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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人' 문창극에 관한 짧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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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公人' 문창극에 관한 짧은 연구

[윤재석의 쾌도난마ㆍ44] 진짜 약점은 '문창극 칼럼'에 있지 않다

이번 글은 필자가 재직했던 <중앙일보> 문창극 전 대기자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은 후반부에 있다. <편집자>

문창극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어제(6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 중앙일보 대기자 문창극을 새 국무총리 후보로, 주일대사 이병기를 국가정보원 원장 후보로 각각 지명한 데서부터 시작하자.

오후 두 시 청와대가 문 전 주필에 대한 총리 지명을 전격 발표한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박지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총리 후보에 문창극 전 주필? 국정원장 후보는 이병기 전 대사? 극우 꼴통 세상이 열립니다”라는 글로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국민 통합 국가 개조를 부르짖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극우 보수 논객인 문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국민 분열 국가 퇴조를 가져오는 인사로 극우 꼴통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문창극에 대해 “전직 대통령께 막말을 일삼던 실패한 언론인”이라며 “낙마를 위해 총력 경주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지원은 트위터를 날리기 전에 문창극에 관한 공부부터 했어야 했다. 평소에 별로 관심도 없었을 그의 이념성향과 인간 됨됨이를 휘하 비서가 프린트 아웃해온 자료 몇 시간 공부를 했다고 치자. 하지만 박지원 머리가 아무리 비상하다 해도 ‘초치기 공부’로 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재단(裁斷)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입신지경(入神之境)에 들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지원에게 한 가지 조언하고 싶다. 어떤 사안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자 할 땐, 즉각 내뱉지 말라고. ‘Think twice before you spit!’

더욱이 7‧30 재보궐선거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동작을’을 비롯, 전국 16개 지역구에서 실시될 재보선은 흔히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공통된 견해. 그보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야당이 과연 선전하여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런저런 원인으로 새누리당 의석은 현재 149석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처럼 대사(大事)를 앞두고 ‘망언’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청문회 마당에 오물을 뿌리고, 소속당에 폐를 끼치는 박지원. 정말 ‘꾀주머니’ 맞나?

이제 본격적인 문창극 연구에 들어간다. 우선 그가 총리가 되면 박지원의 폄훼(貶毁)대로 극우 꼴통의 시대가 열릴까? 바꿔 말해 문창극은 진정 ‘극우 보수 꼴통’인가!

이념 성향이나 그 강도를 말할 땐, 정교한 잣대로 측정해야 한다. 문창극이 ‘우익 보수’인 것, 맞다. 하지만 ‘꼴통’은 아니다. 이는 40년 가까이 그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여타 우익 보수와는 궤가 다르다. 합리적 우익 보수라는 점에서.

좌익 진보로 분류되는 필자와도 소원(疏遠)한 사이가 아니다. 필자가 <중앙일보>에 있을 때, 가끔 식사도 했고, 아주 가끔은 술도 마셨다. 좌파와 우파가 한 자리에 있다가 논쟁이 언쟁이 되고, 나아가 손찌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도 술좌석에서 이념이 다른 두 친구가 이념논쟁으로 판을 깨는 바람에 둘을 떼어놓느라 고생했다. 화해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더니 두 친구 이구동성으로 “죽을 때까지 다시 보지 않겠다”고.

그런 점에서 문창극은 ‘스마트 가이’다. 마치 그의 대칭형 한자 이름(文昌克)처럼. 언론기관의 관행에 따라 찻값이나 술값을 문창극이 지불했다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 ⓒ연합뉴스

문창극의 ‘핵무장론’과 ‘전쟁불사론’

비판론자들은 문창극이 ‘전쟁불사론’과 ‘핵무장론’ 등의 주장을 한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2005년 2월 22일자 칼럼 <이상한 나라 코리아>에서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이후 우리나라의 반응을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며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선언했는데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오불관언하고 있다”며 실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북한의 30배 넘는 경제력으로 아무리 재래식 무기를 사와도 핵 한방이면 끝장이다. 북한은 그렇기 때문에 핵을 개발한 것이다”며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깨져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거나, 독자적 방식으로 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다”고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또는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했다.

말은 바로 하자. 만약 우리가 전두환이 레이건에게 핵개발보고서를 진상하지 않고 핵 개발을 지속했더라면(전 청와대 경제2수석 오원철의 증언) 상황은 자못 달라졌을 거다. ‘핵이라는 괴물’은 미국처럼 쓰려고(나가사키, 오키나와) 만드는 게 아니다. 적, 또는 외세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자위 방어수단이다.

