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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몽준, 서울시 전에 현대중 노동자들 '고통'부터"

[인터뷰] 12년 만에 '민주파' 노조 세운 정병모 현대중 노조위원장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한국 노동운동 역사 서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설립돼 1989년 128일 파업, 1990년 25일 골리앗 파업, 1994년 63일 LNG선 점거 파업 등을 벌이며 노동운동 선봉에 섰던 '민주노조'의 맏형. 그러나 그 화려했던 이름은 2002년 '어용' 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며 빛바래기 시작한다.

특히 노조 간부들이 하청 노동자 고(故) 박일수 씨의 장례식장에 난입해 물품을 부수고 아수라장을 만들었던 2004년은 원·하청 노조 모두에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장례 물품을 부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물리적인 충돌까지 빚은 현중 노조는 결국 그해 9월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현재 금속노조)으로부터 제명된다. (관련 기사 :대선 이후 노동자들은 왜 자꾸 죽음을 택했나)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선 사그라진 현중 노조는, 역으로 보수신문과 경제신문 지면에는 때마다 등장했다. 어용은 ‘노사 협조주의’와 ‘실리노선’이란 단어로 포장됐고, 17년 무파업 기록은 ‘상생의 노사 관계’ 모델로 역설됐으며 그로써 타사업장의 민주노조들을 비판하는 우회로 역할을 떠안았다. 이렇게 모두가 현중 노동자들의 변심을 ‘깨진 그릇’처럼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노사협조주의 심판 연대’란 이름으로 선거에 나섰던 현장 민주파가, 투표자 1만6884명 중 52.7%의 표를 얻어 기존 집행부를 누르고 당선된 것. 울산은 물론 노동계 전체가 술렁였고 언론 또한 ‘12년 만에 민주파(또는 강경파) 당선’ 소식을 발 빠르게 타전했다.

지난 15일 오전, 새 집행부의 첫 임단협을 앞두고 정병모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1987년 노조 설립 당시 쟁의부장을 지내며 7,8,9월 대투쟁 최일선 서 있었던 그는, 지금은 머리카락이 하얀 57세 노장이 됐다. 머리를 길게 기른 이유를 물었더니 그간 ‘심심했다’고 한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15일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사무실. 임단협 노사 상견례를 앞두고 노조는 이날 출정식을 진행했다. 보통 노조 사무실 바깥 공간에서 진행하곤 했지만 세월호 참사 분위기를 고려해 사무실 안에서 약식으로 진행됐다. 가운데 오른쪽이 정병모 위원장. ⓒ프레시안(최하얀)

프레시안 : 긴 세월 만에 다시 노조 일을 하게 됐다. 당선되고 반 년 여, 많은 고민과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을 거 같다.

정병모 : 개인적으로는 아주 영광스럽다. 사실 지난 시기 민주노조 운동을 하던 많은 이들이 힘들어 지치고 어용에 빼앗겨 지치고 그랬다. 민주노조 운동이란 ‘대의’는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한다는 확신은 없는 그런 상태였다.

나도 물리적으로는 나이가 다 된 사람이다. 정년도 코앞이고. (웃음)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현장 조직(전진하는 노동자회) 의장을 맡게 됐지만 좀 지쳐있었던 게 사실이다. 머리를 기른 것도 심심해서 길렀다.

그런 우리에게 중책을 다시 맡겨주셨다. 그만큼 이전의 ‘엉터리 노조’에 실망이 컸던 게다. 솔직하게 평해, 우리가 당선된 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전 집행부의 실책이 만든 반사 이익이다. 지금이라도 노동조합을 잘 해보라고 힘을 실어주셨으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프레시안 :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지난 반년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달라진 현장 분위기도 듣고 싶다.

정병모 : 조합원들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성과라면 성과다. 요즘 조합원 교육이 한창인데 교육장 분위기를 보면 확 느껴진다. 자는 사람도 없고 눈이 아주 초롱초롱하다. 현장 관리자도 있는 자리지만 자유롭게 얘기도 하고 막 환호도 한다. 회사의 잘못된 정책과 노사 협조주의에 억눌려 말 한마디 못 하고 있다 말문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외려 관리자들이 쩔쩔맨다. 아직 이루어놓은 것은 없다. 그러나 무엇을 따낸다는 건 부차적일 수도 있다. 이런 변화들이 매우 소중하다.

프레시안 : 오늘 상견례를 시작으로 임금·단체 협상이 본격 진행된다. 기본급 13만2000원(현재 대비 6.51% 인상) 인상, 성과급 250% + 추가, 호봉승급분 5만 원 인상 등 50개 요구안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통상임금 적용 범위 확대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60세 보장도 요구했다.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 요구다.

정병모 : 외부에선 현대중 노동자들이 임금 수준이 대단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젊은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보면, 최저시급 수준이다. 10년을 일해도 기본급 수준이 좋아지지를 않는다. 기본급만 놓고 보면 최저 생계비 미달이다.

이런 상황이 된 건 그간 노조가 수당과 일시금, 격려금 중심의 임금 인상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임금 체계가 심각히 왜곡됐다. 기본급 13만2000원 인상 요구는 잔업(주중 추가 근무)과 특근(휴일 근무)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분위기는 아주 좋다. 교육장에서 ‘임단협이 잘 풀리지 않으면 파업에 동참할 수 있는 조합원 있습니까, 손들어 보세요’하면 많은 수의 조합원이 손을 번쩍 든다. 조합원들의 기대가 높고 그 기대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지난 10년여 실리노조가 만드는 데 실패한 경제적 이득을 우리가 채워준다 안 채워준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경제적 동물을 위한 노조가 될 수 있다.

