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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꺼, 나만 잘 살면 돼" 파국 앞에서 '혼자'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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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꺼, 나만 잘 살면 돼" 파국 앞에서 '혼자'라는 착각!

[하승우의 <공공성> 강연] '자리를 지키라'는 회유에 대한 무기

작년 말, 시민들은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올 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또 한 번 거리를 메웠다. 두 가지 행동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며, 정부 역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높아진다.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만한 좋은 후보를 찾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고작해야 두세 명의 후보 모두 아무리 살펴봐도 나를 대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처해 있을 상황이다. 권리를 방기하고 정치에 냉소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주장, <민주주의에 反하다>(낮은산 펴냄)의 저자 하승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 포함될 것이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교육공동체 벗, 땡땡책 협동조합 등 다양한 자치의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가 권력과 시장의 '정상화'라는 요구보다는 시민들의 직접행동과 자치·자급의 가치를 강조해 온 논자다. <아나키즘>(책세상 펴냄), <참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한양대학교출판부 펴냄),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그린비 펴냄) 등을 통해 그는 삶의 존엄은 자본과 권력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나와 우리가 노력해야 할 몫임을 강조해 왔다.

그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쓴 '비타 악티바 | 개념사' 시리즈의 30번째 책 <공공성>(책세상 펴냄)은 공화정 로마에서 찾은 이 개념의 뿌리부터 한국의 특수한 현대사를 통해 내면화된 무의식까지 두루 엮어내며 '함께 살기'라는 실천적 화두의 단초를 잡아주는 책이다. '자본에 맡기면 안 되니까 국가가 해야 한다'라는 이분법을 넘어, 그는 '공유화'의 길을 제안한다.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잡아야 할 대안의 방향은 공변될 공(公)이 아니라 함께 공(共)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이 날카롭게 대두된 시기, 공공성이라는 사회과학의 개념 속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하승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은 지난 5월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열린 하승우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본 강연은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회과학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 | 개념사' 시리즈의 30권 출간을 기념하여, 책세상 출판사가 기획한 연속 강연의 일부입니다.) <편집자>
☞'비타 악티바 | 개념사' 연속 강연, 장석준의 <사회주의> 편 바로 가기


그 공 말고 이 공


▲ <공공성>(하승우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공공성'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보통은 이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민들의 삶에 공통적으로 연관되는 부분들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맡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제가 이 책에서 논의하고 싶었던 건 이와는 좀 다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공성을 구성하는 세 개의 한자, 公, 共, 性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공성의 의미에 대해 지금까지는 맨 앞의 공(公)에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영어로 하면 '퍼블릭(Public)' 혹은 '오픈(Open)'이라는 의미에 가깝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제부터 두 번째 공(共), 즉 '함께 공'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는 '커먼(Common)'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럿이서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바꾸어나가는 것, 여기에 주목해야만 애초에 공공성이 목표로 했던 삶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어느 시점부터 뉴스를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돼버렸습니다. 볼 때마다 정부에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그걸 고치고 나면 더 이상 문제가 없을까요? 팔짱 낀 채 그들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잘못했다"에 멈추지 말고, 우리 삶과 공통되는 부분들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 부분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개입할 것인지, 의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에서만, 오늘의 주제인 공공성이란 화두의 진짜 의미가 살아날 거라고 봅니다.

누가 내게 무언가를 보장해준다는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우리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하겠다는 자치(自治)의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성> 13쪽)

이건희가 혼자 살 수 있을까?

어떤 개념을 다룰 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어원을 묻는 겁니다. 공공성의 어원은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이기도 한 라틴어 레스푸블리카(res publica)이고, 이 말이 등장한 로마 공화정 시대를 공공성 개념의 출발점으로 삼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공적인 일에는 신경 꺼라, 너만 잘 살면 된다, 이런 화법이 일상적입니다. 그와 정 반대로, 로마 공화국을 구성했던 시민들은 '나'와 '공동체'의 삶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내가 속한 사회가 좋아져야 한다는 의식이 일반적이었고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군대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시민들이 무장하고 나가서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요. 공화국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내 삶의 자유를 지키는 것과 밀접하게 맞붙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평민들의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힘의 격차는 분명 크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공동체 상(像)을 끊임없이 원로원에 대해 요구하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내부에서도 싸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평민의 힘은 그들이 자신들의 힘을 정확하게 이해한 데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무리를 지어 로마를 떠나는 시위를 벌였는데, 이를 '평민들의 철수 시위(Secessio plebis)'라고 합니다. 원로원이 민회가 결정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을 때, 평민들도 "그래? 그러면 우리도 너희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겠다"고 받아치는 방법이었지요.

