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우리는 흔하게 듣는다. 외환 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장시간 노동을 기록해왔다는 점에서 직관적으로 옳은 진술이다. 하지만 장기간 선진국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우리나라가 인프라 수준도 좋고, 생각보다 잘 사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일견 상호 모순되는 진술이지만 양자 모두 상당한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2014년 3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업데이트한 국가별 구매력 기준 소득 통계는 우리나라가 나름 잘 먹고 잘산다는 진술의 근거를 확인하게 해주는 통계이다. 구매력 기준 GDP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실질적 구매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수준을 논함에 있어서 명목 GDP보다 적절하다.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높고 수출 중심 경제 정책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환율이 저평가되어 있고, 따라서 명목 소득보다 구매력 기준 소득이 더 높다.
인구가 작은 나라들은 우리와 비교하기에 부적절하며, 2000만 이상은 되어야 우리와 비교하기에 적합하다. 선진국 클럽에 속하는 OECD 국가 중 인구 2000만 이상 국가들은 11개국이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의 액수가 높은 순서로 살펴보면, 미국(인구 약 3억1800만, 5만4979달러), 캐나다(인구 3500만, 4만4655달러), 오스트레일리아(인구 2300만, 4만4346달러), 타이완(인구 2300만, 4만1540달러), 독일(인구 8000만, 4만1248달러), 영국(인구 6400만, 3만8710달러), 일본(인구 1억2700만, 3만8052달러), 프랑스(인구 6300만, 3만6537달러), 대한민국(인구 5000만, 3만4795달러), 이탈리아(인구 5900만, 3만802달러), 스페인(인구 4600만, 3만637달러) 순서가 된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구매력 기준 소득으로 9위에 랭크되어 있다. 영국, 일본, 프랑스와 아주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 어렵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우리가 앞지르고 있다. 향후 10년의 성장 전망도 우리가 좋기 때문에 몇 년쯤 후엔 프랑스를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나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는 말은 통계상으로 진실인 것이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대기업은 부자고 대다수 노동자는 가난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진술에 대해 직관을 넘어 살펴볼 수 있는 통계가 있다. 노동 소득 분배율이 그것인데 노동 소득 분배율이란 '피용자보수/영업잉여+피용자보수'로 산정된 수치를 의미한다.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2013년 우리나라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61.4%였다. 그러나 이 수치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영업잉여로 분류한 통계여서 자영업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우리나라는 국제 비교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자영업자 소득 중 3분의 2를 근로자 소득으로 하여 산정한 수치에 의하면 2011년 기준 68.2%이다. 이 수치가 국제비교에 적절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 하락하였다. 이 수치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
노동 소득 분배율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원인은 외환 위기 이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제조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고성장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내 고용을 별로 증가시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노동 소득 분배율 악화만으로 한국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든 사회라는 진술의 타당성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주요 선진국의 노동 소득 분배율이 우리의 현재 노동 소득 분배율 68.2%와 큰 차이가 나진 않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 노동 소득 분배율은 미국 67,3%, 영국 70.7%, 프랑스 72.2%, 독일 66.9%, 일본 70.7%이다. 한국은행 통계로 보면 10% 정도 낮지만 한국노동연구원 통계로 보면 크게 낮지 않은 것이다. 후자가 국제 비교에 보다 적절하다면 한국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낮은 노동 소득 분배율로 돌리기엔 부족하다. 진실을 찾으려면 추가로 다른 통계들을 살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 300인 이상과 그 미만으로 구분하여 사업체 규모별 임금 총액 집계를 발표했다. 같은 자료에 의하면 300인 이상 상용직의 임금 총액 대비 5~299인 상용직의 임금 총액 비중은 2000년 71.3%에서 2011년 63.2%로 하락했다. 전체 근로자 중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고용된 근로자가 87% 수준이므로 외환 위기 이후 대기업과 공공 부문 노동자를 제외한 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통계를 하나 더 살펴보자. 고용노동부가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6월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총액은 정규직 대비 63.6%로 조사되었다. 근로 시간 역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76%를 기록했다.
종합해보면 한국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진술은 영세자영업의 과도한 비중,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과도한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과도한 임금 격차 등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한국 사회 다수 인구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진술은 진실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다수 인구가 구매력 기준 GDP 수준에 부합하는 삶을 누리려면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시간 당 평균 임금 수준이 대기업 근로자의 63% 수준에서 75%로 올라가야만 할 것이다.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시장 구조를 살펴보면 민간 부문 시장은 대다수 업종이 상위 3~5개의 대기업이 최종 수요자로 존재하는 독과점 상태이며,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의 공공 부문 조달 시장 역시 독점 상태이다. 그리고 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에 걸쳐 최종 수요 독점자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 기관 등 공공 조달 부문과 전기전자, 자동차, 화학, 조선, 철강, 기계 등 대표적인 수출 업종들, 교육, 의료, 건설, 유통, 통신, 금융, 운송 등의 내수 업종들 별로 최종 수요자를 대표하는 사용자 조직과 최종 수요자 및 종속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조직 사이에 단체 협약을 체결할 수 있게 하고, 해당 단체 협약의 효력을 각 업종의 50인 이상 중소기업 중 종속 매출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각 업종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하여 이들의 최저 및 적정 임금 조건을 결정하게 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단체 협약의 효력 확대를 통해 종속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시간당 평균 임금 수준을 점차적으로 대기업 상용직의 7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대기업의 이윤이 일정 정도 종속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로 흘러들어가게 되어 노동 소득 분배율이 더 올라가게 될 것이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연대 임금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저임금을 주무기로 시장에서 부당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사업체들을 퇴출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업체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우리 사회를 점점 나락으로 이끄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저임금 사업체들을 퇴출시키고 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삶의 수준을 충족하는 적정 진입 기준이 설정되면 이를 통해 질 좋은 일자리가 다수 확보되어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다. 또한 최저 임금도 대폭 인상하여 단체협약으로 보호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도 보호하여야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제도는 부작용이 있다. 실업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업률이 지금보다 두 배가 되더라도 우리 사회 다수 인구가 부당한 임금 격차와 저임금 경쟁으로 고통 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아가 치열한 입시 경쟁이나 과도한 학력 인플레도 줄일 수 있고, 자살률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추가로 임금 노동자로 전환되면 전체 자영업자들도 더 나은 환경에서 장사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실업자들에 대해서는 2년 동안 기존 임금의 80% 이상을 실업 급여로 지급하고, 국가 부담으로 재취업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충분히 시키면서 공공의 직업 알선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등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강화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실업의 공포도 없애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낮은 실업률 수치는 대다수 인구의 고되고 불안정한 삶을 전제로 한 수치일 뿐이다. 그것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다. 업종별 단체 협약 제도와 최저 임금 인상을 통해 대다수 인구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다수 인구의 삶의 불안을 해소해줄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바닥을 향한 경쟁만을 초래하는 부당한 노동 시장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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