▲ 현대중노조가 사내하청노조와 함께 식당 등 공장 곳곳에 게시한 대자보. 공동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임단협에서 원하청 노조는 실태조사를 바탕에 둔 4대 공동 요구안을 내걸었다. ⓒ프레시안(최하얀)

프레시안 :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회복 가능성이다. 현재 직영 노동자 2만5000명과 함께 사내 하청 노동자 4만 명이 현대중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집행부가 바로 이 하청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회복하고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을지를 많은 이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일단 이전 노조와는 다른 행보가 눈길을 끌고는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노조위원장 이취임식에 금속노동조합 울산지역본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을 공식 초청하고 단상에 함께 앉았다. 올해 2월 14일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박일수 열사 추모제’를 원·하청 노조가 공동으로 지냈고, 위원장은 이에 앞서 통렬한 반성문을 ‘열사 영전에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는 통렬한 반성문을 내기도 했다. (☞ 관련 기사 : 2월 14일 분신 자결한 박일수 열사 10주기에 앞서)

정병모 : 정규직 노조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솔직하게 조직적 한계란 게 있다. 우리가 60명 선거운동원으로 선거를 치렀다. 상대편은 공식적으로 밝힌 수만 600명이다. 현재 집행간부 49명이 이 커다란 노조를 책임지고 있다. 모든 요구를 다 받아 안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로선 우리 내부를 추스리고 현장에 지쳐있던 조합원들을 추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공장 건너편에 하청지회가 최근 사고로 돌아가신 하청 노동자 8명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세웠다. 하청 노조에도 우리의 이런 고민을 솔직히 얘기했다. 추모 사업이 당연히 매우 중요하지만 당면 과제를 우선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원·하청 노동자 사이에 정서적인 차이도 있다. 이 차이를 좁히기 위해 먼저 한 발 다가서야 하는 쪽은 물론 정규직 노조다. 그런 차원에서 3월 11일부터 23일간 원·하청 공동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박일수 열사 추모제를 함께하는 등 공동 사업도 하고 있다. (☞ 실태조사 결과 보기)

현재로선 우리 내부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정말 우리 문제’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청 노동자 도와주면 정규직 노동자의 어떤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비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걸 대놓고 반발하는 사람은 어용을 빼놓고는 없다. 이 정도가 그나마 건강한 거라고 생각한다.

▲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 편 도로에 설치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분향소. 두 달 사이 8명이 숨지는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이 천막 분향소를 세웠다. 그러나 울산동구청은 해당 천막이 '도시 미관'을 헤쳐 공익을 저해한다며 수차례 강제 철거했다. 사진은 철거 전인 15일 오후 모습. ⓒ프레시안(최하얀)

민주노총 재가입? "마음은 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프레시안 : 공동 사업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청 중심의 고용 구조를 바꾸는 일이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이와 관련해 선거 때엔 ‘정규직 퇴직 시 1.5배에 해당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 채용’을 공약했다. 이 공약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나.

정병모 : 이 정도가 최소한의 현실 방안이라고 본다. 경영 대표들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한다. 고용 문제를 이렇게 하청 6대 직영 4로 가져가면 회사 또한 장기적으로 비전이 없다. 정규직 비중을 높여서 우리의 기술력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기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회사도 총론에는 동의한다. 각론에 가서 다른 것이다. 시기적으로, 여건상 어렵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우리 생각을 어떻게 관철시킬지는 모르겠다. 결정은 회사 몫이다. 우리로선 정규직 채용의 정당성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정도다.

프레시안 : 지난 3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을 만나 화제가 됐다. 그 자리에서 “금속노조 사업장들과 연대해야 현중 노조가 제대로 존립할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2월 25일 민주노총 총파업에도 참여했고, 조선산업특위 설치를 요구하는 금속노조 조선분과와도 공동 행보 중이다. 민주노총 재가입, 현실화되는 건가.

정병모 : 아직은 단정해 얘기할 수 없다. 마음이야 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기사 나가고 다음엔 ‘민주노총 재가입 임박’ 이런 기사가 나간다. (웃음)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상부단체가 없는 건 어렵지 않겠느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도 고민이 필요할 테고 우리 또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상부단체에 대한 상을 그려야 한다. 조합원들도 관련해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이 많은 상황이다. 현재로선 어느 쪽도 단정해 얘기할 수 없다.

“갑갑한 정몽준…현대중 경영에서 아예 손 떼야"

프레시안 : 정몽준 대주주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자신의 회사에선 하청 노동자들이 사고로 끊임없이 숨지는데, 정작 이번 선거에서 ‘안전’을 주요하게 내세워 빈축을 사고 있다. 노조 위원장으로서 정 후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병모 : 갑갑하다.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참 답답한데…. 서울시 정책 이전에 자신을 있게 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고통을 우선 직시해야 한다. 정규직 채용 숫자를 늘리던가, 아니면 경영권을 아예 내려놔야 한다.

지금 임·단협하고 있지만 상대편인 회사 경영진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보나. 짐작하건대 없다. 실제 모든 권한은 대주주인 정몽준에게 있다.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를 만드는 고용 구조를 바꾸도록 지시하고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이 또한 여기 바지사장들이 아니라 정몽준이다.

경영에서 손을 아주 떼야 한다. 현대중공업이 영원히 국민 기업으로 남고 더욱 발전할 수 있으려면 회사가 전문 경영인들의 손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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