평민들이 로마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 버리면 가게와 공방이 문을 닫고 시장도 사라지겠죠. 그렇게 귀족들이 말을 들을 때까지 버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령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자기가 직접 밥을 해먹거나 운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의 노동을 필요로 하며 살잖아요. 그 실질적 노동력들이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빠져버리니 귀족들이 난감하겠지요. 그러니까 평민들이 요구하는 핵심 의제를 자기들도 살아남기 위해 들어주었던 겁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339년에 제정된 푸블리리우스 법(lex publilia)은 원로원이 민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거부하는 권한을 폐지했습니다. 또 포이틸리우스 법(lex poetilia)은 빚을 진 시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금지했지요. 심지어 로마의 인민들은 귀족들에게 양보를 받기 위해 전쟁터에서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 고대 로마의 '제세치오 플레비스'. ⓒwikimedia commons

지금 우리는 법에 대해 국회에서만 제정되고 논의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지금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 시대에, 덜 편리하고 소통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우리보다 더 강력하게, 스스로의 일상을 지배하는 규칙들을 위해 직접 발언하고 참여해서 그것을 만들어 나간 예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런 로마 공화국이 평생 갔느냐 하면, 그건 아니죠. 기원전 1세기에 로마는 제정으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득권이 아닌 계층에서 단결해야지만 가능한 실질적 힘을 관철시킨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분명 위대했다고 할 수 있어요. 현대 사회에도 시민 참여권이 있고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긴 하지만, 그것이 기득권 계층에 진짜로 압박이 되는 힘인지는 물어봐야 할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와 공공성

중세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공적인 것의 의미가 바뀌고 인민들의 지위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단순한 공공성의 암흑기는 아니었지요.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을에는 공유지가 있었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에는 공통의 것이 존재했습니다. 또 중세 시대에 등장한 도시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공공성을 강화했는데, 좁은 공간과 소음, 불결한 도시의 위생 때문에 공공사업이 필요했고, 신분이 비슷한 이웃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공동체 의식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사이를 연결해주었지요.

그리고 근대적인 공공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봉건 권력과 교회 권력이 해체되면서 국가에 대립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영역이, 즉 최초의 사적 자율성의 영역이 형성되면서 부터였습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을 시민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직접 무장하고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고,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지 못하더라도 말의 힘이나 정보 공유의 힘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퍼블릭이라는 개념이 재등장하고 의미가 확장되게 되었지요.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중(public)이라는 말은 17세기 중반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등장했다. 이 공중이라는 단어는 공연이나 독서에서의 '판정'이라는 말과 연관되는데, 공중의 판결을 위해 제출된 것이 '공개성'을 얻었다. 이때부터 공개적인 판정이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말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로마의 직접 통치가 대표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에 여론은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34쪽)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이제 '공'은 공동체 질서에서 뿐만이 아니라 오이쿠스라 불린 '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확보되는 영역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국가와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생산하고 노동하고 소비하는 삶 속에서 자본주의가 공공성의 다른 방식으로 등장했던 것이지요. 개인을 사인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방식이었다면, 자본주의는 '사유(私有)'를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즉 기존에는 공동체의 재산이라 인식되었던 것을 사적 소유로 만들어나가면서 자본주의는 공공성 개념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는 국가, 그리고 나중에는 시장(市場)까지 평민들이 가진 공공성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무너뜨리려던 시도가 있었고, 그 긴장과 갈등을 통해 공공성이 살아있는 개념으로 논의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공이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공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그것으로 자기를 드러내려 하는 개인들이 존재해야만 공공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겁니다. 몇몇 사람이 "공공성을 확보해주시오"라고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강요하면서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질서가 바로 공공성입니다.

'멸사봉공'을 멸하라

동양에도 공이라는 개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즉 관직이 있는 특정한 사람들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적인 권력도 비단 세습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선발제도를 통해 주어지기도 했고, 뭔가를 다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공론이 생겨난 역사도 분명 있었습니다. 즉 동양이든 서양이든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같이 살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어떤 삶의 질서를 짜나가야 하는지 생각한 역사가 있었다는 데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드러내는 시점에 누구로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동서양 역사 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동양은 스스로를 사사로운 주체보다는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 드러내는 데 익숙한 사회였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지요. 이 말은 유교 전통보다는 일본식 해석 방법에 가까운데요, 공과 사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고 사를 버리는 것이 공적인 것을 강화시킨다는 관점입니다.

