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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상승의 혁명이 임박했다. 그 귀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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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대 상승의 혁명이 임박했다. 그 귀결은?

[시민정치시평] 대한민국 정당정치, 자생적 도약이냐 자멸적 붕괴냐

이른바 '미니 총선'이라며 여야, 언론, 시민사회까지 한껏 판을 키운 7.30 재보궐 선거 다음날 <한겨레> 1면은 "야당, 충격의 참패 … 이정현, 호남서 당선 '대이변'"이라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여기에 본래의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크게 입 벌리고 웃는 이정현 당선자와 암 투병 중이라 병색이 완연하면서도 엷게 미소 짓는 부인 김민경 씨의 사진을 전면 3분의 1 크기로 실었다.

이번 재보선의 의미를 이렇게 단순 명료하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도적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참패가 더 본질적인 의미였고,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아니라 '이정현'이라는 한 인물의 당선이 가장 큰 충격이었던 선거였다.

물론 선거 뒤 언론들의 심층 취재가 다방면으로 이루어지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사건의 인과관계 윤곽은 잡혀가고 있다. 그러면서 전율을 느낄 정도로 분명히 읽혀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 지역주의와 더불어 대한민국 정당정치를 보이지 않게 조율하고 있는 '시민적 정치 문법'이다.

첫째, 대한민국 시민은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거나(=패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거나(=부정), 꼭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의무 방기),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무능), 아니면 할 수도 있는 일을 하지 않은(=무기력) 정당이나 그 후보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지표를 던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 세월호 참사나 자기 주변사를 놓고 차마 하지 못할 막말을 하거나 그런 짓을 한 것과 연관된 후보들은 거의 전원 낙선했다. 따라서 이번 7․30 재보선에서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관련 후보자들 중에서도 막말이나 막짓을 대놓고 해서 자기 선거를 망친 후보는 없었다. 그 내심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각 지역의 여당 후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여 선거전에서 부담스러운 악재를 피해갔다. 세월호 참사를 개인 회사의 잘못 정도로 축소한 심재철 의원의 SNS나 그것을 교통사고로 폄하한 주호영 의원의 막말은 그냥 새누리당 중앙당 차원의 일탈로 치부되었다.

둘째, 대한민국 시민은 유권자로 나설 때 국사(國事)가 걸린 '명분'과 '원칙' 그리고 각 개인의 '사적 이익' 사이를 영악스러울 정도로 재고 나선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시장에서 횡행하는 선거공학들은 상당히 정교한 측면이 있으면서도 바로 이런 맞춤형 정치 측정법에는 뜻밖에 서투르다. 유권자들이 명분을 쫓는다 싶으면 이익에 쏠리고, 이익에 함몰됐다 싶으면 명분으로 후보들을 처단하는 행태 앞에 번번이 오류를 범하곤 한다. 최근 10년간 야당의 선거 성적이 가장 좋았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MB정권의 성장 포퓰리즘이나 천안함 담론 같은 국가주의 담론이 좌중을 제압한 듯했어도 결국 상당수 지역 시민들은 3무1반(무상 급식, 무상 보육, 무상 교육, 반값 등록금)의 실익을 앞세운 야당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박원순 시장이 처음 당선되고 안철수 광풍이 몰아쳤던 2012년 10월 재보궐 선거에서도 반복되었던 현상이다.

셋째, 국가나 지역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구나 꼭 했으면 하지만 설마 할 수 있으랴 하는 일을 해치우거나 약속하는 그런 발군의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한, 시민들의 선택이 아주 후한 경향이 뚜렷하다. 과거 특정 지역에서 나타났던 이른바 진보 계열 정당이나 그 후보들에 대한 의외의 결과들은 이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시민적 정치 문법에서 볼 때 이번 7․30 재보선은 어떻게 읽힐까? 시민적 정치 문법에서 보면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시야에서 가려져 있었던 것이 이번 재보선 결과의 근원이었다는 점이 또렷이 드러난다.

