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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출범은 사회적 대타협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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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출범은 사회적 대타협의 죽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33>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현재는 불가능

1. 프롤로그

정치권과 학계에 증세-복지 당위론이 풍성하다. 그러나 증세를 통한 복지국가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담론은 빈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 국회 대표연설에서 재정(조세)과 복지의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초당적 조직인 '비전 2040위원회'를 설치해 지속 가능한 한국형 복지모형을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복지와 조세부담 간극에 따른 갈등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제기했고, 금년 신년 기자회견에선 노사정 대타협을 주창한 바 있다. 이러한 제안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조세와 복지의 균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의 발로로 평가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가 조세-복지의 정치학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대타협이란 시민사회-시장-국가 사이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수평적 의사결정 패러다임이며, 이익집단-국가 간의 정치적 교환을 통해 노사 등 이해집단의 이익·가치 갈등을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제안한 '비전 2040위원회'는 조세-복지 갈등을 조정 관리하기 위해 그 이해주체(사실상 전 국민)들이 참여하는 정책 네트워킹을 만들어, 파트너십에 기초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한국형 복지-조세모형을 설계하려는 협의체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회적 대타협은 정당정치 패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극단적 경쟁을 통해 단일 이념정향 정당(연합) 단독 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정당정치에선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불안정한 반면, 정당 간 연합정치와 연동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현행 우리의 정당정치 동학을 고려할 때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 구체적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왜 조세-복지 정치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을 유인할 수 있는 한국 정당정치 패턴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박근혜 정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을까?

현행 사회적 협의체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임금체계나 노동시간 단축 등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현안에 직면해 있지만 양대 노총의 외면, 특히 그동안 노사정위를 명목상 유지해 준 한국노총마저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사실상 '식물위원회'로 전락한지 오래다. 기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실상이 이럴진대, 과연 '비전 2040위원회'라는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까? 설령 설치된다 하더라도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자못 회의적이다. 여러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핵심적 이유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유인할 정당정치의 부재에 있다.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한 노동을 대표하는 정당정치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배하는 탈계급적·탈계층적 지역분할 양당 독과점 정치 상황에서 노동은 '비전 2040위원회'에 참여할 매력을 갖지 못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지역 중심의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가 노동의 이익과 관점을 치열하게 주요 정책의제로 공론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정부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중심 성장일변도 발전모델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적 노동 독트린에 경도되었고, 지역 중심의 거대 양당정치는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고 노사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권·국회와의 관계 설정에 속수무책이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회협약이 국회의 입법화 과정에서 거대 양당의 제동에 걸려 노동에 더 불리한 방향으로 변질되거나 부결되었으며, 심지어 국회에 입법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결국 반노동적인 거대 양당정치는 두 민주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기구로 변질된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의 참여를 독려할만한 아무런 정치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노동의 ‘거리정치’를 일상화시킨 주된 요인이었다.

