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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도 좋은데 엄마 한 번 보고 가"

[세월호 100일 르포] 실종자 가족의 하루

"지현아, 잘 잤어? 엄마가 밥 가져왔어."

지현이 어머니는 오늘도 진도 팽목항 부둣가 깃발 아래에 딸 아이의 상을 차렸다. 김, 육포가 가지런히 놓였다. "맛있게 먹어." 밥그릇 가운데 숟가락을 꽂은 어머니는 말 없는 바다를 향해 혼잣말을 던졌다. 바다 깊숙한 어느 곳으로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바람도 물결도 잔잔했다. 물살이 약한 소조기다. 바다가 매일 이렇게 온화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쉽지만 이번 소조기는 다음날인 24일까지다. 결혼 7년 만에 품에 안은 귀한 딸 지현이가 엄마, 아빠의 따뜻한 품을 떠나 차디찬 바닷물 속에 자취를 감춘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다.

"내일이 100일이니까 오늘 나오면 딱 좋네. 지현아, 극락왕생하는 것도 좋은데 엄마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자."

지현이 어머니는 발길을 옮겨 깃발 옆에 마련된 조계종 천막에서 삼배를 올렸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의 하루 일과는 '기다림'으로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단원고등학교 2학년 황지현 학생의 부모님이 팽목항 부둣가에 올려놓은 밥. ⓒ프레시안(최형락)

100일, 지친 실종자 가족들… "이제는 팽목항도 안 나가"

"안녕히 주무셨어요"란 평범한 인사에 돌아오는 답변이 영 곱지 못하다. "안녕히 잤겄어. 세 시간도 못 잤어. 맨날 이러지 뭐."

동생 권재근 씨와 조카 혁규 군을 기다리는 권오복 씨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아침 식사가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밥 한술에 한숨 한 번. 가족들에게 식사는 그저 약을 삼키기 위해 위에 니스칠하는 것에 불과하다. 억지로 입에 욱여넣은 밥이 성히 넘어갈 리 없다. 가족들은 더부룩한 배를 살살 문지르며 100일째 그들이 기거하고 있는 실내체육관 안으로 들어간다.

밥통에 아직도 밥이 한 무더기 남아있지만, 식사 배식을 하는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은 정리를 시작한다. '더 올 사람도 없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방문객이 줄어 식사 준비량을 줄였지만 그래도 밥은 늘 남는다.

실내체육관 내부 역시 황량하다. 1층 바닥에 침구 매트가 드문드문 깔려 있다. 그나마도 주인 있는 매트는 20여 개밖에 없다. 사고 첫날 500여 명이 북적북적했던 데 비하면 지금은 텅 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도 실내체육관 건물 앞에 마련된 임시 식당. ⓒ프레시안(최형락)

팽목항에서 열리는 오후 다섯 시 사고대책본부 수색 현황 브리핑이 끝나고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체육관에는 적막감이 맴돈다. 사실 브리핑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 18일 3층 주방에서 세월호 조리사 고(故) 이묘희 씨가 발견된 이후 닷새째 수색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처음엔 매일 팽목항 가서 부두에도 나가보고, 브리핑도 들었는데 속 터져서 이제 체육관에만 있어."

안산 단원고등학교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 씨는 팽목항에 나가보는 대신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아버지를 따라 임용 고시를 준비하는 딸과 아버지 얼굴을 똑 닮은 대학생 아들 사진이 셀 수도 없이 유 씨의 손끝에 스쳐 지나갔다. 딸의 졸업식 사진, 'A'로 도배된 아들 성적표 사진을 보면서 유 씨는 자녀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사진을 넘기던 유 씨의 손이 잠시 멈췄다.

"이게 우리 남편, 양승진 선생님. 아들이랑 많이 닮았지? 언제쯤이나 올라오려나."

단원고 한 실종자 학생의 이모는 요새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했다. 사고 지점에서부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시신이 발견된 뒤 불안함이 더해진 모양이었다.

"전 요새 애들이 바다에 떠내려가는 꿈을 꿔요. 꼭 찾을 수 있고 다만 누가 일찍 나오느냐 늦게 나오느냐 차이라고 다들 생각하긴 하지만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생각하면 무섭거든요. 근데 이제 10명 남았잖아요. 그래서 이 세월호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아직 저희한테는 현재진행형인데, 언제 집에 갈지 모르는데…."

망각과 오해와 싸우는 가족들… "술 없인 잠 못 자"

사고 100일. 이제 가족들이 기다리는 것은 산 사람이 아닌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는 애달픔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에게 기다림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잊혀짐'이다.

적막을 깨고 체육관 무대 위 왼쪽 스크린에서 전날 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뉴스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경찰에 움직임이 포착된 지난 5월 25일 이후 행적은 어떠했는가'…. 유 전 회장 얘기로 전국이 들썩이던 이 시간, 한 가족이 감흥 없는 표정으로 뉴스가 나오는 왼쪽 화면과 사고 부근 바다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오른쪽 화면을 번갈아 응시했다.

"구조 현황이나 더 잘 비춰줄 것이지…. 저게 본질이 아니잖아요. 내일이 100일인데 유병언 얘기로 그냥 다 묻히게 생겼어요. 저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몰라. 어휴."