동양에서는 이처럼 공과 사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물론 서구 사회에서도 퍼블릭과 프라이빗(private)은 분명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동양처럼 사를 멸하는 것이 공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공이라는 존재 속에서 사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할 것인가가 공공성을 사유하는 방법이었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의 소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부르주아 사회는 사적인 이해관계와 윤리를 공적인 결정이나 정책으로 전환하는 장이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지만 사익과 공익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 공론장이었다.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아무리 강조되어도 그것이 자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36쪽)

참고로 프라이빗이라는 단어는 공적인 것으로부터 박탈된 사람들, 배제된 삶을 가리키는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어원이 '박탈'을 뜻하는 라틴어 프리바투스(privatus) 거든요. 즉 '프라이빗'은 타자의 시선에서 배제된 삶을 의미했고, '퍼블릭'은 언제나 타자와 함께, 타자의 시선을 받으며 구성되는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런 두 가지 경향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를 멸하고 공을 받들 때 공공성이 실현된다는 위험한 논리가 만연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주장합니다. 전자의 경우 밀양 송전탑이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공공사업', '국책사업'에 왜 반대하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공공사업에 반대하면 보상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느니, 이기주의라느니, '님비(NIMBY)'라느니 하는 말로 몰아세우는 거죠. 누구나 시민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데, 거기서 공과 사가 대립되고 사는 더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팽배한 겁니다.

▲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몸에 쇠사슬을 감은 밀양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공과 사는 단지 스케일의 문제이지, 중요도를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공보다 사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닐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혼동하고 '사=부분'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논리가 강요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성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해석되고 그것을 번역해 받아들인 개념사적 상황, 또 국가 주도의 대규모 공공사업에 떠밀려 온 역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마치 우리와는 별개로 떨어져 있는 큰 덩어리가 나의 삶을 내리 누르는 상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이는 꼭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경향입니다. 식민주의 전략은 대부분 '여기 이 사람들을 봉건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계몽시켜서 좋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논리잖아요. 그래서인지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사람들은 공공성에 대해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만들어준 것, 강요된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갖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프란츠 파농을 인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 태생으로 탈식민지 운동, 민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입니다. 그가 말하는 프랑스-알제리 식민의 역사가 우리와 소름이 끼칠 만큼 비슷한데요. 앞서 서구 사회 속에서 퍼블릭이라는 개념은 자기를 주체화시킬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파농의 책을 보면 프랑스 사회 속에서 흑인들은 서로를 주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옵니다. 그들에게 퍼블릭은 백인과 가까운 개념이며, "검은 피부"인 스스로는 "하얀 가면"을 써야지만 비로소 퍼블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내면화시켰다는 겁니다.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죠. 한국에서는 정치권력을 가진 이들이 "우리에겐 민주주의가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아직 그걸 할 수 있는 의식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잖아요. 얼마 전 모 의원의 아들이 '국민들이 미개하다'고 썼듯이 말입니다. 서구적 시민의 모습에 비추어서 그에 비슷하게 맞추지 않으면 의견을 드러내는 일들에 대해 미개하다고 합니다. 울부짖어야만 그나마 들어주는 상황에서, 왜 울부짖느냐고 하는 거죠.

▲ <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인간사랑 펴냄). ⓒ인간사랑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고 황국신민을 모두 동등하다고 얘기했지만, 조선인은 신민인 동시에 불령선인(不逞鮮人)이기도 했기에 매로 다스려 인간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존재였다. 이런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의 피지배층은 강자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같은 약자,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런 폭력의 상처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인간성에 새겨져 서로 간의 존중과 신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127쪽)

이게 결국 서로가 서로를 내면화시키는 방식이 되는 겁니다. 알제리의 흑인들이 프랑스 식민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자기 옆에 있는 같은 존재들에 대해 공격성을 감추지 못한다는 얘기처럼요. 그들 중 누군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게 아니라, '네가 뭔데 그런 얘길 하느냐'며 약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성만 강화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나는 그것(주체)이 아니다"라는 관점이 내제되어 있는 것이고요. 내 옆에 있는, 함께 손잡아야 할 주체들과 손을 잡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어야, 즉 '하얀 가면'을 써야만 '퍼블릭'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파농이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책임져 준다는 환상