우리가 핵을 보유하게 되면 남북 모두 ‘핵에 의한 억지력(deterrence under the NUKE)’을 갖게 된다. 한반도에 ‘핫피스(hot peace)’의 시대가 도래하는 셈. 남북 간의 긴장은 여전히 팽팽하겠지만, 적어도 전쟁 걱정으로부턴 해방된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침쏜 벌’처럼 공멸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방조 아래 핵을 가진 후, 이란 등 주변 국가들이 끈질기게 더해서 핵개발을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하여 미국 정부를 앞세운 군산복합체(military indeusrial complex)의 '조폭식 무기 강매'에 시달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칼럼은 친미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반미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는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어두움의 끝은 통일의 시작이다>라는 칼럼을 통해 “‘민족끼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민족을 멸살하고 있다.('멸살하려고 하고 있다'의 非文) ‘우리에게 사용하겠느냐?’ ‘방어용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핵폭탄에 공격용‧방어용이 따로 있는가. 악을 보고 악이라고 왜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가. 분노해야 할 때 왜 분노하지 않는가. 북한에 ‘잘못한 만큼 너희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문제제기한다. 급기야 “전쟁이 무서워 피할 때 우리는 볼모가 된다. 전쟁을 각오하고 나서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전쟁불사까지 외친다. 냉정해지자. 남한의 논객이 좀 흥분했다고 해서 북한이 쳐내려올 리 없고, 기실 쳐들어올 기름도 없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6월 11일 칼럼 <정치도 성품이 먼저다> 역시 문제될 것 없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을 향해 “그의 언어는 왜 그렇게 상스러운가. 그의 말로 인해 나라 전체의 품격은 무너지고 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맞는 말 아닌가! 노무현이 대통령 권위를 내려놓은 건 거의 선진국급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에 찬 ‘어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문창극은 우익 보수다. 그러다 보니 쓰지 않았으면 좋은 칼럼으로 야댱의 집중포화를 맞는다. 당연하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왔으니. 국정 능력에 대한 우려? 솔직히 관피아 출신보다는 기자 출신이 총리 더 잘할 수 있다.

서울대 출신 엘리트에게 보이지 않는 '사회의 그늘'

문창극은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불행히도 그의 비논리적, 비합리적 논조는 100% 노출돼 있다. 온라인 시대에 살고 있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2009년 8월3일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칼럼을 보자. 그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많은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물론 당사자 쪽에서도 일절 반응이 없다”고 운명(殞命) 직전의 DJ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경을 헤매는 이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악어의 눈물’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발톱을 내보인 거다.

지난 2010년 무상급식이 지방선거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칼럼 <공짜점심은 싫다>를 통해 “무상급식은 사회주의적인 생각”이며 “무료 급식은 북한의 배급장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문창극은 워싱턴에만 오래 살아서 북유럽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잘 모르나 보다.

“무상급식이 개인의 선택도 무시된다. 왜 누구나 똑같은 메뉴의 점심을 먹어야 하는가? 떡을 싸 가고, 샌드위치를 싸 가면 안 되는가? 그것이 개인의 다양성이다. 우리 집 아이들의 경우, 때때로 학교 급식 메뉴가 지루하다며 도시락을 싸간 적도 많다.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칼럼 말미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그게 바로 가난을 이용하는 위선이며 포퓰리즘”이라고 자답함으로써 마지막 한방(finish blow)을 날린다. 뼛속깊이 기득권층(establishment)인 그에게 무료급식이 아니면 밥을 굶어야 할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가정 어린이들의 딱한 현실을 이해시키는 건 애초에 무리였을 게다.

문창극은 키보드로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패악도 저질렀다.

2009년 5월 26일자 <공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칼럼. 그는 노무현의 서거와 관련, “자연인(누가 자연인이지? 문창극? 아니면 노무현?)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그 점이 그의 장례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돼야 했다”며 국민장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공소권이 상실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종결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과거 칼럼과 관련된 논쟁은 일단 접자. 이제 그에 관계된 비화 하나를 소개함으로써 글을 마칠까 한다.
“尹 公, 우리 洪 박사 좀 잘 봐줘”

2005년 5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당시 회장 문창극)로부터 한통의 서신과 이-메일이 왔다. 5월20~21일 이틀 동안 강원도 속초 켄싱턴호텔에서 ‘미디어 빅뱅 시대에 있어서의 전통 매체의 살길’(확실하진 않다)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고. 발제자는 당시 중앙일보 미디어전문기자 김택환.

흥미가 일어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탔다. 주제발표는 역시 유익했다. 나같은 농땡이도 오랜만에 열공지경(熱工之境)에 빠져들 만큼.

그런데 중간에 CBS 시사자키 담당 PD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오전 <프레시안>에 쓴 ‘홍석현 주미대사 지금 뭐하고 있나’를 골간으로 10분 쯤 떠들어달라고. 그래서 세미나 후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가서 프레시안 기사를 큐시트(cue sheet)로 주물러 메일로 날렸다. 생방은 7시30여분 쯤 했다. 골방에서 유선전화로 김어준(당시 진행자)과 떠들고 이층으로 올라왔더니 문창극 선배가 폭탄주 한 잔을 건넨다.

두 손으로 받다보니 자연 큐시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문 선배가 종이를 주우면서 내용을 잠시 훑어보는가 했더니 표정이 좀 어두워졌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지나갔고, 이튿날은 속초 일원을 구경했다. 점심까지 현지에서 먹고 귀경길에 올랐다. 강동구에 사는 나는 운전기사님께 청을 넣어 미사리 조정경기장 정문에서 내릴 심산이었다. 될 수 있으면 버스 정차 시간을 줄이려고, 3번 좌석에 앉아 대기 중. 드디어 미사리 경기장 정문 앞에 버스가 정차, 내리려 하는데 문 선배 하는 말, “윤 공, 우리 홍 박사 좀 잘 봐줘.”

참으로 슬펐다. 그래도 스마트한 기자인데. 역시 머슴은 할 수 없구나 하는 비애. 하긴 그러그러해서 오늘 문창극은 총리 내정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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