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결과는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쪽이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야당(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묻자는 '정부 심판론'을 들고 나왔고,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정부 구조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여야 모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이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광역 및 기초단체장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서울을 지켰지만, 인천을 잃었고 경기에서 분투 끝에 결국 패했습니다. 하지만 강원과 충남을 지키는 데 성공했고, 충북과 대전과 세종을 얻었습니다. 대구와 부산은 역부족이었지만 선전했습니다. 광주도 결국은 얻어냈습니다. 새누리당은 서울에서는 대패했지만 대구와 부산을 지켜냈고, 경기와 인천을 얻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충남·북과 대전, 세종 등 중원을 몽땅 내줬습니다. 경기와 인천을 얻지 못했다면, 정말로 '영남당'에 머물 뻔했습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전체 226곳 중 새정치연합이 72곳을 얻는 데 그쳐 124곳을 얻은 새누리당에게 패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새정치연합 38: 새누리 26)과 서울(새정치연합 20: 새누리 5)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새누리당은 4년 전 제5회 지방선거 때보다는 서울 한 곳, 경기와 인천에서 각각 다섯 곳을 더 얻었습니다.
왜 무승부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진영투표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투표의사를 가진 친여 성향과 친야 성향 유권자들이 주로 참여한 선거였다는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번보다 투표율이 약간 높았습니다. 56.8%(선관위 잠정집계 기준)를 기록해 2.3%포인트가 올랐습니다. 16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습니다. 하지만 60%에 달할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 예측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전투표제가 실시됐지만, 상승효과보다는 분산효과가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투표의사를 갖고 있던 유권자들이 사흘에 나눠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도층 혹은 무당파층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중도층 혹은 무당파층의 참여가 저조했을까요? 정부 심판보다는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에 책임을 묻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구하기보다는 국민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경우, '정부 심판론 vs 정부 구조론'의 구도에서는 투표 동기를 갖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정부 심판론과 정부 구조론은 산토끼가 아닌 집토끼를 겨냥한 구도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더군다나 치열한 것처럼 보이는 공방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차별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 모두가 안전을 주요 의제로 설정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똑같이 먹고 살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주요 의제로 다루지도 못했습니다. 안전을 그냥 관리의 차원에서만 접근했지,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삶의 문제와 연관시키는 시도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후보자 공천이 늦게 이루어진 것도 문제였습니다. 선거운동 기간이 짧은 제도적 환경과 선거 정치를 빼놓고선 일상적 대민정치활동이 부진한 정당정치 행태를 고려할 때, 공천이라도 빨리 되어야 유권자들에게 선거와 관련한 정보와 지식을 보다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유권자들, 특히 중도 및 무당파 유권자들은 낮은 투표율의 보다 근본적인 요인, 즉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동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표해봐야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결국은 진영으로 나뉘어 승패싸움에만 열을 올릴 뿐이라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실시해 지난 5월 20일 발표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6월 3일 자 <시사인> 기사). 이 조사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 의사를 가졌던 유권자는 대체로 실제로 투표에 대부분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 의사가 없던 유권자들 역시 실제로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 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투표 의사가 없다고 밝힌 이유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부분이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어서'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투표를 해봐야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2002년에서 2006년 사이, 2010년과 2014년 사이 특히 크게 늘어났습니다. 2002년에서 2006년은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시기였습니다. 2010년에서 2014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입니다.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진보에게도, 보수에게도 실망한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결과가 향후 정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묻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번 선거결과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탈진영 정치를 외치면서도 결국은 진영논리에 갇혀 소모적인 갈등을 벌이면서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정치, 별로 효과가 있지도 않을 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포장해 내놓기만 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당장 목소리를 낮추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운용하며, 하던 대로 하는 정치가 다시금 반복될 것입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시민들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대안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선거정치가 아닌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탈진영 정치를 선도하며, 삶의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함께 도모하면서, 진영에 갇힌 이들을 구해내는 대안정치 세력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를 시민과 함께, 사회와 정치 전환의 계기로 삼아낼 줄 아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저는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 즉 여야 무승부의 결과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세력의 필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으며, 그 형성을 위한 실천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야 무승부의 의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안정치세력이, 지금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당장 하나의 정당으로, 또 모든 기성정치인을 배제한 채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진보정당들만으로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아직은 대안 정치세력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칼도 경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 해도 이가 빠지고, 글자마저 바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갖고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찾음과 살핌에 대한 필요와 의지의 확인, 오늘은 일단 이 과제를 수행해보겠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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