법인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 무슨 일을 벌일까? 간단하다. 위의 그림처럼 자회사를 만든 후, 재벌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독점적 거래를 하도록 만든다. 그런 뒤에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서 자주 사용했던 방식으로 거래 내용을 조금만 조작하면, 의료법인의 자회사에서 만들어진 수익을 모조리 다른 계열사로 빼낼 수 있게 된다.
즉,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에 재투자는 벌어지지 않는다. 왜? 의료법인이 설립한 자회사는 명목상 수익이 전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수익은 재벌 계열사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둘째, 의료법인이 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해외환자 유치 사업'을 비롯해 의료기관 임대와 의료기기 구매사업, 의약품 개발과 화장품·건강(보조)식품 사업은 물론이고, 여행업·숙박업·온천목욕업과 체육사업까지 열어준다. 당연히 이들 부대사업에는 그동안 의료법인에 금지됐던 '영리 목적 행위'가 허용된다. '의료 영리화'를 향한 빗장이 풀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설명법은 이렇다. 중국에서 성형수술 때문에 한국을 찾은 '의료 관광객'들이 병원에 입원해 비싼 입원비를 다 내고 있느니 차라리 '메디호텔'과 같은 숙박업을 겸하는 기관을 설립하면 해외환자 유치에 유리하고 그만큼 투자도 활성화되며 따라서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리 목적'이 열리는 순간 이 사업은 어떻게 변할까? 유치하고자 하는 '해외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치료'가 아니라 '시술' 또는 '호화 관광'을 목표로 하는 고객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한 사업을 과연 '의료사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메디호텔들이 들어서는 지역 인근에는 도박사업과 유흥산업 등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산업만 번성할 것임에 틀림없다.

ⓒ프레시안
의약품 개발 자회사, 의사 처방과 무관한가?

게다가 의료기구 사업, 의약품 개발과 화장품·건강(보조)식품 사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했다 치자. 우후죽순처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카톨릭대 성모병원, 현대 아산병원 등도 모두들 신약 개발 자회사를 설립한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의 의사가 서울대병원의 자회사에서 들여온 의료기구나 약을 제쳐두고, 의사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연세대나 카톨릭대, 아산병원 소속 자회사에 따로 접촉해 그쪽 의료기구, 약을 사용할 수 있을까? '의료윤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점잖게 얘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건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 직원들이 이사들 앞에서 대놓고 "LG폰이 훨씬 좋더라"며 사무실에서 자신의 LG폰을 자랑질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몽상적이다.
서울대병원의 자회사에서 행하는 모든 영리 행위(감염 예방한답시고 환자한테 환자복 팔고, 보호자한테 보호자복 팔고, 욕창 생기지 말라고 쿠션 깔게 하고, 수술할 때 좋은 1회용 기구가 나왔으니 이걸로 하자고 하고 등등. 지금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재정을 일부 부담하는 행위)에 적극 동참하는 서울대병원 소속 의사는 '돈만 밝히는 의사'라서 그렇게 하겠는가?
게다가 의료사업의 경우 의사들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산업이다. 쉽게 말하자면, 의사가 이 병에는 이 약 또는 이런 시술이 좋다고 말하는데 "아니오. 다른 박사 논문에 따르면 그 시술보다는 이 시술이, 저 약이 더 좋다오"라고 자기 의견을 말할 환자 또는 보호자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의사가 소속된 의료법인의 자회사 약품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몸이 안 좋아 피부에 이상이 생겼는데, 병원에 갔더니 화장품과 건강식품만 잔뜩 사오는 일이 농담이 아니게 된다.

영리법인 약국 허용 논란, 대형마트 입점 논란과 닮았다
셋째, 의료법인에 '영리 목적' 빗장을 풀면서 다른 빗장들도 풀리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법인 약국' 설립을 허용하도록, 박근혜 정부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명시해 뒀다. 그동안 약사들만 설립할 수 있었던 약국을, 이제 기업들이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는 10여 년 전 헌법재판소가 약사들만 약국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법조항에 대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기업들이 약국을 만들어 대형화하면 고용된 약사들이 3교대를 돌며 24시간 근무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휴일에 문 여는 약국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약사들에 대한 고용 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논리를 대형유통마트가 입점할 때마다 들어왔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주변 상점들이 폭리를 취하던 것이 사라져 물가가 안정되고, 마트의 점원 등으로 대규모 고용이 창출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재래시장이 몰락하고 주변 상권이 죽어갔다.
결국 대형마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 대형마트의 횡포만 커지게 되었다. 대형마트가 창출한 신규 고용 대부분이 계약직 또는 하청 등 비정규직 일자리들이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30분 계약제'의 홈플러스 등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대해 건강 관련 단체들은 '비영리법인'에게만 약국 설립을 허용하는 방식의 해법을 제시해왔다. 그 해법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비전문가들은 알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런 해법을 한사코 반대하는 것으로 보아 정부는 '영리법인'에 약국 설립의 문을 활짝 열어주자는 의도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 프레시안은 노동자 운동 연구공동체 '뿌리'가 내놓은 지난 1일자 칼럼 <괴담이 아니라 현실 : 의료 민영화(영리화) 바이러스>를 3회에 걸쳐 나눠 게재합니다. (☞ 바로 가기 http://blog.daum.net/sociostra/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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