우선 이번 재보선에서 세월호 참사 이래 최대의 '패륜' 요인은 정치판에서 제외돼 있었고, 선거일 직전에는 아예 본인이 단지 하기 휴가가 아니라 정치적 휴가에 들어가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것은 대통령 박근혜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부여잡고, 또 국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고 이후의 조치에 대해 엄중한 처벌과 국가개혁 그리고 진상 조사를 약속했던 대통령 박근혜는 생존 학생들과 유족들이 뙤약볕 아래 그 먼 길을 걷고 단식을 해 병원에 실려 가는데도 여의도에 대고 단 한 마디의 뼈아픈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범죄에 가까운 침묵 속에 치러진 이번 재보선에서 최근 15년간의 역대 선거 중 처음으로 '박근혜 없는 선거'가 치러졌고, 여당 후보 어느 누구도 박근혜를 호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막말과 막짓을 개념 없이 해댄 새누리당 중앙을 구한 것은 누구인가?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정의화 국회의장이다. 유례없이 그는 지난달 12일 이래 국회 안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단식농성장을 허용하였고, 그동안 비록 유가족들과 다소간의 다툼이 없지 않았지만, 여야 협상이 타결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농성 유가족들을 쫓아내지는 않은 것은, 만약 그랬을 경우 각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들이 겪었을 곤경을 여의도 한복판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재보선에서 의무를 방기하거나 무기력하거나 무능했던 정당이나 인물은 누구라고 해야 할까? 가장 한심한 것은 이번 재보선이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의 재보선이라고 해서 그것을 아예 '총선'으로 격상시키는 데 동조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적 무개념이다. 이것은 분명히 언론의 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보선이 총선 수준의 전국적 위상을 가져야 했다면, 지역 후보들이 아니라 중앙당 차원에서 아예 전국을 상대로 그 위상에 걸맞은 비중을 부여했어야지 국가 차원의 결단을 내리라는 부담을 지역 유권자들에게 지울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국을 상대하고 대통령과 '맞짱'을 뜰 수 있는 당대표, 그것도 다른 당은 하나밖에 없는 당대표를 둘씩이나 갖고 있었다. 그 중 홀로그램 속에서 이상하게 운신해 왔던 바로 그 안철수 대표는 분신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사이에 섞여 죽음을 불사하고 단식을 감행하는 배포와 결기를 보여 선거판의 초점을 전국 차원에 맞춰주었어야 했다. 만약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뜻이 있었다면 필요할 때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의지와 순발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 7.30 재보선에서 호남에서 새누리당 출신으로 당선된 이정현 의원 ⓒ연합뉴스

그럼 ‘새누리’에 둘러싸인 가운데서 진짜 ‘새정치’를 보여준 것은 누구인가? 순천, 곡성의 이정현 후보는 제발 안철수가 그랬으면 했던 바로 그런 처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우선 거기서는 '새누리당'이 없었다는 점에서 '새'정치였다. 이정현 후보의 절친인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도 평소 아는 순천, 곡성 지역 유지들을 소문 없이 방문해 "새누리당이란 생각을 하지 말고 사람만 보고 이정현을 한번 밀어 달라"고(<중앙일보> 2014년 8월 1일) 호소했다. 친박 중의 친박이라 불리는 윤 총장의 입장에서는 호남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언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 후보는 '정원 박람회를 유치하겠다', '순천의대를 세우겠다',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고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밑바닥을 긁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현 후보는 대한민국 정당, 특히 보수 정당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전 계층적으로 호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주 발전적이지만 동시에 리스크 요인이 아주 큰 도박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아주 큰 잘못을 그보다 더 큰 기대로 덮어버리는 기대 상승의 혁명을 선동하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서 야당이 선점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을 절취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물론 관권개입 선거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정현 후보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없이 지역에다 엄청난 공약들을 쏟아놓았다. 전형적인 기대 상승 혁명의 전략이고 그 결과에 대해 이 후보는 "유권자들을 하늘처럼 받들고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 호남 정서 대변, 호남 인재 양성을 위한 머슴이 되겠다"면서 자신의 당선이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시민혁명",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이룬,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위대한 혁명"이라고 그 성격을 매겼다. 듣기에 따라서는 25년 전의 6월 시민항쟁 때나 들었음직한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과 대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에다 대학 병원을 유치하겠다는 얘기는 경남 김해, 경기도 양주, 의정부, 용인, 심지어 종합병원이 즐비한 인천에서도 공약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영남에도 지역경제가 다급한 수많은 순천, 곡성들이 있다. "절대 당이 지역에 와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중앙일보> 2014년 8월 1일) 한 이정현 당선자가 과연 새누리당의 효자가 될지 아니면 집안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이상한 채무증서를 잔뜩 싸안고는 싱글벙글 속 모르게 웃으며 돌아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공석이 된 은평 을의 2010년 7․28 재보선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의 이재오 의원은 지금의 이정현 당선자처럼 자전거로 지역구를 누비며 MB와 중앙당이 없는 선거로 이겼지만, 은평 을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정현 후보의 당선이 20개월 시한부가 되지 않을 묘책이 새누리당에서 실현되고, 세월호 특별법이 새누리당이 나서서 통과되는 뜻밖의 대반전이 일어난다면, 그거야말로 '온'누리가 '새'누리가 될 개벽일 것이다.

그런데 불안하다. 선거 승리 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국회에 머물 수 있도록 허가한 자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이 나왔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압박에 정 의장도 결국 두 손 들었다. 지난 4일 의장실에서 진행된 피해자 가족들과의 면담에서 정 의장은 세월호 단식농성단에게 "이번 주까지 국회를 비워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번에는 정치적 세월호가 또 우리 눈앞에서 가라앉을 것 같다. 자생적 도약과 자멸적 붕괴 중 아직 선택의 시간이 있는데, 새누리당은 겨우 재보선 압승이라는 횡재에 취해 세월호에서 혼자 탈출한 선장처럼 자멸적 붕괴로 급변침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라 그 유가족을 버리고 있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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