현재의 정당정치도 안철수 세력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인해 옛 모습으로 고스란히 복원되고 있다. 노동집단을 대표하는 진보·좌파 세력이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인해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의석을 싹쓸이하고 있다. 거대 양당 국회의원들은 차기 선거 당선을 위해 국가 재정과 지역(구) 주민 사이의 정치브로커·로비스트 행세를 하며 지역 토건·서비스사업 유치에 몰입한 나머지, 노동의 협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대타협 정치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거대 양당의 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정당한 노동운동을 노동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노사정위원회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고 세비만 축내는 무용지물 기구로 평가 절하하는 등 무식의 극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요컨대 노동의 상대적·절대적 박탈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지역 중심의 반노동적 거대 양당 정치 지형은 노동에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협의체에 참여할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자유주의 진보 세력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권 정당블록과의 양극적 경쟁관계에 있는 자유주의 보수 블록인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조세-복지 정치를 위한 ‘비전 2040위원회’에 사용자단체의 참여를 견인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사용자단체는 ‘비전 2040위원회’ 참여보다는 자신들과 이념적 정향을 공유한 박근혜 정부와의 직접적인 담판·로비를 통해 이익을 관철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 극단적 경쟁을 초래하는 정당정치 하에서 특정 이념정향의 정당(연합) 단독으로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은 위협받는다. 노사정 파트너십의 아이콘이고 조세-복지국가의 세계 챔피언이던 스웨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퇴조·해체 현상이 이 가설을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스웨덴 정당정치는 보수우파 정당연합의 집권(1976~82)을 계기로 이념블록 간 양극화 속에서 순수 우파정부연합 혹은 순수 좌파정부 구성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런 정당정치의 좌우 양극적 경쟁과 종(縱)적으로 연결된 노사 이익단체도 양 극단적 갈등의 늪에 빠졌다. 양당제 국가에서 발생하는 양극적 정당정치-갈등적 노사관계 현상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 노사 이익집단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보다 이념적으로 동질적이고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정당·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정치 전략을 선호하게 됐다. 1991년 초 스웨덴 사용자단체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종언을 선언하고 국가노동시장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3자 협의체에 파견된 대표를 철수시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당시는 보수우파 정당연합의 선거승리가 확실시 됐다. 이에 따라 사용자단체는 두 번째로 집권한 보수우파 연립정부(1991~94)의 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킬 확률이 높아졌다. 역으로 보수우파 정당연합과 양극적으로 경쟁하는 사민당 소수정부(1994~2006)는 내각연합 구성 대신 의회 차원에서 좌파당 혹은 녹색당과의 연합을 통한 입법화 전략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적녹(赤綠)연합의 좌파블록에 대해 스웨덴 사용자단체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사민당 소수정부 및 노조와의 협상시스템에 연연하지 않았다. 결국 스웨덴의 양 극단적 정당경쟁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방해한 족쇄가 된 것이다. 스웨덴의 이 같은 양대 이념블록 정당정치와 사회적 대타협 퇴조·해체 사이의 인과성은 한국 정당정치와 사회적 대타협의 관계를 예측하는 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자유주의 보수블록의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설립하거나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확률은 낮다. 야권 정당블록과의 양극적 경쟁관계에 있는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단독 법안통과를 위한 안정적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비록 '국회선진화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전경련·경총 등 재벌기업 이익을 집약·표출하는 사용자단체에 대단히 우호적인 정치지형이다. 따라서 이념적·정치적 정향을 달리하는 야권 정당블록의 정치력을 견제해야 할 절박함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용자단체는 '신자유주의 성장동맹'의 중심축이고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규범을 공유한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정치를 통해 이익을 관철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노동에 대한 양보를 강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설립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국가경제를 지배하는 스웨덴의 수출 대자본(중화학공업)도 중소기업 중심의 덴마크 사용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1990년대 이후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곤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했던 재벌개혁-복지정책을 축소 내지 파기하고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규제 '암 덩어리'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은 '자본 파업'(캐피탈 스트라이크, 투자·고용축소,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 위협을 압박 무기로 활용할 위치에 있는 사용자단체의 집요한 대(對)정부 로비정치가 활발히 작동함을 증명한다. 재벌 자본은 대학·싱크탱크·언론매체를 소유하거나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규범을 확산시킨다. 또 그들은 청와대비서진-장·차관-고위관료-유력정치인과의 혼맥·학맥·지연 혹은 '관피아'와 같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금력·정보력·조직력을 총동원, 정부의 정책결정-집행 과정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유리한 권력자원에 입각한 자본-권력 유착구조 속에서 왜 사용자단체가 노조를 비롯한 다른 이익단체들과 지루한 협상을 해야 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참여할 동기를 갖겠는가? 그들에게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란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원리와 규범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새누리당-박근혜 정부 역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법안통과를 위한 안정적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다. 정책추진과 국정운영을 지체시킬지도 모를 정부 밖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재정과 정권의 업적이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기업이 이룩한 실적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좌우블록 연립정부와 달리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사용자단체를 압박하여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강제하는 데 숙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결국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구조적으로 자본친화적인 법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결정·집행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새누리당-박근혜 정부의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제안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며 외면하는 단적인 이유이다.

요컨대 재벌기업의 막강한 구조적 힘은 자신들과의 동질적인 이념정향을 갖는 새누리당 단독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도구적·구조적 정책 자율성을 무력화시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구축 혹은 안정적 작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3. 왜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한가?
우리 사회에는 복지와 조세 간 갈등이 상존한다. 우선 복지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 대립한다. 하나는 복지가 조세부담에 따른 기업의 투자의욕 저하를 초래해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다. 이 보수우파적인 관점은 자산·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는 선택적 복지체제 선호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노동운동 온건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여 국가경제의 생산성·효율성 향상을 이끌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 진보·좌파적인 관점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같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주자는 보편적 복지논리로 발전한다.

복지 재원의 마련을 둘러싼 조세 대립도 만만치 않다. 안정적인 대규모 세수에 의존하는 간접세 중심의 역진적 조세체계냐 ‘능력 세금부담 원칙’에 의거해 고소득층에 집중하는 직접세 중심의 누진적 조세체계냐, 증세냐 감세냐를 두고 조세부담률, 복지세·부유세 신설 등에 접근하는 이해관계 집단 간의 상이한 관점과 논리가 항상 부딪친다. 그런데도 만일 복지-조세 이슈가 정책 이해당사자들(사실상 전 국민)의 참여를 배제시키고 청와대-집권당-관료-전문가 중심의 위계적 하향식 방식인 권위주의적·폐쇄적 정책결정 회로에 맡겨지면 복지-조세 갈등과 충돌의 확대재생산은 불가피해진다.

