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내 배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민구 신임 국방장관이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서 사드를 한반도에 전개해서 배치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억제하는 데, 한반도의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한 장관은 20일 KBS의 한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밝혔고, 다음날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정부가 정식으로 요청하면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관진 전 국방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도 6월 1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주한미군이 (사드를)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6월 초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최근 본국에 요청했다"고 밝힌 이후 한국군 수뇌부가 잇따라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 국방부의 입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들이 있다. 우선 미국 MD 체제의 핵심 무기인 사드 배치를 양해해주면서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만약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이는 미국 영토 이외 지역으로는 최초가 된다. 그만큼 한국은 미국 주도의 MD에 편입되는 대표적인 국가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방부는 "미국이 사드 배치를 요청한 바도 없고, 한국 정부가 검토한 바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이 아직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이 먼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 된다. 더구나 국방부가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정부 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긍정적인 검토가 사실상 끝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22일 자 <중앙일보>가 "사실상 시기 조율만 남았을 뿐 도입에 대해선 정부에서도 이견이 없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말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전작권 재연기의 선물?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왜 사드 배치에 이토록 쉽게 ‘예스(Yes)'를 해주는 걸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만큼 MD 능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도 엿보인다. 바로 MD 참여와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를 맞바꾸려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전작권 연기에 대한 선물로 은밀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미국 MD에 편입되는 길을 선택해왔다.
작년 한미안보연례회의(SCM)와 올해 두 차례에 걸친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재연기에 공감대를 형성한 양국 정부는 올해 10월 SCM 회의에서 연기 시기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미국은 전작권 재연기의 "조건과 능력"을 강조하고 있고, 그 조건과 능력의 핵심은 MD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한미일 3자 군사정보보호 양해각서(MOU) 추진과 패트리엇 최신형인 PAC-3 도입 결정에 이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까지 양해해주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요구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방부의 주장대로 사드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고, 한중관계에도 문제가 없게 될까? 필자의 예상으로는 미국이 사드를 배치한다면 주한미군의 핵심 전력이 모여 있는 오산·평택권이나 군산공군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방어에는 별로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사드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 기지 방어용으로 이용될 것이고, 또한 요격 범위도 수도권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저고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드의 요격 고도는 40-150km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의 스커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집중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볼 때, 한미 양국의 MD를 무력화하기 위한 무력시위일 공산이 크다.
왜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냐고?
다음으로 한중관계로 넘어가 보자. 중국 외교부는 이미 사드 배치 움직임을 겨냥해 "한반도에 MD를 배치하는 것은 지역 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이롭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킬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놨다.
중국이 MD에 반대하는 당면한 이유는 북핵 해결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MD는 근본적으로 군비경쟁과 전략적 불신을 격화시킨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는 국제정치의 진리에 해당된다. 북한 역시 MD를 맹비난하면서 "핵 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의 우려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MD가 중국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전략을 자신에 대한 포위·봉쇄 정책으로,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를 그 구체적인 양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 심장부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면서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오산으로 재배치하려 한다. 동북아 분쟁 발생 시 개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말이다. 동시에 이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MD를 배치하려고 한다.
중국은 양안 사태든, 일본과의 영토 분쟁이든,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는 것을 사활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그런데 중국의 대미 억제 전략은 MD가 있을 때하고 없을 때하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이 한국의 MD 편입을 좌시하지 않으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권 국가인 우리가 왜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푸념한다. 그러나 국가 간에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주권 행사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정치의 기본에 해당된다. 더구나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과 MD는 동북아 유사시 대중국용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발진기지로 이용되면, 한국은 중국에 국제법적으로 군사적 적대 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 미·중 간에 무력충돌 시 한국이 미국의 군사기지로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중국으로선 용납하기 힘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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