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정의'의 해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이 불러온 열풍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정의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입에 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2012년 대선과 최근 6.4지방선거까지 치르고 난 뒤, 우리들은 조금 다른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의와, '저들'이 이야기하는 정의는 왜 이렇게 다를까? "이것이 옳다"라고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도 상대방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견을 꺾지 못하는 것 같은 좌절감 때문에, 이제는 그저 분열과 양극화 상태를 아예 기본 전제 조건으로 깔고 들어가고 싶은 유혹마저 생긴다.
<프레시안>과 웅진지식하우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마련한 <바른 마음> 출간 기념 공개 좌담회 '이 시대 한국사회에 필요한 바른 마음이란 무엇인가'에는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이자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오래된 연장통> 저자),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닥치고 정치><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등)가 패널로 참석했고, <논객시대> 저자 노정태가 사회자로 나섰다. <프레시안>은 지난 16일 저녁 가톨릭 청년회관에서 열린 이 공개 좌담회에서 오간 열띤 토론을 3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진보와 보수가 서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한국 상황에서, <바른 마음>은 상당히 논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개인적 판단과 집단적 행동을 결정하는 매우 강력한 요인으로 '도덕'을 제시한다. '착한 성격' 혹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한 차원" 정도로 받아들여지던 '도덕'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권력의 향방을 결정짓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매우 직관적이며 감정적이고 주변 환경에 쉽게 좌우되는 도덕에는 다섯 가지 기반이 존재한다. 배려와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이 그것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 있어 양측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양쪽이 중시하는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진보는 배려와 공평성을 가장 중시하는 반면, 보수는 다섯 가지 기반 모두를 골고루 활용하며 특히 충성심, 권위 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사회의 정치사에 고착된 연구 결과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이 같은 분류는 왜 진보가 보수를 '꼰대, 꼴통'이라고 여기는 한편 보수는 진보를 '부도덕하고 버릇 없다'라고 매도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사회자 노정태가 "감정적‧직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다음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메커니즘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분"으로 소개한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가 <바른 마음>을 읽으며 느낀 소감은 각별한 듯 했다. 노 전 대표는 미국 정치 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타개 방향을 제시하려는 체계적인 가설을 다룬 이 책을 "쉽게 얘기하면 '왜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적인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라고 정의내렸다. "문제는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가 우리의 고민이다." 노 전 대표는 하이트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다투는 건 생산적인 논쟁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 가설을 우리가 궁금해하는 현실에 대입하고 개선 여지에 관해 논의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는 무엇보다 "진보주의자가 무시하는 가치이지만 보수주의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도덕, 그걸 묵살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자, 다를 수 있다는 걸 일단 인정하자"는 전제로 출발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웠던 사건, 6.4지방선거의 결과를 두고 현재 한국 진보/보수진영의 현주소를 돌이켜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사회자 노정태는 "가령 박원순 서울 시장의 재선을 본다면, 유세차를 사용하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전략을 택했다. 이것은 고도의 지적 작업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양쪽 모두에 해당할 텐데"라고 말문을 열며, 지난 지방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표심을 복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를 통해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를 일찌감치 접한 바 있는 전중환 교수는 "투표는 도덕의 차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좋은 정책을 만들었으니 우리를 찍으면 실질적인 이득을 본다, 라고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에서 무조건 공화당, 한국에서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진보 정치가 '비도덕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중시하는 공동체 차원의 도덕 입장에서 생래적인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마음의 국면에 대해 흥미로운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내놓았다. "쉬는 날 굳이 집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줄서서 투표한다는 행위" 자체가 대단히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투표하는 이유는 "그 비용으로 가능해지는 처벌" 때문이라고 했다. 즉 "남에게 더 큰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면 나는 그보다 적은 비용을 기꺼이 감수한다", 결국 나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중환 교수는 조너선 하이트의 결론이, 집단적인 충성심과 고귀함을 맹신하거나 채택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진보 진영이 기존의 배려와 공정의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는 게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가치를 잘 파악하여 '코끼리'로 은유되는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기수'로 은유되는 이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맥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이번 선거를 '승리'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의 야권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 이후 계속 패배만 거듭했다는 걸 인정하자고 했다. 그는 전중환 교수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하이트가 제시하는 해법을 받아들이며, 보수주의자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눈여겨보면서 전략을 짜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대표적으로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은 박근혜, 대구시장은 김부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것은, 하이트적인 해법을 간접적으로 수용했다고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바른 마음>의 다섯 가지 도덕적 측면을 한국식으로 재편성하여 "우리와 상대방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자"고 주문했다. "저쪽은 나쁜 놈, 우리는 늘 선하고 억울한 편, 이 이분법에서 벗어나자는 게 <바른 마음>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맞닥뜨리는 심리적 벽은 어쩔 수 없다. 문창극 총리 후보 등이 보여주는 한국 보수의 맨얼굴의 일면은 그야말로 감정적인 혐오감을 즉각 불러일으키지 않던가. 그들의 막무가내 행동을 지켜보면서 과연 대화가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노 전 대표 역시 "<바른 마음>에서 말하는 것 같은, 소위 '제대로 된 보수'가 한국에 있는가라는 의문은 제기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좀 더 '한국적인' 상황에 대한 논의가 다음 회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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