복지와 조세는 동전의 양면이다. 복지국가 구축을 위한 세금인상 정책이슈는 정권의 운명을 뒤흔드는 잠재적 시한폭탄이다. 1991년 캐나다 보수당 정권은 연방소비세를 인상했다가 2년 후 총선에서 기존 169석이 단 2석으로 급락하는 대참패를 겪은 끝에 다른 정당에 흡수통합 돼버렸다. 일본 민주당도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장밋빛' 로드맵을 제시하고 소비세 인상을 추진했으나, 불과 3년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 몰락의 씨앗도 사실은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이었다는 시각이 있다. 이처럼 복지국가 증세는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폭발성을 지니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인기 없는 정책이슈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에 복지국가 증세를 요구한 것은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선 어쩌면 정권을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치적 협박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 의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게르만·노르딕 유럽 국가들의 조세-복지 연계 정치는 사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의 조세-복지 연계 정치는 노사정 간 정치적 교환으로 작동한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노동은 자본의 투자촉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기업부담이 되는 무리한 임금인상을 자제했다. 국가는 연대임금을 수용하는 노동에 촘촘하고 관대한 복지정책으로 보상했다. 임금인상 자제로 여유가 생긴 자본 측의 투자 드라이브는 복지국가의 재정적 토대를 제공하고 임금억제를 양보한 노동에 일자리 창출과 경영참여의 제도화로 화답했다. 나라에 따라 다소의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양보-보상-화답’ 사이클이 작동하는 노사정 대타협 메커니즘이 활발히 작동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제도적으로 연계시켜 생산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끌어냈다.

특히 노르딕 유럽의 복지국가 조세체계의 주축인 간접세 중심의 역진적 조세정책 또한 국가-이익집단 간 정치적 교환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그들 복지국가의 사회적 대타협 조세정치는 우파와 노동이 각각 선호하지 않는 법인세와 임금소득세의 인상 대신, 두 집단의 이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반소비세의 증세를 통해 대규모 세입을 늘리고, 복지세출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이처럼 게르만·노르딕유럽의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복지-조세정치는 계급·계층 간 정치적 타협을 전제하기 때문에 세금부담이 특정 집단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낮아 복지-조세 갈등을 조정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게르만·노르딕 유럽 국가들의 복지-조세 연계정치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해집단과 국가 간의 정치적 교환에 기초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을 통해서만이 복지-조세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조세-복지 연계정치를 통한 증세-복지 갈등을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이익·시민단체-기업-전문가집단-여야정당-중앙부처-청와대 대표들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파트너십이 작동하는 복지-조세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조세 거버넌스는 저(低)세입-저(低)복지, 중세입-중복지, 고세입-고복지 등 세 가지 메뉴를 상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형 증세-복지 프로젝트의 로드맵(증세-복지국가 5개년계획 등)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예컨대 앵글로색슨 자유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공공사회서비스, 게르만 기민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관대한 사회보험, 종국적으로 노르딕 사민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보편적 포괄적 공공사회서비스 등 단계별 혹은 부분적 동시성 발전경로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통해서 설계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조세-복지 갈등을 조정·관리하는 제도적 지렛대이고 정치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야말로 증세-복지정책의 대표성·정당성을 확대하고, 사회경제적 파트너들과 정치적 파트너들 모두에게 증세-복지정책의 책임성과 정치적 리스크를 나눠지게 해, 증세-복지의 혜택과 비용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증세-복지 정책이슈를 둘러싼 계급·계층과 집단의 반발과 저항을 관리·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갈등관리 기제다.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독일은 대연정(Grand Coalition)을 통해 노사정 협력 관계의 기반을 마련했다. 2013년 11월 27일, 3선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기독민주당 의장)가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회민주당 대표와 연정에 관한 협약서를 나누고 있다. ⓒReuters