파농이 지적하는 R 발음에 대한 알제리인의 강박은 흥미롭게도 영어 발음에 대한 한국인의 강박과 똑같다. (…) "프랑스로 향하는 흑인들에겐 오명의 신화가 하나 있다. 'R'자를 들이마시는 앙틸레스 촌닭이라는 신화가 그것이다. 그들은 그 신화를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들은 그 실상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그것과의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 발음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그 절체절명의 과제 때문에 말이다." (131쪽)

이 이야기를 좀 더 진전시켜 봅시다. 한국 사회는 학력에 대한 집착이 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활성화된 결사체는 동문회라고 하는데, 꼭 동문회가 아니더라도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경우를 보면 학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하고가 대다수입니다. 또 대학에 가는 비율이 70%가 넘고 누구나 끊임없이 자기 학력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학력이 왜 그토록 중요한 변수가 되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내면화시킨 '공'에 대한 의식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사회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는 거죠. 가면을 써야지만, 그것도 스스로 만든 가면이 아니라 누군가 '이 정도의 가면은 써야 한다'고 정해놓은 가면을 써야지만 자신을 공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얘깁니다.

우리가 퍼블릭이라 부르는 장소에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도 굉장히 제한적이고, 외부에서도 "밥벌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개개인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아야지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심지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널리 공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공공성이 '내가 참여함으로써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 주고 보장해주어야 하는 무엇'으로 여겨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여기엔 절반의 진실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다수의 자유와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 혼자 잘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제도적인 질서로 포섭되고 단단한 언어로 보장되어야 하기에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역할과 몫이 큽니다. 다시 말해 '저 사람이 나랑 친하니까 도와주겠지'라는 사적 구제가 아니라, 친밀성이 전혀 없는 영역에서도 삶을 지속시키는 방법으로서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한국 정부, 한국의 권력자들은 그런 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구조보다 인양을 우선시하고 구조조차 숫자나 비용의 문제로 계산하는 모습을 보셨잖아요. 정부가 애초부터 시민의 권리를 별로 고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도 없는 그런 사회에서는 공공성의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만 한다는 겁니다.

▲ 지난 5월 18일, '가만히 있으라'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우리가 로마 공화정 시대처럼 "니들끼리 잘 살아라, 우리끼리 잘 살아볼 거다"라며 철수 시위를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단지 철수할 산이 없어서일까요? 아니죠. 철수를 생각하지 않아서겠죠. 사실 우리는 그냥 묶여있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만든 국가, 우리가 만든 사회'라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삶을 어떻게 구성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를 희망으로만 묶어 두고 거기에 배신당하는 역사를 반복해 왔어요.

