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차 대전의 쓰라린 창상(創傷)이 나은 건지 일본에서는 또다시 우익분자들이 창궐(猖獗)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등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행태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거침없는 언사로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정도다. 중국은 또 최근에 일본제국주의(이하 일제)의 대표적 추악 행위인 위안부(慰安婦)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여 일본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위안부 유네스코 등재 신청 이전에, 우리나라도 지난 3월에 같은 내용의 유네스코 등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대응인지 중국의 이번 등재 신청에 우리 정부도 중국과 공조(共助)하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이를 두고 일본은 한중의 '대일 공세의 일환'이라며, 중국 외교부에 항의하고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한 한중의 일치하는 역사인식
일제의 식민통치에 의한 우리의 수난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중국 역시 일제의 침략으로 30만 명이 몰살당한 남경대학살, 십여 년에 걸친 전 국토의 유린과 3천여만 명의 희생 등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미화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대표적인 일제의 피해국 한국과 중국이 일제의 만행에 대해 완전하게 같은 역사인식을 하고, 공분(公憤)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 중국의 위안부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등재 시도와 한국의 공조 가능성은 일본의 이러한 몰지각한 행위에 대해 드디어 한국이 본격적으로 중국과 힘을 모아 '연맹(聯盟)'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관하여 중국은 이전부터 수차례 한국에 '러브 콜'을 보내왔다. 만주 지역에서 중국 항일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우리 독립투사들의 기념관 건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하얼빈(哈尔滨)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설립되어 많은 한국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서울 남산에도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이 기념관의 건립과 관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2009년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건립에 중국 하얼빈의 사업가 장센윈(蒋贤云)이 3000만 원을 선뜻 기부했던 것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들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의 영웅"이라며 기념관 설립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예들이 존재한다.
남경대'허'살(南京大虛殺)이라고 부르는 일본인들
한국과 중국이 공고히 연맹해 과거사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의 우익들이 자신들의 과거 악행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과오를 미화하며, 갈수록 많은 일본인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동안 숨죽이며 살아오던 일제 앞잡이들의 후손들이다. 우리 민초들이 피땀 흘려 민주와 자유를 일궈내,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자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망언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와 같은 '뉴라이트(New Right)' 집단이 활개 치고 다닌다는 것에 갑작스레 민주와 자유에 대해 회의감마저 든다. 이런 왜곡되고 친일적인 역사관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한중관계는 물론 우리의 미래도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경험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중국 여행 중에 한 일본인과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짧은 일본어와 함께 필담(筆談)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필자가 난징(南京)에서 유학 중이라 하니까 뜬금없이 한자로 '南京大虛殺'이라고 쓰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학살(虐殺)'의 '虐(사나울 학)'을 모양이 비슷한 '虛(빌 허)'로 잘못 쓴 것이었다. 그래서 잘못 쓰지 않았느냐고 얘기해주었더니 자신은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이 중국이 날조한 '허구(虛構)'라며 '남경대허살(南京大虛殺)'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치가 떨렸다.
물론 이 한 일본인의 생각이 모든 일본인들이 대변한다고 여기는 것은 분명 '과대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소위 공인(公人)이라는 정치인, 연예인 등이 매스미디어에서 내뱉는 망언들을 보면 분명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경화를 통해 내부의 불만이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내부의 단결을 이루고, '아베노믹스(Abenomix)' 등과 같은 일본인에게는 단발마적인 경제 효과까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일본의 우경화 현상은 다수 일본인들의 지지를 얻어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한중연맹과 일제망령, 적벽대전의 재현
일본은 우경화의 일환으로 먼저 임의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 헌법을 고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이와 같은 행보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했던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백 년 전 침략 전쟁을 일으켰으나 끝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금 군대를 갖겠다는데 대체 어느 누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까?
'적벽대전(赤壁大戰)'은 삼국지의 유명한 대목이다. 강대국 위(魏)가 남하하자 약소국이었던 촉(蜀)과 오(吳)가 힘을 합해 적벽에서 위의 대군을 물리친 내용이다. 한중 양국은 촉과 오처럼 연맹하여 일본이라는 위에 대항해야 한다. 물론 무력이 아닌 이성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호소하고, 근현대사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해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
또 이번 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가 중국인들의 특성을 얘기할 때 흔히 '꽌시(关系)'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꽌시만큼 '멘즈(面子)', 즉 체면도 중시한다. 과거 중국에 우리가 100원을 조공(朝貢)하면 중국 황제는 천자(天子)라는 멘즈를 의식해 그 10배인 1000원을 돌려주었다.
현재 G2의 일원으로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중국에 '정서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어쩌면 한중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1970년, 독일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유태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하루빨리 일제의 피해국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본 왕과 수상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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