4.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 작동, 어떤 정당정치 패턴을 요구하는가?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을 설계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어떤 정당정치적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정당 간 연합정치와의 유기적인 연동을 통해서 작동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정당정치가 지향하는 연합정치 패턴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 여부를 좌우하는 독립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합정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유인하는 정당체제를 전제한다. 즉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는 국회 과반의석 점유와 정부구성이 불가능한 진보좌파-중도-보수우파 블록의 다당제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한국 정당정치가 이 같은 제도적 매트릭스에 입각해 연합정치를 추구한다고 가정할 때 정당 간 연합정치 패턴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 작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정당정치가 양대 이념블록 중심의 연합정치, 즉 양극적 이념블록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당체제에서 정당정부 유형이 순수 진보좌파정부 혹은 순수 보수우파정부를 추구할 경우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특히 동일 진보좌파 정당블록 연립정부-사회적 대타협의 조합을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자본-사용자단체는 극심한 이념적 이질감을 갖고 진보좌파 연립정부가 개입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집요하게 거부할 것이다. (현 선거제도 하에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단순히 논지의 전개상 상정해 보면) 진보좌파 정당블록 단독으로 구성된 정부(연합)가 등장하여 예컨대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재벌해체·대기업경영권제약 등 급진적인 반자본적·반시장적 정책과 제도를 구사하는 상황에선 스웨덴·덴마크(1970년대)의 경제민주화(임노동자기금제 등) 추진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재벌 간 이념적 대충돌을 야기해,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은 기대할 수 없다. 자신들의 본질적인 사업 신뢰가 위협받는 상황에 대면한 사용자단체는 진보좌파 정부에 대해 이념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갖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필사적으로 이념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담보로 해 대대적인 자본 파업 위협으로 대응할 것이다. 노조 또한 이념적·정치적으로 우호적인 진보좌파정부를 상대로 이익관철을 위한 로비정치 전략에 집착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한마디로 진보좌파블록 단독의 정당정부에선 재벌-사용자단체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둘째, 한국 정당정치가 이념블록을 뛰어넘는 연합정치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조건에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초(超) 이념블록 연합정치는 노사 이익단체-행정부-국회 간 유기적 협력을 촉진하는 강력한 연결고리이며, 따라서 사회적 대타협에 의해 설계된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이라는 사회협약이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변질·부결되는 정치적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협약의 입법화 과정에 의해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제도적·기능적으로 연동된다.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는 특정 이익단체에만 우호적이거나 특혜를 일방적으로 부여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중립적 입장에서 재정적·행정적 정책수단에 의한 압력·권고·지원 등을 통해 이익단체들을 협상테이블에 견인하는 정치적 동력을 갖는다. 노사 이익단체들 또한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 내 특정 우호적인 정당을 상대로 하는 로비정치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익관철을 시도하는 것이 연정파트너 정당 간의 역학관계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의 노사 계급·계층적 중립성을 신뢰하고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회피하지 않는다. 게다가 노사 이익단체들은 과반의석 정당이 부재한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에선 자신들에 우호적인 정당이 이념적·정책적 차별성을 가진 다른 정당과의 정책조정·타협을 하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연합 집권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각기 상대방 이익단체와의 협상-타협으로 행동전략을 바꿀 것이며, 이 때문에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서유럽국가들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이념블록이 교차하는 연립정부에서 부활 혹은 활성화되었다. 덴마크의 경우 군소 중도정당(사회적 자유당 등)은 좌파정당과 우파정당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면서 연립정부를 형성하곤 했으며, 이러한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가 사회적 대타협 정치시스템의 작동을 부활·안정화시킨 제도적 버팀목이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도 중도정당인 기민당이 보수자유당과의 연정에서 복원되었고, 노동당·D'66·보수자유당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에서 제도화되었다. 핀란드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도 실업·저성장 등 경제위기 국면에서 사민당·국민연합당·스웨덴인민당·좌파동맹·녹색당 초 이념블록 ‘무지개’ 연합정치와 절묘하게 맞물려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독일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사민당·녹색당 좌파블록 연정에선 정체되었지만 사민당·자민당, 사민당·기민당 등 초 이념블록 연정 하에선 활성화되었다. 서유럽의 경험적 사례들은 좌-중도-우를 교차하는 초 이념블록 정당연합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유인하는 정치적 동력이 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서유럽 국가들의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 정치의 인과관계에 비춰 보건대, 한국 정당정치가 중도정당·진보좌파정당 혹은 보수우파정당·진보좌파정당 등과 같은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의 제도화를 추구할 때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는 노동과 자본을 동등하고 균형적으로 대표하는 정치적 공간을 확장하여 노사 대타협을 유인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특히 진보좌파정당이 국회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점유하고 그 출신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입성하거나 사회경제부처 장관으로 입각하는 초 이념블록 연립정치 지형에서 사용자단체는 보수우파정당에 대한 로비정치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익을 관철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익숙해 온 대정부 로비·압박 정치를 철회하고 정부-노동과의 협상전략으로 나오는 것 외에 다른 옵션이 없다. 사용자단체의 협상전략이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의한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노동에 부여하는 그들의 조세부담·투자확대·일자리창출·교육훈련강화 등과 같은 양보와 화답이 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는 노동대중을 대표하는 진보좌파 정당의 양보와 화답도 끌어낼 수 있다. 진보좌파 정당 소속 국회의원-장관은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입각하여 전면무상의료·재벌해체 등 자신들의 특정 급진적인 정책만을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고집할 수 없고, 다른 연정파트너인 중도정당 혹은 보수우파 정당과의 조세-복지 정책조율·교환 협상과정에서 임금인상 자제, (노사 공동 결정제에 입각한) 재벌기업 경영권 보장, 노동시장의 내부-수량적 혹은 기능적 유연화 등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진보좌파 정당의 양보와 타협이 없으면 연정갈등으로 인해 초 이념블록 연립정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대중-진보좌파정당의 탄력적인 양보-타협정책이야말로 사용자단체를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으로 견인하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해 노사정 간 조세-복지 일괄타결을 이끌어내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시나리오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에 의해 실행된 바 있다. 그는 과격한 노동운동 경력의 좌파 지도자였지만 집권한 후 비례대표제로 인해 자신의 노동자당(PT) 의석점유율이 늘 20퍼센트를 밑돌자 좌우 초 이념블록 연정을 구성해 빈민-서민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한편, 매우 흥미롭게도 자신의 좌파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보수우파 연정파트너 정당의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해 종국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유도했다. 대통령제 국가인 브라질 사례에 비춰 보건대, 주류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 대통령제 하에서도 진보좌파 정당은 중도정당 혹은 보수우파 정당과의 연정협약에서 한편으론 자신의 정치고객인 노동대중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대중의 양보를 끌어내고 '길거리-광장 정치' 유혹을 자제시켜 정책협상 테이블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서유럽 국가들의 경험에서도 여실히 검증되었다. 즉 노동과 사회취약계층의 이해관계·정책선호가 진보좌파블록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의 정책 협상테이블에서 여과 없이 대표되었으며, 이는 노조로 하여금 산업현장의 과격한 투쟁전략을 피하고 '온건과 절제'라는 행동전략에 의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예컨대 스페인·네덜란드·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노동우호적인 정당 혹은 사민주의 진보좌파 정당이 자유주의 보수우파 정당과의 연합정치를 통해서 한때 극도로 과격했던 노동운동을 잠재우는 등 노조의 절제와 타협적인 입장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타협의 길을 막았다? 지난 5월 23일 안철수(맨 오른쪽)·김한길(중앙)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등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5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5. 에필로그

