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돼 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같이 정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그의 참여를 통해 현재와 같이 경색된 국면을 탈피해 새로운 틀을 형성하려 노력해 온 구여권의 시도는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쳤고, 향후 대권판도 전반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통해 "17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국민 여러분께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지만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제게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치세력화의 한계 느꼈다"
정 전 총장은 그간 대선 출마에 따르는 조직과 정치자금 등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깊이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은 지난 11일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을 만났을 때에도 이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정치세력화 활동을 이끌어 본 적이 없는 저는 정치지도자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소중하게 여겨 온 원칙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정치세력화를 추진해낼 만한 능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정치는 비전과 정책 제시 만이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며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지지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 세력화 활동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 전 총장 측의 한 관계자는 "정치자금의 문제는 언론에 보도되긴 해으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며 "그간 지식인으로서의 몸가짐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정치인으로서의 몸가짐, 이 두가지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양자를 유지하기 어려워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의 고심이 길어지면서 구여권 내의 여론이 '정운찬 대망론'에서 "이미 때를 놓친 것 아니냐", "검증과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적인 쪽으로 바뀐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고민…결단은 최근에"
정 전 총장은 4.25 재보선 직후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세실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불출마 선언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 측은 불출마 선언 시기와 관련해 "그런 고민을 상당히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결심을 하게 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금 더 빨리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차분하게 정치참여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저의 고민이 정치적인 계산과 소심함으로 비추어지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웠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정 전 총장은 "지난 몇 달간 많은 분들이 정치참여와 관련해 제게 따뜻한 관심과 조언을 주셨다"며 "이분들께 깊은 삼사와 사과의 뜻을 함께 전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부족한 제게 많은 관심을 보내주신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지식인으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은 이날 다소 쉰 듯한 목소리로 미리 준비해 온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면서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별도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기자회견문만 낭독하고 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정 전 총장은 이날 대선 불출마 선언에 앞서 지난 주말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 민주당 김종인 의원 등에게 이같은 결심을 미리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정 전 총장은 "정치참여를 한다면 강의가 끝나는 5월 말에서 6월 초 이후에 선언하고, (정치참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이전에 이야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다음은 이날 정 전 총장의 기자회견문 전문.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17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 가운데 대선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 시기에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는 말씀이었다. 저 역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그동안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해 제 나름대로 보답해야 한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저는 지난 몇 달간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많은 생각끝에 내린 결론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게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비전과 정책제시 뿐만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지지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선 정치세력화 활동을 통해서 지도자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그런 세력화 활동을 이끌어본 적이 없는 저는 정치지도자로서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가 그동안 소중하게 가져온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정치세력화를 추진해낼만한 능력도 부족하다. 조금 더 빨리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차분하게 정치참여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저의 고민이 정치적인 계산과 소심함으로 비추어지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했다. 이 모두가 제 불찰이다.
지난 몇 달간 많은 분들이 정치참여와 관련해 제게 따뜻한 관심과 조언을 주셨다. 이 분들께 깊은 감사와 사과의 뜻을 함께 전한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지식인으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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