▲진도 실내체육관 무대 왼쪽 스크린을 통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보도가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싸늘한 여론과 오해도 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늦은 밤, 체육관 구석에서 모인 가족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며칠 전에 머리 자르러 갔는데, TV에서 뉴스가 나오는 거야. 그거 보면서 미용사들이 '법안 통과되면 저 사람들 몇십 억 받겠지?' 이런 얘기 하는데, 너무 화딱지가 나는 거야. 자기가 안 당해봤다고 그러는 거겠지"

"저도요. '못 사는 동네인데 애들 때문에 강남 부자들 됐다'고 말하는 얘기 들으면 진짜 화나요. 여기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는데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가족들은 술 없인 잠 들기가 쉽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과 이곳 실내체육관에서 동고동락하며 실종자 가족들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맡은 대한변호사협회 배의철 변호사는 "가족들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몰려있다는 얘기다.

"저희는 일어나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합니다. 실제로 혼자 산에 올라가시는 경우도 있었고, 유가족분 한 명은 술을 드시고 없어져서 찾았더니 진도대교에 있었던 때도 있었어요."

23일 현재 남은 실종자는 10명. 그들의 가족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과 더불어 바깥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 속에서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다.

살아 있는 자의 슬픔… 가족을 잃고 얻은 가족으로 치유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슬픔과 고독 속에서도 잘 살아남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운명이자 의무다. 유 씨는 최근 체육관 주변에서 스스로 '힐링'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유 씨는 이날 체육관 뒷산에 산책도 나가고, 인근 문화회관에서 방송사 앵커 강연도 들었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으면서 빚더미에 올라서 죽을 고비까지 갔던 양반인데, 그분이 얘기하는 게 인생은 내 안에 늘 선택권이 있다는 거야. 틀 안에 갇혀있지 말고 문을 박차고 나가라더라고. 이제 내가 혼자 됐잖아. 강의 들으면서 내가 비록 나이는 50대 중반이지만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걸 잘 생각을 하게 됐어. 여기 근처에 여성회관도 두어 달 있으면 연다는데 거기서 장구라도 배워볼까? 내가 또 한 리듬 하거든."

▲세월호 참사 실종자인 단원고등학교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 씨. ⓒ프레시안(최형락)

유 씨의 마음을 다독이는 치유제가 또 있다. 체육관에서 사귄 둘도 없는 벗, 단원고 정성신 교사다. 정 교사는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홀로 남은 유 씨에게 매일 웃음을 선사해주고 있다. 둘은 얼마 전 함께 진도 첨찰산 등산에 갔다가 찍은 엽기 사진을 보며 여고생처럼 키득거렸다.

"여기 와서 처음 알았지. 그런데 바로 친해졌어. 나랑 잘 맞아. 정 선생, 얼마나 웃긴가 몰라."

한참을 웃던 정 교사가 유 씨를 몸이 부서져라 꼭 껴안는다.

"상처 치유하는 데는 사람 체온만 한 게 없거든요. 그래서 다들 사랑을 하나 봐요. 내 님은 어딨으려나. 이러면 내가 다 늙어서 주접인가?(웃음)"

하나둘 떠나고 넓은 체육관에 덩그마니 남은 가족들은 체온을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불청객이었던 기자들마저도 기껍게 여기는 듯했다. 처음엔 기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던 권 씨는 "기자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귀찮게 해쌌더만, 이제는 그렇지는 않어. 내가 오늘만 인터뷰를 다섯 번을 했어.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지 않겄어?"라고 말했다.

유 씨는 기자가 체육관에 머무는 동안 시종 챙겨줬다. 유 씨를 졸졸거리며 따라다니는 기자를 본 다른 가족들이 "딸이여?"하고 묻자, 유 씨는 웃으며 말한다. "응. 내 꼬랑지, 우리 딸."

유 씨에겐 기자 '딸내미'가 많았다. 며칠 전 다녀간 다른 '딸내미'가 쓴 기사를 함께 읽었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유 씨가 A4용지 4장 분량의 긴 기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 기사를 읽었다.

▲진도 실내체육관 내부 광경. 듬성듬성 침구 매트가 깔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진도 실내체육관 공식 '맏아들'은 배 변호사다. 공식적으로는 실종자 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이지만, 그가 자청한 역할은 좀 더 방대하다. 가족들의 민원을 들어주고 건강을 돌보는 세세한 일까지도 모두 다 그의 몫이다. 그는 얼마 전 국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틀간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배 변호사가 단식했다는 소식에 유 씨는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단식한다고 하더니 살이 쏙 빠져가지고 왔어. 서울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었지."
"나는 매일 똑같은 것 같은데 살 빠지는 걸 알아채? 와, 이건 진짜 엄마 마음인데."

때로는 가족끼리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다. 수색 작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세월호 특별법 내용이 어떻게 돼야 할지를 두고 가족들 모두 조금씩은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맞지 않다고 서로를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제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요" "그려 그려 내가 알지. 근데 조금만 말을 줄이는 게 어뗘" 하면서 둥글게 얘기한다.

"우리 말고 누가 우리를 이해하겄어. 이제 열 명 남았잖아요.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이제 좀 있으면 형제보다도 더 끈끈할 판이여."

가족을 잃고 얻은 가족, 끝 모르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은 진도에 모인 서로의 체온이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200일에는 부디 각자 집에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면서 슬픈 100일을 맞이했다.

▲실종자 이름이 새겨진 깃발이 진도 팽목항 부둣가에 꽂혀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팽목항 부둣가에 놓인 음료캔 표면 색깔이 빨간색에서 어느새 황금빛으로 변했다. 사고 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를 짐작케 한다. 캔 아래에는 '노란 리본 가져가세요'라는 메모가 놓여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현철아 빨리와라 기다린다'고 적힌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22일 모처럼 해가 나와 진도체육관 자원봉사자들이 볕 아래 빨래를 널고 있다. 체육관에서 하루 건조되는 빨래는 500여 장에 이른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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