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을 지켜보며 필자는 마치 한 편의 외교전(外交戰)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중국과 일본의 충돌, 일본과 북한의 짝짓기, 미국의 중국 견제와 이를 틈탄 일본의 야욕…각자의 셈법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정글 외교'의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을 전해왔다. 시 주석 방한 기간 중국이 북한인에 대한 대대적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대북(對北) 무상 지원을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김정은 방중'에 앞선 '시진핑 방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북한의 후견국' 중국의 국가주석이 취임 이후 북한에 앞서 남한을 먼저 방문한다는 사실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중국의 국가주석은 '혈맹'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남한보다 먼저 해왔는데 이번에 그 관행을 깬 것이다. 북한은 '시진핑 방한'에 앞서 '김정은 방중'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지난해 11월과 지난 2월 두 차례에 걸쳐 <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기고를 통해 '김정은 방중'과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두 기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북한은 2014년 상반기(실제로는 하반기 초)에 있을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앞서 북-중 정상회담을 먼저 성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북-중 양측은 '김정은 방중'에 합의했고, 김 제1비서는 비행기를 타고 작년 말 방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대표적인 친중국파 인사인 장성택을 처형하자 이에 격분한 중국이 '김정은 방중'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김정은 방중'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향한 시진핑 주석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시 주석이 북한에 앞서 남한을 먼저 찾는 것에 대해 국내에서는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더 중시한 것" 이라든가 "중국 대북 정책의 변화를 보여준 신호" 라는 해석이 잇달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러한 해석을 경계했다. '시진핑 방한'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남북 관계를 똑같이 중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진핑 방한'을 노린 북한과 일본의 액션
'시진핑 방한'을 앞두고 일본 아베 정권은 연일 우려스러운 행보를 이어갔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훼손하는 시도를 한 데 이어, 전쟁 가능 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집단자위권의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아베 정권의 이러한 행보는 일본 내부에서도 극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북한과 전례 없이 가까워지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리고 북한은 '시진핑 방한'을 앞두고 마치 보란 듯이 무력 과시를 했다. 시 주석의 방한 하루 전까지 일주일 동안 단거리 발사체와 탄도 미사일 등 발사체를 잇달아 세 차례나 발사했다.
'시진핑 방한' 직전 이뤄진 이러한 북한과 일본의 움직임 때문에 많은 언론들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크게 두 가지 이슈, 즉 일본 우경화 문제와 북한 문제가 대표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한중 양국 모두 일본 침략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대일(對日)경고 메시지가 분명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회담 성명에서 '북한 핵 개발 반대'라며 북한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표현이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과 '한반도 핵 개발 반대'라는 한 발짝 물러선 표현이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서로 엇갈렸다.
방한 첫날인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청와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핵 개발을 확고히 반대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 핵 개발 반대'가 아니라 '한반도 핵 개발 반대'라는 표현으로 결정한 것은 필자처럼 중국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북한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를 원치 않는 중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다. 다만 '확고히'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지난해 정상회담 때보다 그 수위를 좀 더 높였다.
그런데 한중 정상회담 공동 성명에서는 일본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대목이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이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이에 침묵하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한중 양국 국민들의 실망을 살 만한 것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한중 공동성명에서 일본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중국 언론에 먼저 보도된 시진핑의 '항일 기념행사' 제안
'시진핑 방한' 첫날인 7월 3일 중국 현지 시각 저녁 7시. 중국의 국영 방송인 CCTV의 종합 뉴스인 <신원롄보>는 시진핑 방한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CCTV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향후 양측은 몇 가지 주요 분야에서 노력해야 한다."면서 4가지 분야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4가지 분야는 첫째는 정치 안보 협력 내실화, 둘째는 경제․무역의 호혜협력 확대, 셋째는 인문교류 활성화, 넷째는 지역 및 국제 사안 협력 심화였다. 그런데 네 번째 분야가 주목됐다. 구체적 표현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설립, 아태 자유무역지대 건설 추진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내년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인 해이자, 중국의 항일 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인 바, 양측은 기념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미국의 입김으로 움직인다는 판단 아래 자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ADB의 주요 참여 아시아 국가들이 AIIB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본은 제외했다. 미국은 중국 주도의 AIIB 창설에 당연히 반대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한국이 AIIB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이 고민되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시 주석은 내년이 한국과 중국 모두 항일 승리 7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들며 공동 행사 제안을 제안했다. 이 대목은 우리와 이해가 일치하는 대목이었는데 시 주석 방한 첫날 우리 측의 정상회담 관련 발표에서는 빠져 있었다. CCTV 보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 또한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 언론이 중국 언론 매체의 보도를 인용 보도하면서 시 주석의 발언 내용이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시진핑 방한' 이틀째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한중 정상은 비공식 특별 오찬 자리에서 일본에 대한 강경 비판 발언을 내놓았다. 두 정상은 일본이 집단자위권의 헌법해석을 바꾸고, 고노담화를 훼손하는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이 제안한 내년 '항일' 공동 행사에 대해 "특별한 해인만큼 이를 잘 기념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 정상은 첫날 공식 회담과 성명에서는 일본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둘째 날 비공식 회동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한껏 높이며 한중 양국의 대일(對日)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한미일 3각 공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우리 정부의 고민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방한 기간 북-일 밀월 과시
시 주석 방한 첫날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약속한 제재 해제를 단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시 주석 방한 이틀째인 7월 4일 북한은 일본인 납치 문제 조사에 들어갔고, 일본은 그동안 독자적으로 진행해온 대북 제재의 일부를 해제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납북 피해자 가족을 면담하고 "지금의 국제 정세는 북한과의 납치문제 해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북한이 납치 재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상호 긴밀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전용회선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평안남도 남포시에 사는 일본 출신 할머니에게 100세 생일상을 선물했다. 북한과 일본 상황에 밝은 필자의 취재원은 "북한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아베도 곧 방북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북-일이 밀월 관계를 보이던 지난 4일, 즉 시 주석 방한 이틀째 북-중 접경 지역에서는 전례 없는 특이 동향이 포착됐다.
"中, '탈북자 단속 · 대북 무상 지원 축소' 지시"
갑자기 강도 높은 검문검색이 시작된 것이다. 주요 대상은 북한인이다.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이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4일부터 북-중 접경 지역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던 강도 높은 검문검색이 시작됐다. 중국의 타지에서 접경 도시로 출입하는 차량과 인원에 대한 검문검색, 그리고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국경 지역에서의 검문검색이다. 양쪽으로 공안 요원이 즐비하게 선 채로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주요 대상은 북한인이다. 이런 검문검색이 며칠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불법 체류 북한인 또는 탈북자를 색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또 다른 취재원은 비슷한 시기 중국 정부로부터 대북(對北) 무상조달(無償調達)을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지시 내용에는 다양한 대북 무상조달 항목이 명시돼 있다고 한다. 이 취재원은 그러면서 이달 초 일부 언론이 전한 '북한의 무역일꾼 전원 소환'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필자의 취재원이 전한 '중국의 대북 압박'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베이징 특파원 기간 한 중국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는 정도는 한국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일본 아베 정권은 중국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이에 분노한 중국은 일반 국민과 언론 매체는 물론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지도부까지 총출동해 항일(抗日)을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일본과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모습이 '북한의 후견국' 중국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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