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정(가명)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에서 10여 년을 살았던 세입자였다. 가난했지만 집주인과 큰 갈등 없이 살아가던 중 뉴타운 개발로 보금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보금자리를 순순히 떠날 생각은 없었다.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해 강제 퇴거 및 철거에 맞서 싸움도 하였다. 하지만 소수 철거민의 단결은 막강한 건설자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허 할머니는 살던 주택에서 명도 소송을 당해 강제 퇴거당하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집 때문에 눈물짓는 사람들
방제원(가명) 씨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세입자였다. 방 씨에게 얼마 전 집주인이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소리를 건넸다. 임대계약 기간이 다 되었으니, 전세보증금을 수천만 원 올려주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방 씨는 장위뉴타운 사업이 계속 추진되어 관리처분 인가 승인을 받고 이주하면, 재개발사업으로 건설되는 임대주택의 입주권은 물론 주거 이전비를 받을 수 있는 세입자였다.
방 씨는 막막하다고 상담을 해왔다. 공공임대주택 입주, 주거 이전비를 못 받는 것도 억울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전세 보증금을 갖고서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집주인이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 결국 방 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도 만료됐고, 보증금을 올려줄 돈도 없었던 그로서는 이주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전세대란의 영향으로 전세금이 너무 올라 결국 경기도 외곽에 간신히 전세방을 구했다.
집 때문에 눈물짓는 이웃들이 허 할머니와 방 씨만은 아니다. 주택공급률 105%의 대한민국에서 많은 서민이 원치 않게 유목민의 떠돌이 삶을 살고 있다.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이 이러니,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복지는 우리나라 민생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2012년 대선 때도, 현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주거복지 공약을 화려하게 내놓는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라
주거복지 정책은 주택 공급을 포함하여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지원해, 모든 사람이 주거 차별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이 적은 나라에서는 국가의 개입주의 주택 정책이 중요하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 주택의 경우에는 부동산세, 임대료통제, 최저주거 기준 설정,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임대료 보조 및 주택수당 지급 등 다양한 정부 정책이 행해지고 있다.
주거복지 정책은 자가소유시장, 민간임대시장, 공공임대주택 등의 영역에서 진행된다. 우선 자가소유시장에 대해서는 각종 부동산 규제 및 완화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도모한다. 민간임대시장에서는 주택바우처 제도를 통해 저소득 무주택자들에게 임대료를 보조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 영역에서도 주택 공급뿐만 아니라 소득에 따른 임대료 차등부과 등이 시행된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의 주택 정책은 자가소유 촉진 정책을 중심으로 펼쳐져 왔다.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전체 주택재고량 대비)은 4.8%에 불과하다. 주거복지의 선진국들에선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15~20%에 달한다. 이에 공공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국민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지지가 높고 정치권 역시 이를 표방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연 11만 호 공급, 민주당은 연 12만 호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물량목표에만 치중하는 문제도 드러난다.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지역에 집중적으로 공급함으로써 대도시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을 전체 주택재고량의 20%~30%까지 공급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량을 적정 수준(10%~12%)으로 확대하고,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정부 개입을 통해 민간임대주택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아파트 건설 외에 대안은 없을까?
한편 중앙정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거복지, 즉 마을형 주거복지도 중요하다. 지역사회는 집 없는 서민들의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슬픔의 땅이다.
나는 2010년부터 은평구청과 협력하여 두꺼비하우징 사업을 벌이고 있다. 두꺼비하우징은 낡은 집, 에너지가 새는 집을 고쳐서 쾌적하고 따뜻한 집, 에너지를 절약하는 집, 생명이 숨 쉬는 행복한 집으로 만드는 사업을 벌인다. 대규모 주택난개발로 사라지는 주민들의 정주권과 공동체 및 골목 문화를 지키면서 지역 주민의 주거 권리를 구현하고자 한다.
2007년은 뉴타운․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그때 뉴타운 지역에 살던 주민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뉴타운 사업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마을을 깡그리 철거하고 재개발하는 방법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뉴타운․재개발지역 주민들을 만나서 교육도 하고 상담도 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대안 개발 방식의 마을 재생 사업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주민과 헤어지고 나서 뉴타운․재개발 반대를 주장하던 나는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말이 있다. 주택 재고량이 부족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주택)에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집'은 '사는 곳'이지만 '사는 것', 그래서 재산을 증식시켜주는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었다. 그 결과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우후죽순처럼 재개발사업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거 약자들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았고, 보금자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뉴타운 사업을 정점으로 도시재개발사업은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을의 주택을 다 철거하는 재개발, 주민들을 다 쫓아내는 반(反) 주거복지 재개발을 더 이상 주민들이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뉴타운 지역 주민을 만나던 2007년이 바로 그 시기였다.
분명, 뉴타운․재개발사업은 부작용도 많고 예전보다 많은 주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더디지만 계속 추진되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특히 2009년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꽤 긴 시간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문제는 주민들이 아파트만 대량으로 짓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마을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다른 방식의 마을재생 사례를 보고 경험하지 못한 까닭에 부작용도 많고 원하지도 않지만 재개발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을이 낙후된다는 두려움을 가진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뉴타운․재개발사업을 따라가는 이유이다.
지역사회에서 꿈꾸는 마을형 주거복지
궁금했던 문제의 근원을 알게 되자,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마을을 다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지 않더라도 안전하고 쾌적하며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꿈 말이다. 때마침 지방자치선거에서 당선된 젊은 구청장도 비슷한 꿈을 꾸어 두꺼비하우징 사업이 출발하였다.
두꺼비하우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회적기업 (주)두꺼비하우징을 설립하고, 서울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을 시범사업 마을로 지정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두꺼비하우징과 산새마을은 은평구는 물론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마을형 주거복지를 실현하려면 여러 정책 수단이 함께 요청된다. 세입자들은 공공임대주택의 입주를 선호한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집주인에게 주택개량비용을 지원하고, 지원된 주택의 세입자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사업도 병행해야 한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리모델링지원형 장기안심주택'은 주택 소유자에게 주택 개량 비용을 지원하고, 임차인에게 임대차 계약 기간을 6년간 보장하여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주택 개량 비용을 지원하면 주거복지 효과를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주택을 철거하지 않고 주택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나아가 주택 에너지 성능 개선 등 친환경적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세입자 주거 안정과 에너지 절감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모두 거둘 수 있다.
마을형 공공임대주택 공급, 리모델링형 장기안심주택 공급과 더불어 주거취약계층에게 주거비를 보조하는 임대료보조 정책인 주택바우처도 중요하다. 또한 세입자가 지속해서 거주하는 데 필요한 보증금과 임대료를 무이자로 지원하거나, 시중금리보다 저렴한 이자로 대출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주거복지의 꿈, 이루어진다!
서민들이 주거 불안과 부담에서 벗어나 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꾸는 꿈이다. 두꺼비하우징은 그 꿈을 향해 가는 나의 경로이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산새마을 주민들 모두가 함께 꾸고, 지역사회 주민들이 함께 꾸는 꿈으로 커졌다.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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