그런데 이건 개개인들의 의식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당한 역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공공성을 강화시키려면 여러 겹의 난관을 뚫어야 합니다. 좋은 정당의 좋은 후보를 뽑아서 우리가 원하는 사람들이 실제 권력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겠지만,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힘을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 뭔가를 보장하고 강요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비단 우리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나타난 시위, 특히 스페인의 점령 시위대인 '분노한 사람들'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부나 시장이 우리 삶을 더 이상 책임져 줄 것 같지 않으니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나가보자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이름이 '다중'이든 '공통체'든 어떤 것이건 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자발적인 주체들을 지칭할 겁니다. 즉, 함께 공(共)이라는 의미가 중요해지는 공공성이 전면적으로 등장해야 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국영' '민영' 아닌 '공유'의 길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고 또 자주 놀러갔던 곳이 공공도서관입니다.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공공시설이지요. 하지만 요즘 도서관은 은행에 비교해야 맞을 것 같아요. 딩동, 딩동, 혼자 자리를 오래 쓰지 못하도록 도입한 자리 알림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자기 번호가 뜨면 들어갑니다. 도서관인데 정보를 얻거나 책을 탐색하는 공간이 아니라 토익 공부, 고시 공부 등 자습실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책 구매도 도매업자들과 입찰 계약을 해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1억 원 어치를 구입한다고 하면 그에 맞춰 업체가 구매 대행을 하는 겁니다. 주민들이 신청한 것 중에 저렴한 건 들어가지만 별로 인기 없는 책은 들어가지 않는 거죠. 운영 역시 지역 주민들과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많은 곳에서 도서관 운동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한편 민간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들은 규모의 한계, 즉 책 둘 곳이 없다는 문제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어느 정도 되면 도서관도 발전을 해야 하는데 물리적 성장부터가 불가능한 겁니다. 새로운 책이 들어오려면 원래 책을 따로 빼서 창고에 쌓아두거나 버려야 하죠. 그래서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는 옛날 책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공공도서관과 민간이 만드는 도서관 사이에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큰 사업은 관이 알아서 결정하고 조그만 사업은 민간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공적인 일에는 민간이 개입할 수 없고요. 이게 공무원들이 가진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민간 위탁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국가가 행정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 그 업무를 민간 기업이나 외부 단체 및 개인 등에 위탁한 뒤에 감독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공공 기관의 적자 상승이나 공공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불편 등이 이유가 되어서, 최종 관리 책임 및 비용 부담은 정부가 지되 재화나 서비스의 직접적 생산·공급 기능은 여러 민간 주체가 맡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진보적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이 해왔던 일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팽배합니다. 민영화라고 생각하는 거죠. 일견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경직된 위쪽(관)에다 맡겨 놓는다고 제대로 운영이 되나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부가 공공 서비스를 할 때 어차피 과정의 일부는 업체와 계약을 진행해서 하게 되는데, '최저가 후려치기' 하는 곳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계란, 두부 등의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영양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저소득층 산모들에게 배달해주는 지자체의 사업이 있습니다. 좋은 사업이죠. 그런데 올해 옥천 영양 플러스의 제공 업체가 바뀌었어요. 그쪽이 최저가를 제시했기 때문이죠. 요즘 산모 있는 이웃집에서 저희 집에 참치 캔과 계란을 들고 오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 전엔 다양한 지역 농산물이 들어 있어서 신선한 나물을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공 식품 위주인 거죠. 결국 위탁에 대한 찬반보다 중요한 것은 민간에 위탁하는 이유와 그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행정 절차가 일방적 의사 결정 대신 공적 논의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이 책 첫머리에도 썼지만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 당시, 정부 사업을 대규모로 민간에 이양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협동조합 하면 소비자 협동조합만을 떠올리지만, 거기엔 도로를 관리하는 조합, 마을 저수지를 관리하는 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이 10만 개가 넘었어요.(2006년, 나오미 클라인) 이런 대규모 공공사업의 책임은 정부가 지되 주된 권한을 지역 사회에 넘겨주었던 거죠. 위탁하는 대상도 '사업체'가 아니라 주민 평의회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공공성의 반대말이 민영화보다 사유화(私有化)에 가깝듯, 공적인 대안도 국유화가 아닌 공유화(公有化)에 가깝다고 봅니다. 공 아니면 사, 국영화 아니면 민영화, 이렇게 나누어 볼 것이 아니라 정부 소유도 아니고 사적 소유도 아니지만 공동이 관리하는 무언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안에는 누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원칙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할 거고요.

▲ <공공성>의 저자 하승우. ⓒ프레시안(최형락)

협동조합기본법에 회의적인 이유

2012년에 한국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사실을 아시나요? 5인 이상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한국은 법이 참 빨리 만들어지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보다 협동조합 조합원이 훨씬 많은 일본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은 만들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법부터 만들고 숫자를 늘리죠. 이 법이 발효되고 나서 새로 생긴 협동조합이 전국에 3000개가 넘습니다. 하루에 일고여덟 개씩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어요.

어쨌든 협동조합의 중요한 원칙은 자율과 독립이고, 그렇게 정부나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존재인 조합이 많이 늘어났으므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야 맞을 텐데, 과연 그럴까요? 사실 저는 회의적입니다. 법이 만들어지는 순간 공(球)은 역시나 법을 관장하는 주체인 공(公)으로 넘어가게 돼있으니까요. 협동조합도 정부가 등록을 받죠.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왜 모였고 어떤 것을 할 것인지를 다 기록해서 정부에 바치게 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공공성의 한자를 한 자씩 뜯어보면, 일단 공(公)에는 퍼블릭과 프라이빗이라는 쌍이 있을 거고요. 공(共)에는 '함께'와 '개(個)가 대척점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성(性)의 대립되는 쌍은 제도의 제(制)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공과 사를 나누고, 공용과 개별적인 것들로 나누고, 어떤 본질과 성질을 제도로 고착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협동조합기본법을 통해서 만들어진 조합 중에는 정부가 법을 만들었으니 뭔가 금전적 지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만들어진 곳이 많습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정체성은 '함께 공(共)'을 강조하긴 하는데 결국 정부를 말하는 공(公)에 의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거라고 할까요? 우리 역사를 보면 이게 정말 명확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농업협동조합이 상당수 존재했지만 지금은 농협이라는 관제 협동조합으로 전락했다든지요. 수협, 축협도 마찬가지로 흡수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협동조합기본법이 자본주의 속에서 공유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우리 삶의 질서를 단단하게 만들어줄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버려야 한다거나 대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거기서 어떻게 '커먼'의 힘, 공유의 힘을 확장시키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호가 '진행중'인 한국, '좋은 삶'을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리원전1호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가동을 시작해 이미 수명이 다 되었고 30년간 130번의 사고가 났던 원전이에요. 원전 사고는 터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 사고에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그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지구상에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정부는 없어요. 일본의 후쿠시마가 3년 전 그걸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다시 원전을 돌리면서 '괜찮다'고 회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그 고등학교와 고리원전1호기 간의 거리를 재봤는데, 반경 24킬로미터 안에 들어가더라고요. 20킬로미터 안에 부산 일부가 들어가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공부하느라 너무 애쓰기보다 매일을 감사하며 사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른다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그게 돌아가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제가 너무했나요? 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설마 이상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늘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설마, 설마하며 살아요. 우리보다 그나마 안전 대책이 나은 일본도 그걸 경험했는데도요.

