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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북한 붕괴'의 희망, 그 얄팍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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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북한 붕괴'의 희망, 그 얄팍한 민낯

[정욱식 칼럼] ‘도박’에 현혹되지 말자

'북한은 곧 망할 것이고, 북한이 붕괴되어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되면 모두에게 이로운 걸까?'

김일성 주석 사후 20년째 반복되어온 질문이자 논쟁거리다. 이에 대해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내고 컬럼비아 대학 동아시아 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수미 테리(Sue Mi Terry)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포린어페어즈> 7/8월호 기고문을 통해서다. 이 글의 요약본은 <뉴욕타임스> 16일 자 칼럼으로도 게재됐다.

그는 통일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 때문에 "통일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흡수통일은 남한에 재앙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 중국, 일본에도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테리 연구위원은 한반도 통일에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한 체제 전환을 거쳐 통일이 이뤄지는 '연착륙' 모델, 북한이 무너지고 남한이 흡수통일하는 '경착륙' 모델, 전쟁에 의한 통일 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연착륙 통일은 가장 가능성이 낮고", "무력통일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기" 때문에 "경착륙 통일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남한의 흡수통일 시 10년간 8000억 달러에서 2조 달러의 비용 부담이 있지만, 통일 이익은 비용을 훨씬 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처럼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낸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전제가 따른다. "북한 정권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북한 군대를 평화적으로 해체한다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에도 안보적,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해 한국과 주변국들은 대북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의 도발 시 한국은 강력히 보복해야 하며, 한미간의 통일 비전을 만들어 이를 일본과 공유하고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통일이 이뤄지면 한국은 "아시아의 독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테리 연구위원의 글이 <포린어페어지>와 <뉴욕타임스> 등 국제적 영향력을 갖춘 매체에 실렸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이다. 더 중요하게는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 그룹과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만 반문하고 싶다. 첫째는 '어떻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100만 대군을 평화롭게 해체할 수 있느냐'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테리를 포함해 그 어떤 사람도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여 묻는다. 강압적인 흡수통일을 추구하려고 할 때,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도 커진다는 우려는 근거 없는 비관론에 지나지 않을까?

둘째는 '대북 지원을 중단하면서(실제로는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어떻게 북한 주민과 군대의 마음을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대북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의 생명줄을 옥죌수록 북한 사람들의 반감은 커진다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가정이 아닐까?

셋째는 '무슨 수로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한미일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고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느냐'이다. 나토의 동진과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봉쇄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것만 놓고 보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 커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있다. '북한과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휴전선을 사이에 둔 한국은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북한 붕괴시키기 게임'이 해볼 만한 도박일 수 있다. 미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력을 놓고 볼 때, 판돈이 그리 크지 않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 도박에 중독되면 재산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100만 대군과 더불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갖고 있다. 1만 개 안팎의 지하 터널로 전국토가 요새화되어 있고 영토의 80%가 산악지형이다. 그리고 중국 및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붕괴시키고 안정화 작전을 펼쳐 통일국가를 이룬다는 것은 가당키나 한 것일까?

미국에도 이건 결코 좋은 게임이 아니다. 한국보다 위험과 피해의 크기는 덜하겠지만, 미국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에 그렸던 장밋빛 미래와 오늘날 참담한 실상 사이를 비교해보면 뼈아픈 교훈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보다 손쉬운 상대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더구나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이미 주한미군 기지를 넘어 주일미군 기지까지 다다르고 있고, 조만간 미국 본토까지 뻗칠 수 있다. 여기에 핵탄두가 장착될 가능성도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질 것이다.

그 전에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언제, 어떻게? 이런 막연함을 믿고 북한을 옥죌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강해질 것이다. 하여 망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협상이라는 진짜 게임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협상다운 협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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