현행 거대 양당 독과점정치의 동학 과정을 고려할 때 유감스럽게도 이 글이 상정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유인할 수 있는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 시나리오는 어쩌면 정치적 신기루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당정치 패러다임이 바꿔지지 않는 한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한국형 복지-조세모형 설계를 위한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타협 운운은 그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치적 수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정상적·안정적 작동은 노동과 자본을 균형적으로 대표하는 정책경쟁-협력 사이클이 작동하고 과반의석 정당이 부재한 진보좌파-중도-보수우파 블록의 다당제와 연합정치로 이어지는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턴의 정당정치 패러다임으로의 교체는 권력배분·구성 방식인 선거제도의 혁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즉 현재의 권력독점 단순다수대표제에서 권력분점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이다. 대한민국 ‘새정치’가 대장정에 오르는 유일한 출발 지점이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개혁 의제설정의 '번지수'도 '문패'도 완전히 잘못 짚었음을 이 글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음 시대를 고뇌하는 '정치가'의 길보다는 다음 선거를 고민하는 '전략가'로 변신했다. 안철수 세력-민주당의 통합은 한국정치의 역주행과 적신호를 알리는 조종(弔鍾), 아니 한국 민주주의에 '악마의 독배'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정치판을 갈아엎으라는 국민적 열망이 투영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이제 일장춘몽의 '안철수 환상'으로 추락하는 느낌이다. 그토록 절규했던 '새정치'가 봄날 벚꽃처럼 피려다가 벚꽃처럼 떨어져버렸다. 더욱이 새정연이 연출하는 저간의 작태로 인해 이미 '새정치' 깃발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다. 이런 경고성 관찰이 초야에 묻혀 사는 한 범부의 착시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위한 총총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참으로 비극적인 '세월호' 대참사. 바라건대, 도도히 분출하는 사회적 분노의 에너지와 국민적 비탄이 초 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이 연동하는 정치시스템 구축을 통해 세상의 기본 틀을 바꾸기 위한 권력분점 '선거제도 개혁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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