▲ 고리원전 전경. ⓒ프레시안(이대희)

고리1호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가 사는 곳 옆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을 만들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사는 옥천만 해도 그렇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해물질이 나오는 지역이 충북이더라고요. 청주와 청원에 공단이 밀집되어 있거든요. 어떤 공단 하나는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습니다. 공장이 '이것은 수증기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연기들 중에 수증기가 아닌 것도 많다고 해요. 아이들이 계속 통증을 토로했는데 알고 보니 공장에서 배출한 화학물질이 원인이었던 거죠.

공공성이 지켜지고 있는 사회라면 그걸 규제하고 관리해야겠죠. 유치하기 이전에 그 공장에서 어떤 물질이 다뤄지고 있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거고요. 그렇지만 아무도 그걸 하거나 요구하지 않아요. 그저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서 서로 열심히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공장에서 사고가 나면 '아, 저 공장에서 사고가 났구나' 이러고 말지요. 세월호랑 똑같아요. '안심하세요, 자리를 지키십시오.'

옥천으로 이주할 때 사악한 발상도 하나 있었습니다. 발전소가 없는 내륙 지방이니까 만일에 발생할지 모를 재해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라는 생각이었지요. 헌데 복병이 있었습니다. 대덕 원자력연구소에 핵연료봉을 만드는 시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도를 찾아 선을 그어봤더니 제가 살고 있는 곳과 원자력연구소의 거리는 24킬로미터였어요.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한국에는 정말 안전한 곳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그 안에서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나 혼자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괜찮을까요? 그럴 수 없어요. 대단한 착각이고 환상입니다. 내가 잘 살 수 있으려면 사회가 전부 바뀌어야 하고 그건 혼자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함께 지혜를 짜낼 때에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 <프레시안> 역시 '함께 살아가기'를 위해 2013년 언론 협동조합의 길을 걷게 됐다. ⓒ프레시안(손문상)

옥천 내려가기 전에 지역에서 독서회를 하면서 깨달았는데, 만남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 말이죠. 제가 동네에서 만든 독서회는 2주에 한 번 2년 6개월 정도 유지됐는데, 멤버들은 저 빼고 다 주부들이었어요. 그들과 함께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살림Biz 펴냄)이나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 같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가정주부한테는 보통 '애들이나 가정에만 신경 쓰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레테르가 붙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과 책을 읽으면서, 집안에서의 질서가 와해되기 시작한 사례들을 많이 목격했어요. 집 바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원래는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말고 만나서 대화할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내 생각과 저 사람의 생각이 왜 다른지를 얘기할 수 있는 것, 그게 모임이 가진 힘이었어요.

분노도 중요하지만 분노를 지속시키려면 개인의 결의보다는 뭔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아주 작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도모하고 함께 경험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공유의 힘'을 살릴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굉장히 참혹한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뭔가를 고민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거기에 담긴 반전의 힘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일 텐데, 지금 시대엔 그 목표를 이루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시장, 시민 사회의 이해관계가 엉키고 충돌하는 지점이 늘어나고, 기후 변화와 먹을거리, 에너지 문제 등 국경을 넘나드는 사안들이 넘쳐납니다.

세계화 시대에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있을 수 없죠. 당연히 '우리끼리 잘 살자'는 오래 갈 수가 없고요. 협동조합을 비롯해 수많은 결사체들의 존재는, 결국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욕구들을 공통의 힘을 통해 해결해 가려고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더 이상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다가올 파국을 함께 대비해야 하기에 공공성은 점점 더 중요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의 자유를 위해, 더 솔직하게는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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