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전형적인 화전 양면 전략을 들고 나왔다. 북한은 6월 26일 신형 300㎜ 방사포로 추정되는 발사체 세 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29일에는 스커드 계열로 알려진 사거리 500㎞의 탄도미사일 2기가 뒤를 이었다. 북한 매체들은 이 두 가지 훈련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30일에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남조선당국에 보내는 특별제안'을 발표했다. 박정희-김일성 시대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발표 42주년과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김일성 주석의 최종서명 20주년이 되는 7월 7일을 맞이해 남북관계를 확 바꿔보자는 것이다.
북한의 '특별제안'은 7.4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제시되었다. 먼저, 자주의 원칙에 따라 7월 4일 0시부터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둘째, 평화의 원칙에 입각해 "모든 군사적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하자면서, 구체적으로 서해 5도 인근에서의 군사 훈련 및 8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의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하여 북남사이에 활발하게 벌어질 여러 가지 교류와 접촉의 사전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이는 아시안 게임 참가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연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돼 그 귀추가 주목된다.
셋째,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화해와 협력, 민족번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해나가자"는 것이다. 특히 "개성공업지구에서도 통행, 통관, 통신의 3통 질서를 불순하게 리용하려고 획책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혀, 이 문제를 둘러싼 남북 양측의 입장 차이가 만만치 않음을 내비쳤다.
이처럼 북한이 로켓 발사에서 특별제안으로 하루 만에 방향을 선회한 것은 고도로 계획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로켓 발사를 직접 관장하고,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방위원회에서 특별제안을 발표한 게 눈에 띈다. 또한 로켓 발사로 긴장을 조성하고는 바로 특별제안을 발표해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인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이러한 양면 전술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코앞에 두고 나왔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그의 방한을 앞두고 로켓을 쏜 것은 중국을 자극할 소지가 크다. 반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 특별제안을 한 것은 시진핑이 남북한에 요구해온 것과 일치한다. 특히 중국은 올해 들어 이례적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자제를 공개/비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북·중 양국이 '군사훈련을 취소하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관건은 박근혜 정부의 반응이다. '너부터 잘해라'거나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하면서 무시할 수도 있다. 이산가족 상봉 등 남측이 중시하는 의제를 가지고 역제안할 수도 있다. 대승적으로 '만나서 얘기해보자'며 남북고위급 접촉을 제안할 수도 있다.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나쁜 선택'이 아니라 '좋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정부가 북한의 제의를 일축하고 대북 강경 자세를 고수한다면, 북한의 향후 행보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국면에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강행되면, 북한은 아시안 게임에 선수단 파견 대신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정부가 북한의 특별제의를 '논의해보자'며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다면, 남북관계의 반전은 가능해질 수 있다. 대화를 통해 비방·중상 중단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해보고, 군사적 적대 행위 중단에서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월선과 NLL 이남으로의 포탄 훈련 중단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대 변수로 등장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중단, 내지 그 규모와 일정을 대폭 축소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훈련 중단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제안해볼 수 있다. 지금부터 남북관계를 잘 풀어간다면, 조간만 남북정상회담도 추진해볼 수 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특별제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고위급 접촉에 나서는 게 북한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때문에 대화에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북한 강경파의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지금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때'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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